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현대상선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면 종종 외국기업이 구원투수로 등장한다. 빌헬름센발레니우스, 허치슨, PSA에 이어, 이번에는 미국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1조 원 가량의 투자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정부가 현대상선에 수 조 원대의 자금 지원을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이 회사는 외국기업으로부터 1조 원 가량의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투자사로 거론된 블랙록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회사에 자금을 투자해 이익을 극대화 하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이 회사로부터 투자 유치를 이끌어 낸다는 자체가 현대상선의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반증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국내 유일의 원양 컨테이너선사인 현대상선에 ‘외국자본 유입’이 이렇듯 긍정적 요소로만 적용될지는 의문이다. 현대상선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외자유치로 돌파구를 찾았지만, 그 결과가 그리 좋지 못했다. 더군다나 지금은 정부의 수조원 대 투자결정을 앞두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블랙록이 순수하게 현대상선의 성장가능성만 가지고 투자를 하겠다고 한다면 바랄 것이 없지만, 다른 무언가를 얻겠다는 생각인지 알 수 없어 걱정스럽다”며, “이미 현대상선이 외국자본 유입으로 혹독한 댓가를 치르고 있지 않느냐”고 우려했다.

특히, 현재 미국의 투자시장은 수익률이 투자금 대비 15~20% 이상 보장되지 않으면 투자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주변상황에도 불구, 블랙록이 투자를 결정한다면 위험을 최소화 하는 선에서 상당한 이익을 가져갈 수 있다는 자신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망신을 당한 정부는 하나 남은 현대상선 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살려내기 위해 자금지원을 공표한바 있다. 이는 현대상선에 대한 리스크가 상당부문 감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도 정부의 자금 지원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유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원양 ‘컨’선사에 지원키로 했던 5조 6,000억 원의 자금이 현대상선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전한 바 있다.

산업은행도 지난해 한진해운을 파산키로 결정한 이유로 ‘한진해운이 현대상선보다 앞으로 투입해야 할 자금이 더 많다’는 점을 들었었다. 때문에 현대상선에 대한 자금 투입은 어느정도 기정사실화 됐다.

아마도 블랙록이 현대상선에 투자를 확정한다면 이러한 점이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현대상선이 굳이 외자를 끌어들여야 하느냐는 점은 한 번쯤 생각해 볼만 하다. 정부의 지원이 사실상 확정적인 상황에서 현대상선측이 외국 자본 유치에 열을 기울인다는 것은 성급한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에 대한 자금지원을 놓고 산은과 이래저래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으나, 결국에는 국내 유일 원양 ‘컨’선사이기 때문에 정부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며, “혈세 지원으로 현대상선을 정상화시켜 놨는데, 그 열매는 외국업체와 나눠먹게 된다면, 이것이 국부유출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어 “현 시점에 외국업체를 끌어들이는 이유도 모르겠고, 블랙록도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현대상선을 정상화시킬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투자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진해운을 죽이고 현대상선을 살렸다는 비판은 현대상선을 정상화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이어진다. 일단 두 회사 중 하나만 살리겠다고 결정했다면 반드시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외국자본이 유입되는 것이 현대상선을 위해 과연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현대상선은 산업은행으로 대주주가 바뀐 이후 스스로 ‘국민기업’이라고 칭했다. ‘국민기업’이라 하면 외국자본 유입에 좀 더 전략적이고 세밀한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현대상선이 지난해 기사회생 한 것은 경영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여러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겠지만, 무엇보다 한진해운보다 회생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우선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현대상선이 정부의 지원없이 글로벌선사로 도약할 수 있다면 그들이 어느 시점에 외자유치를 하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처해 있는 현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현대상선에 급한 것은 블랙록의 1조 원이 아닌, '2M과의 전략적 제휴 이후 얼라이언스 재승선을 위한 중단기 로드맵'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결정은 현대상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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