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악용으로 물류산업 근간 흔들어

-업계, “해운법 통과로 일단 숨통 좀 트자”

[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일감 몰아주기’, ‘편법 증여’, ‘고용효과 제로’. 최근 몇 년간 국내 재벌기업의 물류자회사(이하 2자 물류업체)를 대표하는 수식어들이다. 그룹 물량을 대거 몰아주면서 초고속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오너는 자식에게 상속세 회피와 경영권 승계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기업의 핵심 기치인 고용은 미미했었다. 2자 물류업체가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와 맞물리면서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는 일감몰아주기 철퇴를 위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했지만, 이들은 저가에 외부 물량을 대거 확보하면서 기존 선사 및 물류업계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더군다나 직접 수송능력이 없어 해당 물량을 재입찰에 붙이면서 가격을 대폭 낮추고 수십년간 뿌리내린 운임체계까지 무시하면서 물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물류업계 전문가는 “재벌의 세속경영으로 과거처럼 애국심과 도덕심에 기댄 정상적 산업성장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2자 물류업체들이 산업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며, “특정기업을 지켜주기보다 한국의 ‘물류산업’이라는 한 산업체를 보호하는 정책이 과감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조언했다.<편집자 주>

 

-그룹물량 등에 업고 초고속 성장

국내 대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2자 물류업체들은 계열사 물량과 3자 물류시장의 물량을 대거 흡수해 11년 만에 6.59배로 초고속 성장했다.<표 1 참조>  반면, 3자 물류업계로 대표되는 해운업계의 매출은 2010년 이후 하락했으며, 성장세도 11년간 1.2배에 그치고 있다. 
 

 
<표 1> 국내 대표 2자 물류기업 성장세

(단위 : 억원)

모기업

설립연도
2자 물류업체
2005
2010
2015
2016
11년간 성장세
현대차
2001
현대글로비스
15,400
72,330
146,710
153,406
9.96
LG
1977
판토스
12,010
22,250
21,890
29,976
2.49
삼성
1985
삼성SDS(물류부문)
-
-
26,520
34,384
-
1998
삼성전자로지텍
8,260
14,670
8,960
8,834
1.07
롯데
1996
롯데로지스틱스
40
8,700
28,920
31,910
797.75
효성
1997
효성트랜스월드
935
2,249
1,814
1,880
2.01
CJ
1930
CJ대한통운
11,716
25,546
50,557
60,819
5.19
한화
1979
한익스프레스
1,024
2,037
4,367
4,679
4.56
합계
49,385
147,782
289,738
325,888
6.59

 

*출처 : 한국선주협회


한국선주협회가 분석한 ‘재벌기업 물류자회사(포워딩 포함 2자 물류) 현황’에 따르면, 국내 대표적 2자 물류업체들은 2005년 4조 9,385억 원의 매출이 지난해 기준 32조 5,888억 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국내 해운업계는 24조 7,660억 원에서 28조 8,780억 원으로 집계됐다.

주목할 점은 내부고발자와 편법 증여 등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글로비스 사태’ 이후이다. 삼성이나 롯데, 한화 등 대다수 2자 물류업체들의 설립시기는 2000년 이전이며, 매출도 지금처럼 물류업계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크지 않다.

그렇지만 2001년 현대글로비스의 출현 이후 매출은 2배, 많게는 218배까지 껑충 뛴다. 현대글로비스 비자금 사태 이후 별다른 제재방안이 없었기 때문에 타 기업에서 악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당시에는 글로비스가 육상운송에서만 포워더(물류주선업)를 악용해 편법증여와 비자금 등이 문제가 됐었기 때문에 해운업계에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며, “그러다 2010년 이후 해운업까지 진출해 과거에 해왔던 행위를 똑같이 되풀이하면서 해운업계까지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0년대 초반 글로비스 사태에 따른 방지책은 없이 오너 구속 수준에서만 마무리짓다보니 글로비스 사례가 대기업들의 편법 증여나 몸집 불리기의 표본(?)이 됐고 다들 이를 따라해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반문하고는, “당시에 방지책을 마련해 놓았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텐데 이를 막지 못해 후회스럽다”고 개탄했다.

-포워더 악용해 물량 재위탁…법 개정 후 지능적 편법 활용

8대 재벌기업의 2자 물류업체 대부분의 특징은 선박이나 트럭 등 운송장비를 보유하지 않고 직접 운송을 하지 않아도 수송 물량을 따올 수 있는 포워더(물류주선업)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포워딩을 근거해 그룹사 물량을 수송하겠다고 계약하고, 이 물량을 본인들이 일부 수송하거나 아예 운송하지 않고 다시 또 다른 물류업체와 계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정부는 2자 물류업체를 제재하기에 앞서 대기업 일감몰아주기를 근절하기 위해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면서 오히려 3자 물류업체들에게 화살로 돌아왔다.

개정된 법에는 오너 일가 등 특수관계인의 주식 지분율을 30% 이하로 조정하고 계열사 매출은 30%이하로 조정토록했다. 그룹사의 물량을 30%만 처리하고 나머지 70%를 3자 물류업체에 배분하라는 취지였다.

2자 물류업체들은 특수관계인의 지분 총합을 30% 이하로 조정했고, 그룹사 물량을 그대로 둔 채 종전 3자 물류업체들이 직접 계약해 왔던 물량까지 가로채 그룹사 매출 비율을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개정법으로 대기업의 물량 배분을 기대했던 정부와 물류업계는 절망했다.

선주협회에 따르면, 8대 재벌기업 물류자회사(2자 물류업체)들은 우리나라 수출물동량 722만TEU 중 641만TEU인 80%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전체 수출입 물동량 1,540만TEU 중 이들 기업들의 물동량은 52%인 801만TEU로 시장지배적 위치에 있다.

선주협회 관계자는 “8대 대기업 2자 물류업체들의 처리 물동량 801만TEU 중 계열사 처리 물량은 363만TEU이고, 외부 물량(3자물량)은 438만TEU이다”며, “전체 물량 중 3자물량이 55%로 계열사 물량보다 더 많이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설명했다.


- 도넘는 2자 물류업체들의 ‘수퍼 갑질’

국내 수출입 물동량의 대부분을 2자 물류업체들이 계약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3자 물류업체들이 입게 됐다.

수송능력이 충분치 않은 2자 물류업체들은 그룹사 물량 혹은 그룹사 물량 비율을 낮추기 위해 계약을 따온 3자물량에 대해 입찰을 붙이면서 운임 인하를 강요하고 계약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2자 물류업체들은 1~3차에 걸친 입찰 과정에서 원하는 운임에 도달하지 않을 경우, 개별 접촉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고 운송계약서에 운임만 명시토록하면서 물량이나 운송기간 등 계약 내용을 수시로 변경했다.

또 운임공표제 시행의 단초가 됐던 마이너스 운임을 강요하는 곳도 있다. 제로운임인 항로가 더 이상 운임 인하가 불가능하자 할증료 삭감을 위해 입찰시 All-in Rate(해상운임+부대비용)을 통해 마이너스 운임을 강요하면서 운임인하가 안될 경우 계약을 파기한다.

특히, 해상운임은 선사들의 몫인 순수 해상운임과 선사가 터미널과 유류업체, 세관 등에 지불해야할 부대비용을 책정해 화주가 선사한테 지급하고 있다. 그렇지만, 2자 물류업체는 이러한 해상운임 책정의 근간을 무시하고 전체 지급액만 주면서 선사가 지급해야할 부대비용마저도 선사에게 책임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사들은 운임을 받아 선박 운항에 짐을 싣고 내리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터미널 등에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러한 비용은 선사가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거쳐 가는 비용이기 때문에 화주가 꼭 지급해 줘야 하는 부분이다”고 설명하고는, “그렇기 때문에 해상운임 책정 근거에 해당 부대비용을 포함시키는데, 이마저도 선사보고 지급하라고 하면서 마이너스 운임 혹은 제로운임을 종용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룹사 물량과 3자물량으로 확보된 대량의 화물을 무기로 상한선을 씌워 재입찰을 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 대표 2자 물류업체로 지목되고 있는 H사의 경우 중국 수입화물 운임이 선사들이 직접 수송할 경우 220달러(TEU)였으나, 자사의 3자물량 비율을 높이기 위해 해당 물량을 가져와 50달러(TEU)의 상한선을 정해놓고 재입찰을 붙여 220달러짜리가 50달러로 둔갑하기도 했다.

P사도 국내 OB맥주의 한일항로 물량을 전담하던 벨기에 AB인베브의 물량을 본인들이 따내고 해당 물량의 수출물량에 대해 종전 수송하던 J상선에게 400달러(TEU)에서 200달러(TEU)로 하향 조정 압박을 해 거절하자 한진해운으로 교체했다.

이밖에 2자 물류업체에 비협조적인 선사에 대해 2~5년간 자사의 입찰참여를 제한시키거나, 신호등 입찰 시스템을 도입해 제시한 운임을 사전검열(?) 하는 작업도 서슴지 않고 있다. 또 국적선사들이 2자 물류업체의 운임꺾기에 반발하자 국적선사 이용을 대폭 축소하고 머스크나 중국선사로 갈아타는 사례도 있다.


 

-글로벌 포워더 대비 고용효과 ‘0’

DHL이나 UPS, DB 쉥커(Schenker), 퀴네나겔(Kuehne+Nagel) 등 글로벌 포워더는 태생부터 3자 물류기업으로 성장하면서 M&A를 통해 규모를 확장했다. 3자 물류업계로 대표되는 해운업체들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1위 머스크가 지금과 같은 공룡업체로 성장하기까지는 미국의 씨랜드 인수 이후였으며, 현재도 활발한 M&A를 통해 영업력을 확장하고 있다.

반면, 국내 2자 물류업체들은 덩치를 키우기 위한 M&A 없이 그룹의 물량을 고스란히 받아 성장해왔다. 그룹사들의 성장이 곧 2자 물류업체들의 성장이 돼 왔다. 거기다 직접 운송이 거의 없고, 그룹사의 물량 의존율이 높다보니 해외지점이나 고용 인력이 비슷한 덩치의 3자 물류업체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다.

 

<표 2> 국내·외 포워더 비교 현황
 

구 분

국 내
해 외
종사자 수(명)
1
현대글로비스
1,000
1
DHL
508,000
2
롯데로지스틱스
460
2
KUEHNE+NAGEL
70,000
3
삼성SDS
300
3
DB Schenker
400,000
4
판토스
6,600
4
NIPPON EXP
67,900
합 계
8,360
합 계
1,642,000
해외 지점 수(개)
1
현대글로비스
55
1
DHL
3,000
2
롯데로지스틱스
26
2
KUEHNE+NAGEL
2,000
3
삼성SDS
47
3
DB Schenker
2,000
4
판토스
54
4
NIPPON EXP
-
합 계
182
합 계
7,000

*출처 : 금융감독원 공시자료 및 각사 홈페이지(2016년 12월 기준)

대표적으로 글로벌 포워더 1~4위까지 업체들과 국내 2자 물류업체들을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DHL의 경우 전세계 3,000개 지점에 50만 8,000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2위인 퀴네나겔은 2,000개 해외지점에 종업원 수가 7만 명에 달한다.

반면, 매출규모면에서 국내 1위인 현대글로비스는 55개 해외지점에 1,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현대상선의 경우, 매출규모는 현대글로비스에 훨씬 못 미치지만 63개 해외지점에 총 1,196명의 근로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글로벌 항공물류주선업(포워더) 순위권 안에 들었던 판토스는 54개 지점에 6,600명이 종사하는 등 그나마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주협회에 따르면, 국내 대표 2자 물류업체들의 매출액은 32조 5,888억 원에 총 종사자 수는 1만 4,147명으로 1인당 매출액이 23억 원에 이른다. 반면 국내 해운업체는 168개사에 매출 28조 8,780억 원에 종사자만 2만 8,907명으로 1인당 매출액은 4분의 1수준인 9억 9,000만 원 수준이다.


A선사 관계자는 “2자 물류업체들은 직접 수송 없이 외부에 물량을 위탁하면서 특별한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며, “물류업은 전세계의 거미줄같은 거점확보를 통해 영업력을 높여 돈을 버는 것이 기본인데, 2자 물류업체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그룹사에서 물량을 쥐어주니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운법 개정안 통과 후 3자 물류육성 정책 마련해야

2자 물류업체들의 끝 모를 ‘수퍼 갑질’과 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해운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현재 여러 반대에 부딪혀 계류 중이다.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해당 법안은 2자 물류업체들이 그룹사의 물량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대기업의 물류자회사인 2자 물류업체가 동일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회사 이외의 사업자와 해운중개업(브로커)이나 물류주선업(포워더) 등의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A선사 관계자는 “자유시장 경제 논리에서 2자 물류업체를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 차라리 그룹사 물량만 처리하게 하고 나머지 물량을 배제시키는 것이 현실적이다”며, “해운업계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하루빨리 통과를 시켜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해당 법안이 3자 물류업계를 보호하는 근본적인 방안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그렇지만 회복되지 않은 시황과 끝없이 떨어지는 육·해상 운임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 3자 물류업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법안을 우선 시행하고, 3자물류 활성화를 위한 육성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전언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적선사가 있어야 무역업계를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은 백번 천번 해도 중간에 끼어든 2자 물류업체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다”며, “과거 창업주가 해왔던 애국심이나 도덕심을 막연하게 기대하기 어렵고, 오로지 돈만 쫒아가는 재벌 위주의 기업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이러한 법안이 우선 통과돼 일단은 숨통 좀 트였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해운업체 관계자는 “법이 제재하지 못하면 괜찮구나 싶으니까 우후죽순으로 따라하는데 2000년대 초반 현대글로비스를 막지 못해 지금 이 지경까지 온 것 아니냐”며, “오죽 답답하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살아 보려는 업계의 입장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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