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논설위원 ·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몇 해 전 사석에서 동남아 어느 나라의 국영은행 부행장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다. 그 나라가 꿈꾸는 목표 중 하나가 대형 컨테이너항구와 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를 가지는 것이라는 얘기였다. 물론 그 목표는 지금도 요원해 보이고 그 나라가 가진 조선소는 중소형급 2개가 전부이다.

그런데 어쩌면 일본이 그 꿈을 이루어줄 지도 모르겠다. 연초 한 언론에 일본 정부의 주도로 일본산 기자재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선박의 설계와 건조 기술을 동남아 국가들에 이전하는 사업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실린 바 있다. 또 몇 일전에는 일본의 한 대형 조선소가 중국에 8만2,000t급 선박 건조기술을 이전한다는 기사가 전문매체에 실렸다.

일본이 이제는 선박기술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한 때 전 세계를 제패했던 일본 조선산업의 최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쟁국에 이러한 기술이 넘어갈 경우의 파장은 크겠지만, 그보다 우선 일본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됐으며 '우리는 이러한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일본은 과거 인건비 등 고비용구조로 인해 가격 경쟁에서 한국에 밀렸다는 것이 지금 한국과 중국의 경쟁상황과 비슷한 점이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와 사회구조가 일본과 비슷하고 어느 정도의 시차를 두고 일본의 문제들이 한국에서 되풀이 되어 일어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일본 조선산업의 몰락을 지켜보는 국내 조선업계 사람들이 '이것이 우리의 미래가 아닐까' 하는 우려와 불안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러한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은 닮은 듯 하면서도 너무나 다르다. 동양철학과 주역을 오랫동안 공부한 어느 학자의 설명을 인용하면 이렇다. “일본 민족은 음(-)의 성격이 매우 강해 성격이 치밀하고 계산적이며 이재에 밝고 정신 보다는 물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의심이 많아 법률, 규범 등을 정하면 이를 철저히 지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동양철학 분야의 지식이 짧은 필자로서는 이 말의 진위를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일본인의 특성은 잘 설명하는 듯하다. 아울러 우리와는 무척이나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러한 다른 특성 때문에 조선산업의 역사에 있어서도 다른 점이 많이 있다. 故 정주영 현대그룹 전회장이 500원짜리 지폐로 영국의 은행을 설득해 차관을 얻어 조선업을 시작한 일화가 일본인들에게도 가능했을까? 치밀하게 계산하고 행동하는 일본인들이 정주영 회장이었다면 아마도 영국 은행까지 가는데 십여년은 더 걸렸을 것이다.

일본 조선산업의 몰락도 그들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80년대 제 2차 오일쇼크에 의한 불황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가격 경쟁력에서 한국 조선소들에 밀리게 됐다. 이에 일본은 스스로 대규모 구조 조정으로 설계와 개발인력까지 산업에서 철수시키는 악수를 둔 것이 몰락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그 이후 한국은 반대로 대형 설비에 투자하고 2000년대의 호황이 찾아왔을 때 시장의 변화에 잘 적응한 반면, 일본은 호황의 기회를 살리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호황기에 일본 조선업계는 많은 후회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치밀한 계산 하에 이루어진 행동의 결과이겠으나 그런 계산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엔고까지 겹쳐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 조선업계는 마지막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그들 스스로에게 득이 될지 혹은 다시 한번 후회할 일이 될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것이다.

일본인들에 비해 치밀한 계획과 행동이 다소 미흡한 우리 조선업계는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념으로 지금까지 끌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불황과 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계산기를 두드리기 보다는 희망을 믿고 미래에 투자해 왔다. 기술을 개발하고 한척 한척 성실히 배를 건조하면서 실력을 쌓은 것이 오늘의 우리 조선산업이다.

앞으로는 우리도 미래를 계산하고 계획하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자세도 좀 더 배워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탁월한 위기극복 능력, 농경민족 특유의 묵묵함과 성실함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기본 자산이 아닐까 한다. 지금도 어려운 시기이고 앞으로도 많은 위기가 있겠지만 우리 조선업계는 답을 찾을 것이고,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일본이 우리의 경쟁국에 제공할 기술들은 우리 업계를 조금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중국도 일본의 기술 덕분에 경쟁력 차이를 좀 더 빠르게 좁힐 것이다. 우리 업계는 여기에도 대비해야 한다.

경쟁국인 중국에 비해 고비용 구조도 지속되고 있고 시황도 좋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개발할 기술이 많이 남아있고 계속해서 기술혁신을 이뤄 가고 있다. 고연비 기술, 환경기술, 시장이 원하는 새로운 선종 등 우리 업계의 탁월한 능력을 펼칠 시장의 가능성은 아직도 많이 있고 우리 조선산업에는 능력있는 인재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정주영 회장이 영국 은행가들에게 했다는 말처럼 우리는 원래부터 배를 잘 만드는 민족이다.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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