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논설위원 ·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필자가 조선공학과 대학원생이었던 1990년쯤으로 기억된다. 국내 대형 조선소의 연구개발을 책임지고 있던 선배님들이 학교에 와서 LNG선에 대한 세미나를 해주신 적이 있다. 내용은 인상적이었다. 위험해보이면서도 기술 집약적이고 한 척에 수억 달러를 호가하는 고가의 선박이었다. 세미나를 듣고 난 소감은 ‘과연 저런 선박을 우리나라에서 만들 수 있을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LNG선을 건조한 실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미나 내용 중 한국가스공사의 발주로 국내 대형 조선소들이 이를 건조한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과연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는 그 당시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대성공’이란 표현 밖에는 달리 말할 것이 없을 듯하다. 90년대에 뛰어든 LNG선 시장에서 지금의 한국 조선산업은 70% 이상을 점유하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지난해에만 약 90억달러의 LNG선을 수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쟁국인 중국도 LNG선을 건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품질이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준은 아닌 듯하다. 한국이 없었다면 전 세계 LNG산업은 발전이 더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LNG선의 성공은 (다소 비약이 될 수도 있겠으나)한국이 자원빈국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산업을 연구하다 보면 ‘과연 우리나라만큼 천연자원이라고는 없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5,500억 달러를 수출해서 원유과 가스를 수입하는 데만 1,400억 달러를 쓴 나라이다. LNG만해도 한국은 전 세계 2위의 LNG수입국가이다. 1위는 우리만큼이나 자원 없기로 유명한 대형 산업국가 일본이다. 나머지 선진국들은 대부분 자국 내에서 가스가 생산되거나 인근 국가에서 파이프라인으로 받아서 쓰기 때문에 굳이 LNG를 쓰지 않거나, 비중이 작은 편이다.

세계 2위 규모의 우리나라 가스수입을 관장하는 한국가스공사는 전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LNG 바이어 중 하나이다. 그래서 많은 LNG 운송물량을 가진 중요한 화주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은 한국 조선소들이 LNG선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LNG선의 성공에 있어서 가스공사의 선박발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까지 LNG선 건조실적이 없었던 조선소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지원한 공기업의 결단이 없었다면 한국 조선소들은 지금까지도 이 시장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적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신성장동력으로 손꼽히고 있는 태양광이나 풍력에너지 산업이 해외시장으로의 진출이 미흡한 것도 국내에서 실적을 쌓을 수 있는 여건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LNG선에 있어서 우리 조선소들은 오히려 자원빈국인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독보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는 우리 조선소들도 LNG선의 기술이 독립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직까지 화물창에 대한 기술료를 해외 업체에 지급하고 있다. 이는 선가의 3~5%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로열티를 줄이고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 우리 조선소들은 지금까지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이미 상용화단계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적이다. 아직까지 어떠한 선주도 기존 실적이 없는 개발기술을 적용한 선박을 발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선소들은 다시 가스공사를 바라보고 있는데 사정이 여의치만은 않은 듯하다.

20여년 만에 가스공사가 한 번 더 나서 줘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물론, 공사의 입장에서는 '세계 최고의 경지에 오른 조선업계를 위해 또 다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회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으로는 우리 조선업계가 노력한 결과를 세상에 내 놓을 수 있는 길이 가스공사를 통하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우리 조선산업의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가스공사가 다시 한 번 결단을 내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계 최고의 조선소들이 개발한 기술이다. 더군다나 자국 수요를 이용해서 중국도 쫒아오고 있는 실정이다. 자원 없는 이 나라에서 같이 살아가야 할 우리는 남이 아니지 않은가?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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