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정부자금은 거저 주는 돈이라고 생각하니, 일단 쓰고 보자는 심보 아니겠는가. 회사 돈이었으면 그렇게 안 썼을 것이다.”

최근 현대상선이 ‘한진해운 우량자산’이라고 확보했다던 일본 도쿄터미널과 스페인 알헤시라스터미널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자 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현대상선이 확보했다던 도쿄터미널은 실제로는 확보하지 못했고, 터미널 지분 100%를 인수했다던 알헤시라스터미널도 지분 절반 가량을 외국선사에 거의 공짜로 내줘야 할 판이다. 현대상선은 두 터미널을 온전히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보도자료까지 배포하며 홍보에 열을 올렸었다.

허위자료를 발표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현대상선의 어처구니 없는 업무처리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선사가 터미널을 운영하는 이유는 자사 선박이 기항하는 터미널의 하역요율을 낮춰 비용을 절감하고 안정적으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진 두 터미널은 이러한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 도쿄터미널과 알헤시라스터미널에는 현대상선의 배가 기항한 적이 없거나, 상대방이 문제를 제기하자 부랴부랴 급하게 한 개 노선을 개설해 기항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한진해운의 도쿄터미널은 알짜 터미널로 알려져 있다. 일본항만은 보증금만 맡겨놓으면 하역사가 장비를 들고 들어와 하역만 하고, 근로자는 항운협회가 파견하는 등 철저하게 아웃소싱체제로 운영된다.

전 한진해운 관계자는 “도쿄를 비롯해 일본 항만 터미널들은 운영사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터미널을 운영해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데다, 터미널을 쉽게 바꾸지 못해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어 확보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전하고는, “한진해운도 보증금 37억 원만 제시하고 맨몸으로 들어가 운영해 수익을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한진해운 도쿄터미널이 파산 이후에도 흑자를 내고 있는 것은 그들만의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동아시아 환적이 일본 고베와 도쿄에서 이뤄지던 1995년 터미널을 확보했지만, 2000년대 이후 부산신항으로 환적물량이 몰리자 재빠르게 중국선사들을 유치했다. 한진해운이 파산한 이후 이 터미널이 여전히 수익이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쿄터미널과 달리, 알헤시라스 한진터미널은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해당 터미널은 총 1억 유로 규모의 20년짜리 장기 PF를 일으켜 개발했기 때문에 현대상선이 1,100억 원을 넘게 들여 터미널을 인수해도 2024년까지 잔여기간동안 꾸준히 빚을 갚아 나가야 한다. 현대상선이 유럽에 선박을 투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잔여 기간동안 이 터미널에서 어떻게 수익을 내 빚을 갚아나갈 수 있을지 채권단이 고민을 안했을리 없다.

전 한진해운 관계자는 “현대상선의 알헤시라스터미널 인수는 국민 혈세를 들여 외국 채권단 빚 갚아주고 앞으로도 계속 빚 갚아달라고 해준 꼴 밖에 안된다”고 비판했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이 일궈놓은 우량자산인 도쿄터미널은 확보하지 못하고, 좀 더 신중하게 검토했어야 할 터미널은 거액을 들여 인수한데 이어, 이 마저도 지분 절반을 공짜로 내어 줄 위기에 놓였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터미널을 인수하라고 돈까지 쥐어 줬음에도 이러한 사태를 만들어 놓은 데 대해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반드시 확보해야 할 터미널(도쿄터미널)은 못 얻고, 이미 자사 터미널이 있는 지역의 항만터미널(카오슝, 롱비치터미널)만 가져온 현대상선이 우리나라 대표 선사라는 것이 창피할 지경이다”고 지적했다.

현대상선이 어떤 터미널 인수전략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 분명 훌륭한 전략은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한진해운을 파산시킨데 대한 비난 여론을 가리기 위해 현대상선에 '묻지마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본지가 그동안 수 차례에 걸쳐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했음에도 불구, 혈세를 지원해 준 산은은 상황 파악 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산은이 만약 자금 지원 후에 현대상선에 대한 감시체계를 철저하게 가동했더라면, 이러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작금의 상황은 산은이 '묻지마 지원'을 하자, 현대는 '일단 쓰고 보자'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 현상이 만들어 낸 '헛발질'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공적 자금이 투입되면 반드시 ‘투명성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공적 자금은 국민들의 혈세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이 정부에 해외 터미널을 개발하기 위해 또 다시 1조 원 이상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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