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담당자, “지원된 자금은 회사가 알아서 사용할 문제”

-해운업계, “우리나라 해운물류 미래 암담하다” 큰 충격

 

[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현대상선이 인수한 기존 한진해운 터미널들에 대한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음에도 대주주로서 회사를 관리 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산업은행측이 오히려 현대상선측을 두둔하고 있어 해운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산업은행은 현대상선에 지원한 자금도 ‘회사가 영업에 알아서 사용할 문제’라며 감독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데다, 현대상선이 인수한 터미널들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최근 현대상선을 관리하는 산업은행 담당자는 현대상선이 인수한 한진해운 터미널 중 도쿄(일본)와 알헤시라스(스페인), 캘리포니아(미국) 등 해외 터미널들이 연이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본지 보도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최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인 터미널 인수 후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묻자 “현대상선 동경(도쿄)터미널을 인수 못해서 어떤 큰 문제가 생겼느냐. 돈을 떼였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돈을 떼이지 않으면 상관없냐는 질문에는 “원래 (도쿄터미널이) 자기(현대상선) 것이 아니었고, 돈도 지급하지 않아 돈이 안 나간다”고 현대상선을 두둔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 CUT터미널 반납에 대해서는 “(현대상선이) CUT를 운영하는데 있어 조건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고 밝히고는, 터미널 운영사인 머스크에 조기에 반납함에 따라 향후 10년 간 물량 250만TEU를 처리해야만 하는 조건에 대해서도 “최소 물동량을 보증해 주지 않는 터미널이 어디 있느냐. 어느 정도 물동량은 보전해 줘야 하며, 옆에 월세 조건이 더 좋은 데가 나와 옮겼는데, 그게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반문했다.

이어 “(CUT 바로 옆에 새로 인수한 터미널인)TTI는 성공적이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80% 지분 가진데서 20% 지분 투자하는데 똑 같은 조건으로 해주는 데가 어디 있느냐”며, “그런 거라도 한 것이 어디냐. (CUT도) 남의 것 빌려 쓰고 있는데, 좋은 조건으로 반납하는 건 도대체 어떻게 반납하는 거냐”고 덧붙였다.

이 같은 산업은행 담당자의 발언에 해운업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인 도쿄터미널은 반드시 인수를 해야 했던 터미널임에도 ‘돈만 안 떼이면 그만’이라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의 극치이며, 또 글로벌 항만터미널시장의 추세가 ‘통합’으로 바뀌고 있는데다 자사 운영 터미널이 있음에도 운영권도 없는 바로 옆 터미널을 인수하는 컨테이너 선사는 없다는 지적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자금을 지원하는 명분이 ‘한진해운 우량자산 확보 차원’이라고 공표해 놓고는 이제 와서 도쿄터미널에 문제가 생기니 돈만 안 떼이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본인들 스스로 구조조정 원칙을 파괴하는 언행 아니냐”면서, “캘리포니아항만에서도 기존에 사용하던 CUT가 있었음에도 운영권도 없는 터미널을 198억 원이나 주고 매입할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전했다.

이어 “운영권도 없는 터미널에 기항하겠다고 기존 터미널을 반납했는데, CUT 터미널 조기 반납으로 향후 10년간 250만TEU를 의무적으로 CUT에서 처리해야 함에 따라 새로 들어간 TTI와 반납한 CUT 터미널에 양분해 기항해야만 하는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조건이 좋든 나쁘든 과잉 중복투자가 아니냐”면서, “상식적으로 같은 항만에 터미널이 2개면 통합을 하는데, 본인들 지분 하나도 없는 터미널에 의무적으로 기항해야만 하는 바보같은 짓을 왜 하느냐”고 주장했다.

항만업계 관계자도 “예를 들어 선사가 M&A를 통해 불가피하게 자사가 사용하고 있는 항만내 바로 옆 터미널을 확보했다면, 양 터미널을 통합하는 작업을 하거나 불필요한 터미널을 폐쇄하는 조치를 취한다”며, “이 같은 경우는 선사가 덩치를 키우기 위해 M&A를 진행했는데 불필요한 터미널까지 인수할 수밖에 없을 때 진행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상선은 한진해운과 합병도 아니고 우량자산 인수 명목으로 진행했는데, 자사 터미널이 있고 기존 터미널의 반납이나 폐쇄가 여의치 않을 경우라면 인수를 안 하는 것이 맞지 뭣 하러 돈 들여 운영권도 없는 터미널을 인수하느냐”며, “산업은행에서 저런 식의 답변을 했다니 참 할 말이 없고, 우리나라 해운물류의 미래가 암담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산업은행측이 현대상선에 3,000억 원을 지원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됐거나 또는 사용될 예정인지 상관없다는 식이어서 관리감독 책임마저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대상선에 지원키로 한 자금 3,000억 원 중 터미널 인수자금을 제외한 금액이 어디에 활용됐는지 알 수 있느냐는 질문에 “돈에 번호가 달려 있느냐”고 반문하고는, “저희가 (자금을)지원한 것은 영업에 필요한 것을 사용하라고 지원한 것이지, 이 돈을 어디에 얼마, 어디에 얼마 쓰라고 이렇게 지원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12월 부행장이 직접 나서 현대상선에 한진해운 자산 인수 명목으로 3,000억 원 가량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알헤시라스 터미널 인수자금 1,176억 원, 카오슝터미널 80억 원, 롱비치·시애틀(TTI) 198억 원 등 총 1,500억 원도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남은 금액이 어디에 활용됐는지, 심지어 현대측에 약속된 지원이 이뤄졌는지 그 여부에 대해서도 확인이 어렵다.

관련업계는 일반 기업들도 운영자금과 시설자금 등 명목별로 자금 용처가 명확해야 은행에서 자금을 빌릴 수 있는데, 자율협약을 맺고 은행으로부터 관리를 받고 있는 현대상선에 거액의 자금을 지원해놓고도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고 않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회사라는 것이 운영자금을 주면 어디에 얼마 써야 하는지 비용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맞게 은행에 신청을 하고 지원을 받는데, 현대상선은 현재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그 돈을 어디에 얼마 쓰는지 모르면 누가 안다는 것이냐”면서, “대주주로서 어디에 얼마만큼 쓰라고 관리를 하는 것이 산은이 할 일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자율협약을 맺고 은행에서 관련회사에 파견을 나와 자금집행을 하고 있는데 그런 곳에서 ‘돈에 번호가 없어서 어디에 얼마를 썼는지 알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현대상선을 관리하는)산업은행 담당자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며, “기재부에서도 몇백억 원이라도 명목이 뚜렷하지 않으면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3,000억 원이 애들 장난이냐”고 분개했다.

한편, 현대상선은 지난 13일 시설투자 4,000억 원과 운영자금 2,936억 원을 마련하기 위해 총 6,936억 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키로 결정했다고 시간외 공시했다. 증자방식은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 공모방식이며, 일반 공모 후에도 발생되는 최종 실권은 인수단이 100% 인수한다. 특히, 시설투자자금 4,000억 원 중 대부분이 터미널 투자자금에 활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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