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오병근 국장] 지난 수년간 서로 눈치만 보며 주린 배를 쥐어짜며 버티기에 들어갔던 세계 컨테이너운송시장에 커다란 먹잇감이 던져졌다. 재물은 국내 1위이자 세계 7위 선사인 한진해운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해운업계는 수요(물동량) 공급(선박)의 불균형으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물동량은 소폭 늘어나는데 비해 선복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운임이 지속적으로 곤두박질 친 것이 세계 해운시장의 위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수년 전부터 세계 해운업계는 너나없이 긴축경영에 돌입하고 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외치며 ‘컨’선 대형화에 앞장서며 경쟁업체 죽이기에 나섰던 1위선사인 머스크마저도 지난해 말 대형화전략을 포기한바 있다. 모든 선사들이 바짝 움추리고 있는 와중에 10대 해운선사 중 유일하게 한진해운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한진해운이 1일 법정관리에 돌입하자 각 선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물량을 쪼개먹기 위해 달려들고 있다. 경쟁업체가 흔들리면, 경쟁자의 입가에는 냉혹한 웃음이 흐를수 밖에 없다. 

한진해운은 이미 법정관리에 들어섰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며 ‘갑론을박’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진해운의 법정관리가 이 회사 하나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반드시 짚어야 겠다.

해운시장은 전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국적의 선사들이 경쟁을 펼치기 때문에 법정관리에 들어섬과 동시에 해운동맹(얼라이언스)에서 퇴출된다. 한진해운도 법정관리에 들어가기도 전인 지난달 31일 소속 해운동맹인 CKYHE로부터 퇴출 통보를 받았다. 퇴출통보는 외항선사에는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일반 기업이 법정관리에 들어서게 되면 회생과 파산의 갈림길이 있지만, 외항선사는 해운동맹으로부터 버림받아 법정관리 후 다시 회생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때문에 원양 ‘컨’선사는 사실상 현대상선 한 곳만 남을 가능성이 매우 커졌지만, 이 회사가 한진해운의 선복량을 모두 커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 선사의 선복량을 비교해 보면 한진해운은 61만 2,000TEU이고, 현대상선은 43만 6,000TEU이다. 수치로만 놓고 봐도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선복량을 감당할 수 없다.

결국, 한진해운이 실어 나르던 국내 수출입화물의 대다수는 외국선사들이 나눠먹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외국선사들이 운임을 올리면 국내에서는 이에 대응할 안전장치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두 개의 큰 국적선사가 존재할 때에는 가격경쟁에서 밀리지 않았지만, 세계 14위권인 현대상선 하나로만 버티기에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국내 ‘컨’ 수출입물량의 63.4%를 처리하는 부산신항의 21개 선석 가운데, (주)한진이 운영하는 4개 선석을 제외한 17개 선석(81%)은 외국기업이 소유하고 있다. 이는 항만하역 주도권이 이미 외국기업에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상운임 주도권까지 넘어간다면 국가의 위기가 아닐수 없다.

경쟁이 쇠퇴하면 운임이 오를 수밖에 없다. 선사가 하나둘 떨어져 나가면 반드시 운송료는 인상된다. 여기에 국내 항만하역을 주도하는 세력은 외국기업이다. 현재는 해상운임과 하역료 모두 바닥 수준이기 때문에 위기인줄 모른다. 하지만, 운송료와 항만하역료는 머지않아 인상될 수밖에 없고, 물류비 폭등에 따른 국내기업의 수출경쟁력은 악화될 것이다.

이렇듯 답답한 수출입환경이 펼쳐질 것이 뻔히 보이는데, 정부는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외국기업이 해상운송료와 항만하역료를 무차별 인상한다면 과연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을 것인가. 시장논리대로 수출입을 하려면 선사나 하역사가 달라는 데로 주라며 팔짱만 끼고 있을 텐가. 왜 모두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세계 무역 7위 국가인 대한민국의 수출입물량 처리문제는 꼼짝없이 외국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자칫하면 한 국가의 수출입정책을 논하는 자리에 정부당국자가 외국기업 임원과 머리를 맞대야 하는 웃지 못 할 촌극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때문에 정부당국이 이번 한진해운 사태를 너무 경제적인 논리로만 결정한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정부당국이 필요 이상으로 여론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정부당국은 한진해운을 내쳤다. 법원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암담하지만, 아직 실낱같은 희망은 남아있다.

 

저작권자 © 데일리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