택배기사 24시 동행 취재

[현대로지스틱스 배송기사 김성우 씨]

- “택배상자 날라 아들 꿈 이뤄주고 싶다”
- “하루 한 끼로 버티는 날 많지만 행복해”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며 힘들 때마다 되새기는 말이다. 나는 매일 오전 5시 30분이면 자리에서 일어난다. 매주 단 하루, 일요일만 빼고 매일 이렇게 일찍 일어나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아직도 조금은 버겁지만, 방에서 누워 자고 있는 토끼 같은 자식 둘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 나는 오늘도 힘든 몸을 이끌고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한 매체에서 나를 쫓아 다니며 택배기사의 하루 일과를 취재한다고 하니 조금 신경이 쓰인다. 그렇다고 평상시와 다르게 외모에 신경을 쓰고 나갈 순 없다. 동료들이 보면 촌스럽다고 놀릴 수 있으니까.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바람을 맞으며 1t 트럭을 몰고 출근길을 달린다. 나는 대한민국의 ‘택배기사’다.”

[데일리로그 = 오병근 기자] 지난 4일 월요일 오전 7시. 현대로지스틱스 택배기사인 김성우 씨(45세)의 하루 일과를 취재하기 위해 서울 가산동 현대로지스틱스 구로터미널을 찾았다. 출근시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좀 이른 시각이지만, 터미널 내에는 택배물품을 분류해 차량으로 옮겨 싣는 상차작업이 한창이었다. 김성우 씨도 자신의 1t 차량에 이날 배송할 물건을 부지런히 싣고 있었다.

 
“오늘 하루 일하시는 데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 좀 붙어다니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혼자 차를 몰고 배달을 하다보면 심심한데, 같이 말동무나 하면서 가죠 뭐.”

이렇게 간단하게 인사를 한 후, 3층에 위치한 사무실로 올라갔다. 배송기사들은 1층 도크에서 물건을 옮겨 실은 후, 사무실에서 그날 배송할 물건의 송장작업을 완료해야 한다. 송장과 차량에 실린 물건이 이상이 없으면 간단하게 자판기커피를 한 잔 마시고 배송차량에 오르는 것이다.

송장작업이 20~30분 가량 소요된다고 해 같은 층에 위치한 콜센터를 둘러봤다. 이른 시간(8시 10분쯤)이었지만, 일찍 출근한 10여 명의 직원이 고객들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일일이 응대하고 있었다. 콜센터장에 따르면, 구로지점 콜센터에서는 직원 70여 명이 하루 평균 4,000콜 정도를 소화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택배업체의 콜센터에 걸려 오는 전화량의 대부분은 클레임 건이다. 때문에 구로지점 콜센터 직원들은 고객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하지만, 가끔 육두문자를 쓰는 고객들에게는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콜센터를 나와 사무실에 갔더니, 송장작업이 마무리돼 있었다. 성우 씨와 함께 택배차량에 오른 시간은 오전 9시. 터미널을 빠져나와 배송지역인 사당동으로 향했다. 이날 배송할 물량은 70박스 가량. 원래  성우 씨가 배송해야 할 양은 30박스였지만, 동료 한 명이 이날 출근을 못해 40박스 가량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성우 씨는 하루 평균 100박스 정도 배달한다. 화요일에는 이전 주 토·일요일 물량이 월요일에 집하되기 때문에 물량이 몰려 150박스 정도 돼 일주일 중 가장 많지만, 월요일은 물량이 가장 적다고 한다.

 
성우 씨는 이른바 '직영'으로, 현대로지스틱스에 소속된 직원이다. 일반적으로 영업소를 통해 개인사업을 하는 배송기사와는 신분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영업소에 소속된 배송기사는 자신의 차량을 가지고 택배물량을 배송 및 집하해주고 이에 따른 수수료를 가져간다. 하지만, 성우 씨는 직원이기 때문에 배송 및 집하량에 상관없이 정해진 월급을 받는다. 현대로지스틱스 가산동 터미널(구로지점)에서는 4명이 직영 배송기사로 근무한다.

성우 씨는 차량 안에서 부지런히 이날 배송할 고객들에게 차례대로 전화를 걸어 집에 있는지 확인부터 했다.

“처음 배송할 가정에 전화를 걸어 고객이 집에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확인부터 합니다. 특히, 월요일에는 사람들이 집을 많이 비우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직접 전해드리기 위해 전화통화를 하면서 시간을 맞춥니다.”

가산동에서 사당동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성우 씨는 적지 않은 나이에 제2의 직업으로 택배기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말했다.

“불과 7개월 전만 해도 패션회사에서 근무했었는데, 회사가 부도가 나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앞이 캄캄했죠. 여기저기 입사원서를 넣었는데, 연락이  온 곳이 바로 구로지점이었습니다.”

‘택배기사’라는 직업이 고되고 힘들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하루종일 배송을 해야 하는 이들의 노동강도는 국내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도, 주변사람들도, 모두 다 택배기사는 너무 힘들다는 말뿐이었다. 때문에 구로지점으로부터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은 성우 씨는 기쁜 것도 잠시,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본다면 제가 원하는 직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좀 더 기다린다는 것은 사치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약간 겁도 났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었죠. 그 와중에 아이들 얼굴을 보고 있으니 용기가 났고, ‘몸은 좀 힘들겠지만 열심히만 하면 처자식은 굶기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우 씨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입사 첫 날부터 1개월간은 거의 매일 밤 10~11시에 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일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택배기사로서의 업무를 배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송장이 뭔지도 몰랐고, 운전도 서투른 데다, 길도 헷갈렸다. 뭐가 뭔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입사할 때가 추석을 앞두고 물량이 점점 늘어나는 시기였는데, 정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하면 밤 10~11시에 퇴근하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이걸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고민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냥 버텼습니다. 아는 것 하나 없는 저를 많이 도와준 동료들에게도 고맙지요.”

 
성우 씨는 15살, 7살인 두 아들만 보면 힘이 솟구친다고 한다. 힘든 택배 일을 한다고 아내가 많이 이해해 주고 노력하는 것도 고맙지만, 아이들이 웃는 모습만 보면 엔돌핀이 저절로 생긴다고 한다.

“처음에는 와이프가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줬는데, 제가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와이프도 학교에서 급식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든데, 새벽잠까지 뺏을 수는 없었거든요. 아침밥 대신 출근 전에 두유 한 팩을 먹고 나왔었는데, 이도 귀찮아 그냥 출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듯 힘들어도 아이들 때문에 하는 거죠. 이제는 좀 익숙해져서 나름 재미도 있습니다.”

어느덧 이날 첫 배송지인 사당동 극동아파트에 도착했다. 이 단지에서는 총 20개의 물량을 고객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차량에서 내려 화물칸을 열고 택배상자를 꺼내든 다음, 다시 한 번 송장을 확인하고 현관문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택배입니다.”

한창 단지를 오가며 배송을 하고 있는데, 경비아저씨가 바쁘게 뛰어와 성우 씨를 찾았다. 경비아저씨가 성우 씨에 따져 물었다. “000호에서 항의가 들어왔어. 집에 사람이 있는데, 왜 경비실에 택배를 두고 갔냐고. 전화통화도 하지 않고 경비실에 두고 간 거냐.” 성우 씨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니에요.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고, 벨을 눌러도 사람이 없어 경비실에 맡긴 거예요.” 경비아저씨는 성우 씨와 5분 정도 이야기를 하다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돌아갔다. 성우 씨는 기자에게 다가와서는 “봤죠.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니까요. 이럴 때면 정말 힘이 빠져요. 마치 제가 일부러 집에까지 올라가기 귀찮아서 경비실에 두고 온 것처럼 말한다니까요.”

성우 씨는 이런 오해를 가끔 받는다고 한다. 기사를 보면 택배기사들이 집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도 해보지 않고 현관문 앞이나 경비실에 던져 놓고 간다는 불만사례가 많이 소개되고 있어 성우 씨는 ‘나만큼이라도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면 섭섭함을 지울 수 없다고 한다.

 
12시 30분. 배송한 지 3시간 만에 이날 성우 씨가 배송해야 할 물량은 다 배달했지만, 출근하지 못한 동료의 물량을 배송 지원하기 위해 동작동 금강 KCC아파트로 이동했다. KCC아파트에서는 여러 단지를 돌며 40박스를 배송해야 한다.

“직영기사는 몸이 아파도 웬만하면 출근을 해야 해요. 제가 출근하지 못하면 동료들에게 피해를 입히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직영이 아니라면 쉰 만큼 내가 돈을 덜 가져가면 되지만, 우린 그렇지 않거든요. 제가 원래 술을 즐기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직업을 가지고부터는 거의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배송 지원은 3시 35분에 종료됐다. 그동안 점심은 굶었다. 이미 2~3시간 전부터 배에서 밥을 넣으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점심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물건을 배송하는 성우 씨에게 감히 배고프니 밥부터 먹고 하자는 말을 건넬 수 없었다. 그저 빨리 배송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배송기사 체험이었으면, 물량 몇 개 정도는 거뜬히(?) 도와줄 수 있었겠지만, 성우 씨의 하루일과를 쫓아만 다녀야 했기 때문에 그냥 기다렸다.

“많이 배고프셨죠. 저희가 가끔 가는 중국집이 있는데, 맛이 꽤 괜찮아요. 같이 가시죠. 저는 습관이 돼서 그런지 배가 그렇게 고프지는 않아요. 오늘도 아침은 먹지 않았는데, 지금 이 시간까지도 참을 만해요. 배달량이 많으면 점심까지 굶는 경우가 허다해 퇴근해서 늦은 저녁 한 끼만 먹는 날이 1주일에 3~4일은 되는 것 같아요.”

성우 씨는 택배기사를 시작하고 한 달만에 13kg이 빠졌다고 한다. 일도 힘들지만, 먹는 것도 제때 못 먹으니 살이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됐다. 그래서일까. 주변에서 만난 택배기사들 중 살집이 있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많이 살이 빠져 저도 놀랐고, 와이프도 많이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일도 익숙해지니 할 만합니다. 지금은 3kg이 붙어 예전보다 10kg만 빠져 보기에도 좋은 것 같아 오히려 나은 것 같아요.”

인근 중국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곧바로 쉴 새도 없이 집하작업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날은 현대택배 구로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가산동 SG세계물산 물류센터에 들러 전국으로 보내는 의류를 차량에 싣고 터미널로 돌아가야 했다.

“일부 사람들은 가끔 택배기사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택배기사들에게 백화점식 서비스를 원하다보니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모든 고객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 하지만, 일부 고객들이 저를 보며 비하하는 말투로 말하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택배기사는 막 대해도 되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SG세계물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50분. SG물류센터에는 이미 배송을 끝낸 동료들의 차량이 집하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날 집하한 물량은 4,000박스 규모다. 11t 윙바디 1대와 2t 1대, 1t 6대가 동원됐다. 성우 씨는 차량을 주차하고, 동료들의 집하작업을 도왔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배송물량이 적어 6시쯤 되면 일찍 퇴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집하량이 생각보다 많아 10시를 넘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 일이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이제 이 일이 재미있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는데, 하다보니 나름대로 보람도 있어요. 모든 것이 다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한창 의류박스를 화물차에 싣고 있는데, 성우 씨의 동료가 한 마디 했다.

“택배는 서비스단가가 계속 떨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보시다시피 이렇게 생고생을 하는데, 벌이는 시원치 않습니다. 이게 다 택배업체가 서로 단가를 후려치며 싸우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본사도 힘들고 기사들도 힘든 것 아닙니까. 예를 들어 월 300만 원을 벌려면 예전에는 100개 배송하면 됐지만, 지금은 150개 이상 배송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골병이 드는 거죠. 서로 자제하면 좋을 텐데, 그게 잘 안됩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실제로 본사가 배송기사(직영기사 제외)들에게 지급하는 배송수수료는 3~4년 전까지만 해도 900원대를 유지했지만, 현재는 700원대로 떨어졌다. 배송기사들의 근무환경이 그만큼 나빠진 것이다.

성우 씨가 터미널에 들러 집하한 물량을 입고한 후, 집으로 퇴근하기까지는 집하시각으로부터 4시간이 더 흘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1t 트럭 안에서 운전대를 잡은 성우 씨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이 나이에 꿈이라니요. 그냥 두 아이가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아빠로서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꿈입니다. 작은 아이는 아직 그렇다 쳐도, 큰 아이는 사춘기인데도 속 한 번 썩인 적이 없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면 큰 아이가 어깨를 주물러주며 ‘아빠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면 ‘이놈이 언제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아이들 때문에 보람도 느끼고, 행복합니다.”

성우 씨는 매일 택배상자를 들고 아파트 단지를 뛰어다닌다. 아이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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