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현대상선이 한진퍼시픽을 인수할 것이 아니라, 도쿄신항을 어떻게해서든 확보했었어야 했는데, 한진이 갖고 있던 최고의 우량자산이 날아갔다.”

현대상선이 한진해운의 도쿄신항 운영권마저 잃었다는 보도를 접한 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한진해운이 운영키로 계약돼 있었던 도쿄신항은 선석길이 400m 22열 크레인 3기를 도입할 예정으로 연간 50만TEU를 처리할 수 있는 터미널로 개발될 예정이다. 아울러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접안할 수 있는 필수요소인 수심 16m도 확보하게 된다.

한진해운은 첨단 시설이 들어설 도쿄신항이 내년 11월 개장하게 되면 기존에 운영하던 아오미 부두를 도쿄항부두주식회사에 반납하고 신항으로 선석을 옮길 예정이었다. 신항은 재활용쓰레기를 매립해 만든 인공섬으로 3면을 부두로 활용할 수 있는데다, 도쿄에서 유일하게 1만 3,000TEU급 이상 초대형선이 접안할 수 있다.

도쿄항부두측이 한진해운으로부터 아오미부두를 반납 받기로 한 이유도 도쿄항 전체 하역 효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한다. 한진해운 아오미부두 선석 바로 옆 3개 선석이 일본 하역사들의 공용부두로 활용됐는데, 해당 부두에서 물량이 넘쳐 선석이 더 필요해 불가피하게 한진해운을 신항으로 옮겨주기로 한 것이다.

도쿄항부두측은 한진해운에 신항 운영권을 내주면서 신규 선사도 유치하고, 기존 아오미부두의 혼잡 문제까지 해소할 전략이었다. 또 도쿄올림픽 개최를 대비해 도쿄 시내 정체를 줄이기 위해 신항은 도심 외곽으로 트럭이 빠질 수 있는 다리도 만들었다.

전 한진해운 관계자는 “한진해운 입장에서는 신항으로의 이전하게 되면 도심 외곽으로 바로 빠질 수 있어 트럭 대기시간이 줄어드는데다 새로운 부두를 확보할 수 있었고, 도쿄항부두측은 기존 아오미부두의 공용부두 물량이 넘쳐 바로 옆에 자리가 하나 더 필요한데 이걸 확보할 수 있게돼 서로 이익이 되는 정책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한진해운 파산 이후 현대상선이 끼어들면서 도쿄항부두측과 도쿄항만업계의 전략이 수정됐다고 한다. 도쿄항부두측은 현대상선이 한진해운만큼의 물량유치 능력이 부족하고 글로벌 얼라이언스에 정식으로 가입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현대상선의 터미널 운영능력에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상선이 도쿄신항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에 다소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현대상선은 소송을 통해 법대로 하면 해결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도쿄항은 법에 앞서 사람이나 사업자단체의 입김이 우선해 작용하고 있는 매우 보수적인 곳이다. 현대상선이 한진퍼시픽을 확보했기 때문에 사실상 도쿄터미널을 인수했다는 설레발식 발표는 일본 현지 관련단체로부터 ‘현대상선에 한진해운 도쿄터미널을 넘기면 안된다’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도화선이 됐다고 한다.

국내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대가 한진해운 도쿄신항을 확보하고자 했다면 도쿄항부두측과 얼굴을 붉히며 조정신청을 제기하기 보다는 일본항운협회를 달래는 일을 먼저 했어야 했다”며, “그렇게 해도 도쿄항부두에서 줄까 말까 한 운영권을 민사조정까지 했으니 이는 분명 전략적 실패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일본 현지에서는 현대상선의 조정신청이 결과적으로 신항 개장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 때문에 미운털이 박여 앞으로 도쿄나 다른 일본에서도 영업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현대상선이 한진해운 도쿄터미널을 인수해 신항 운영권까지 확보했다면 한진해운이 영업해 놓은 기존 항로들을 그대로 흡수하면서 현대상선이 갖지 못했던 거점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현대상선도 한진해운 도쿄터미널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일을 추진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현대상선측에 아쉬운 점은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을 하다보면 실수도 하기 마련이지만, 이를 얼렁뚱땅 넘어가면 안된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의 가장 좋은 유산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이를 허공에 날려 놓고도, 그 어떤 반성도 하지 않고 있다. 현대상선이 일반 형태의 민간기업이라면 그들만의 실수라고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상선은 한진해운이 사라진 자리를 메워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또 앞으로 투입할 예정인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현대상선에는 앞으로 조 단위의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다. 공적자금은 결국 국민들의 쌈지주머니에서 나온다. 때문에 현대상선의 잘못된 부문은 반드시 바로잡고 가야 한다. 현대상선은 내년에 설립될 해양진흥공사의 자금에 목을 메고 있다. 공적자금은 자격과 가치가 있는 기업에 투입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만 부어대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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