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오병근 편집국장] “기자 생활을 하신지 얼마 안됐고, 이런 일로 인생의 오점을 남기게 되면 저도 걱정이 되고 해서...(중략) 법무실에서 소송변호사까지 선임했어요. 2시까지 오시면 조정을 해 보겠는데, 직업적인 일을 하면서 인생의 오점을 남기는 일이 생기면...”
본지 기자는 지난해 10월 12일 현대상선 홍보업무를 총괄하는 A상무(대외협력실장)로부터 이러한 내용이 담긴 협박성 전화를 받았다.
당시 담당기자는 상당한 혼란을 겪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후속 취재와 관련 보도를 이어 갔다. 현대상선 측은 이후 2개월여가 흐른 지난해 말, 본지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공적자금을 받아 한진해운의 해외 우량자산을 인수한 내용이 부실해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다는 취지의 기사내용이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측은 소장에서 현대상선이 광고 요구를 거절하자 본지가 더욱더 사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등 의도적으로 악의적인 보도를 내보냈다고 주장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히지만, 세부 내용에 대한 옳고 그름은 법정에서 가리면 되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문제는 그들의 업무처리방식이다. 노련한 대기업 홍보책임자가 여기자를 회유하는데 실패하자, 당사자간 대화를 녹음해 이를 증거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실제로 소장에 첨부된 증거자료 중 가장 큰 비중은 A실장의 승용차 안에서 본지 기자와 나눈 대화를 A실장이 몰래 녹음한 내용이다. 당시 A실장은 본지 기자에게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고, 녹음은 식당으로 가는 승용차 안에서 이뤄졌다.
어찌됐든 현대상선 측이 보낸 소장 중 해당 녹취록은 A4용지 22페이지에 달한다. 아마도 본지를 나쁜 매체로 몰아가기 위해서는 이보다 좋은 자료는 없을 것이라고 현대상선 측은 생각했을 것이다.
A 실장은 이외에도 본지 기자에게 추석을 전후해 수차례 전화를 걸어 집요하리만큼 “원하는 광고금액을 말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담당기자가 10월 11일 통화에서 “자꾸 이상하게 몰아가는데, 우리는 그런 매체가 아니다”라고 하자, 이튿날 아침 A 실장은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면서 소송을 걸겠다는 통보를 한 것이다.
이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는 중소언론을 길들이기 위해 활용하는 일부 대기업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바른 말을 하는 중소언론사에 돈의 힘으로 재갈을 물리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약점을 잡아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본지에 소송을 걸기 위해 국내 최상위급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를 10명이나 선임했다. 작은 전문지를 상대하기 위한 소송대리인단으로는 좀 과하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듯하다. 본인들이 떳떳하다면 이렇게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변호사를 선임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선택은 그들이 하기에 뭐라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한편으론 선임비용 또한 국민의 세금이란 점에서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상선은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제공받는 업체이다. 때문에 자금 운영이나 투자에 있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등 보다 신중한 운영은 필수라 할 수 있다. 혈세가 어디에 얼마만큼 사용됐는지, 투자는 유효적절한 곳에 이뤄지고 있는지 등을 감시하는 것은 언론의 책무이다. 언론의 가장 큰 기능이 감시이고, 혈세가 투입되는 사업에는 더욱더 세심한 감시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현대상선은 전 정부가 한진해운을 파산시키고 유일하게 남겨 놓은 원양 국적선사가 아닌가.
앞으로 현대상선에는 수조 원대의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구조조정에 실패할 시 이보다 많은 공적자금의 추가 투입은 불가피하다. 때문에 잘못된 점이 있다면 지금 바로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향후 국내 해운산업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현대상선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눈이 더욱 매서워져야 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 현대상선은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보도의 정당성을 훼손시키려 하고 있으며, 나아가 언론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적폐의 전형적인 한 예가 아닐 수 없다.
중소언론사의 입을 막기 위한 대기업의 횡포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본지는 이번 사안을 ‘대기업의 중소언론 죽이기’로 규정, 매우 엄중한 자세로 임할 것이며, 보도내용이 희석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