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논설위원 ·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조선업 시황이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신문에는 연일 국내 대형 조선소가 고가의 해양설비를 수주했다는 쾌거가 전해진다. 심각한 수주난에 허덕이는 전 세계 조선소들과는 달리 한국 조선산업의 수주기록은 작년보다도 월등히 좋다. 한국이 가장 잘하는 고가의 해양설비 시장이 활황인 덕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즐거운 분위기와는 달리 우리에게는 중요하지만 잊혀지고 서서히 죽어가는 존재가 있다. 바로 중소 조선산업이다.

세계 1위 한국 조선산업에는 현대, 대우 삼성 같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선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중소 조선산업은 7대 대형 조선소를 제외한 중대형급 이하의 선박을 건조하는 20여 개의 조선소로 이루어져 있다. 석유제품운반선 같은 일부 선종은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한다.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작지만 강한 면모를 발휘하는 조선소들이었다. 문제는 금융위기가 닥치고 해운조선 시황이 침체되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2008년 상반기까지 계속된 조선호황기에 설비투자도 끝내지 않은 상황에서 수주를 받기 시작한 일부 중소조선소들은 연일 즐거운 비명이었다. 발주하려는 선주들이 줄을 서있었고 계약금을 받아서 설비를 투자하면 되는 일이었다. 수주받은 선박은 그 다음 수주선박의 선수금을 받아서 건조하려 했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터지고 경기가 급랭됐다. 기대했던 다음 수주는 이어지지 않았고 현금은 부족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RG를 발급해주며 은행들이 권해줬던 키코(KIKO)때문에 어마어마한 손실까지 입게되자 거의 회복 불능에 빠져버린 조선소들도 많이 있다. 그나마도 어떻게 해서든지 다음 수주를 이어가려 했으나 재무적 위기에 봉착한 조선소에 RG를 발급해줄 은행이 없어 다 잡은 물량도 놓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위기를 넘길 만큼의 일감이 남아 있는 조선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중소 조선소들이 은행 등 채권단의 관리 하에 놓여있다. 모두들 너무나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중소조선소의 경영책임은 각 조선소가 져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이 자본주의를 표방하고 시장 질서를 우선시 하는 우리나라의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렇게 죽어가는 중소조선소들을 ‘당신들의 책임이오’하는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존재들이다.

중소조선소들은 경남과 전남권에 밀집돼 있고 수 만 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어 이들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한다. 2007년도에는 250억 달러가 넘는 수주를 기록했을만큼 '중소'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설계와 R&D를 직접 하진 않지만 무엇보다도 선박건조에 있어서는 경쟁국가들에 비해 탁월하다. 표준선박만을 만들어서 선주들의 빈축을 사는 일본이나 품질에서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중국에 비해 동급 조선소들 중에서는 우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아마 중국 정부의 관리들은 국내 중형 조선소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국 조선소가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얼마전 방한했던 그리스 최대 선주들 중 한사람인 Danaos의 쿠스타스 회장도 비슷한 견해를 밝히고 한국 중소조선을 살려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지금의 중소조선산업의 위기는 모두의 관심과 응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만큼 심각하다.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없이는 어려워 보인다. 무역보험공사 등에 일정 규모의 자금을 예치하고 이를 기반으로 보증을 해 줌으로써 중소조선소들이 RG를 계속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 가장 시급할 것 같다. 아울러 수리조선소로 전환하려는 일부 중소 조선소들은 수리용 장비구매 등 새로운 생존전략에 필요한 자금을 특별히 편성해 빌려주는 것도 필요할 듯하다. 우선은 그들이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대형 조선소에서 이전시켜 줄만한 기술들을 이전시키기도 하고 실력있는 설계 전문기업도 육성하고 중소조선을 위한 공동 영업조직도 양성하는 등의 조치들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지금 정부는 차세대 먹거리를 위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많은 예산도 편성하고 있다. 그런데 중소 조선산업은 이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고 차세대까지도 이어갈 충분한 실력이 있는 산업이다. 기왕에 손에 쥔 것도 잃어가면서 어떻게 불확실한 앞날만을 걱정할 것인가. 이들 예산의 일부라도 위기에 빠진 산업을 살리는데 사용할 수는 없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 드립니다.

[양종서 박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조선공학과 학사 (1990)
-서울대학교 조선공학과 석사 (1992)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기술경영 전공 박사 (공학박사 2005)
- 기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조선산업, 자동차산업 등 담당)
- 現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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