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지는 모르겠고, 막대한 혈세를 투입해서 살려줄 생각은 안했으면 좋겠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 하게 하고 있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관련 뉴스를 접한 지인이 한 말이다. 해운을 모르는 민간인들 입장에서 대부분의 여론을 반영한 의견으로 비춰진다.

해운업계에 종사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특히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않았던 60년대생 이후의 국민들은 해운이 제4 군(軍)의 역할을 한다든지, 원양 컨테이너 얼라이언스에서 제명당하든 말든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일 뿐일 것이다. 국적선사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지 체감이 되지 않는다. 또 사회적으로 뿌리깊게 뻗어있는 반 대기업 정서도 한 켠에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운산업의 도태는 결국 국내 물가상승과 직결된다.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실제로 해운이 얼마나 중요한지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대형 마트가 들어서고 인터넷과 모바일 등 통신이 발달하면서 더 쉽고 싸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수입물품들도 해외 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하면서 원하는 물건을 좀더 쉽고 싸게 구입하고 있다. 하다못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가전제품까지 해외 역직구를 하는 추세다.

소비자가 물품을 받기 위해서는 원양 컨테이너 선사들이 필수다. 이들 업체가 거의 대다수의 수출입 물품을 운송하기 때문이다. 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미국산 농산물과 유럽산 가전제품 등도 컨테이너 선사들이 물건을 대량으로 실어오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건이 많아지고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결국 자연스럽게 시장에서의 가격은 떨어진다. 10년전 미국산 오렌지가 비쌌던 것에 비해 지금은 마트에서 사계절 내내 싼 값에 살 수 있는 것도 미국이나 뉴질랜드 등지에서 오렌지를 대량으로 수입해 실어나르는 원양선박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수입업자가 해당 노선을 운항하는 선사들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운송료 경쟁이 붙기 마련이다. 이는 곧 물류비 인하로 이어져 상품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같은 국적 원양 ‘컨’ 선사들이 외국적선사들과 함께 미국과 유럽항로를 경쟁하면서 서민들이 싼 값에 수입물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운송료를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수입품들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양대 해운선사는 이익을 챙겨 왔다. 하지만, 국적선사가 아닌 외국적선사가 수출입업무를 전담한다면 가격이 오를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 현대가 사라지면 우리는 수입물품에 대해 외국적선사들에게 의존해야 한다”며, “외국적선사들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항로를 운항할 때는 경쟁하느라 마음놓고 운임을 올리지 못했지만, 걸림돌이 제거되면 당장은 올리지 못하더라도 3~4년 후에는 마음놓고 운임을 올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운임이 올라가면 당연히 수입업체들은 상품 가격을 올릴 것이고, 이는 물가상승과 직결돼 서민들이 보다 비싸게 물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다”며, “당장은 체감하지 못하더라도 서서히 혹은 어느날 갑자기 물가가 오르게 되면 결국 국가경제가 흘들릴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입물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제품들도 마찬가지다. 국내 생산기업들 대부분은 해외에 공장을 두고 있는데, 이 기업들은 반제품을 해외에서 실어와 국내에서 포장, 가공해 판매한다.

마트에서 1개 1,000원에 판매하는 스위트콘(옥수수통조림)을 예로 들자면, 이 통조림에서 들어있는 옥수수는 국내에서 생산이 불가능한 품종이다. 따라서 이 옥수수 품종이 나오는 국가인 남미나 미국 등지에서 해당 상품을 가공해 국내에 들여온 후 포장해서 마트나 온라인마켓을 통해 소비자에게 오는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주협회나 해운업 종사자들 어느 누구도 이러한 부분에 대해 어필한 적이 없다보니 국민들 인식이 부족해 ‘해운’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지만, 수입제품 외에 국내 생산품까지도 이렇게 원양 컨테이너 선사들과 직결돼 있다”며, “결국 원양선사 포기는 우리가 그동안 당연시 누리던 것들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사라져도 정부가 해결할 방법이 없어지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라면과 같은 서민 필수 품목인 일부 생필품에 대해서는 가격을 통제하고 있지만, 수입물품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양 ‘컨’선사가 사라지게 되면 외국적선사들이 지금보다 운임을 몇배 올리거나, 부산항 직기항을 없애 인근 국가인 중국이나 일본에서 화물을 환적해 오게 되면 국내 수출입업자들은 운송비 인상을 빌미로 가격을 올릴 것이 뻔하다. 이 경우, 운송비 인상에 따른 물가가 상승에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없다.

물론,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대한 경영악화의 가장 근본 원인은 해운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회사의 경영진들에게 있다. 전세계적으로 원양 컨테이너 선사들이 다 안 좋기때문에 시황악화가 원인이라고 애둘러 표현하지만, 몇 십 년동안 해운이 시황을 타는 산업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체감했던 회사 경영자들이 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그들 책임이다.

하지만, 이러한 재벌들의 모럴해저드는 해운산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걸쳐 존재하고 있다. 재벌들의 모럴해저드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의지를 갖고 회사 빚을 다 갚을때까지 오너나 경영진 당사자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강력한 법안을 만들면 된다.

2000년대 초반 조양상선이 부도난 이후 우리나라에 제3의 원양 ‘컨’선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는 원양 ‘컨’사업 자체가 장기간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기 때문에 진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렌지 1개를 천원에 살수 있었던 미국산 오렌지가 어느날 갑자기 3개 만원으로 바뀐다면 서민들은 오렌지를 먹기 힘들어진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에 국적선사가 없다면 이는 현실이 될수 밖에 없다. 때문에 국적선사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망망대해에서 선박에 구멍이 났다고 버릴순 없는 것 아닌가. 절대로 국적선사를 포기해선 안된다.

저작권자 © 데일리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