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논설위원 ·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얼마 전 철강, 선주, 조선협회 등 3개 협회가 주최한 포럼에 참석한 바 있다. 내용은 3개 협회의 상생에 관한 주제였다. 모든 협회는 회원사들을 중심으로 포럼, 연구회 등 많은 행사를 개최하지만 이렇게 3개 협회가 한꺼번에 상생을 협의하는 자리는 처음이었고 다소 신선한 느낌이 있었다.

이들 3개 협회는 서로 얽히고 얽힌 관계에 있다. 조선소는 제철소에서 만든 후판을 구매하므로 조선협회는 철강협회의 고객이다. 또 철강사들은 철광석과 석탄 운송을 해운사에 맡기므로 철강협회는 선주협회의 고객이다. 마지막으로 선주협회는 조선소로부터 선박을 구매하는 조선협회의 고객인 것이다.

각 산업은 모두 각각의 분야에서 전 세계 5위권 내에 드는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 기간산업들이다. 이들 3개 산업이 고루 발달할 수 있었다는 것은 한국 경제의 저력이며 앞으로의 희망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산업의 발전은 조선산업 발전의 기반이 됐다. 해운업의 발전은 우리 철강사들이 필요한 원료 및 수출 해운서비스를 적기에 제공하고 있으며, 최고 수준의 조선소들은 우리 해운사에 고품질의 선박을 인도하고 있다. 이러한 3개 산업이 위기에 대응해 한자리에 모여 상생을 논의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아름다운 겉모습과는 달리 이들 산업의 기업간 거래에 있어서는 비공식적이지만 불협화음이나 불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간의 거래가 항상 깨끗할 수만은 없지만, 이러한 국내 연관산업간 거래에서는 조금 더 상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각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국내 기업들끼리 서로 간에 쌓인 불만이 내재돼 있는 느낌이다. 철강업계는 해운업계가 벌크선 호황기에 돈이 되는 스팟(spot)영업에 집중하느라 자신들이 필요한 안정적 장기운송 계약을 외면했다는 불만이 있는 듯하다. 최근 한전의 한 자회사가 자사 해운물량을 일본계 해운사와 계약한 이면에는 이러한 불만도 하나의 원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운사 관계자들도 국내 조선소들이 자국 선주들에 대해 별다른 혜택을 주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불만을 이야기한다. 조선소에서도 과거 후판부족 시기에 철강사들의 고자세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불만들이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다.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거래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추구하려는 행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를 불건전하다고 비판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수출거래 위주인 한국 산업의 특성상 국내 고객의 비중이 작은 것도 한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고객들은 위기시에 서로를 지탱해줄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재와 같은 해운업의 불황이 닥쳤을 때 국내 대형화주들은 국내 해운사가 불황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과거 조선 불황기에 있어서도 정부에서 실행한 계획조선으로 국내 조선소들이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 제도하에서 선박발주자들은 모두 국내 선주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위기시에는 조금 양상이 다른 것 같다. 서로 상생하려는 의지는 확인되고 있으나, 이것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호황기에 눈앞의 이익을 쫒아 서로에 대한 배려를 잊은 것이 모두에게 앙금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서로의 상생을 위해서는 상호 배려에 기반한 장기적인 신뢰가 우선적으로 구축돼야 한다. 해운 호황기가 다시 오더라도 해운업계는 국내 화주들에 대한 우선 배려를 잊지 말아야 한다. 조선소들 역시 국내 선주들을 배려해 좀 더 많은 정보와 우선 혜택을 줄 필요가 있고, 철강사들 역시 약간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국내 조선소들을 우선 배려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후판 과잉공급 시기에 국내 조선소들도 외국산 후판의 비중을 줄이고 국내 철강사 제품들을 우선 구매해야 한다.

중국의 최대 부호 집단인 온주상인들은 같은 업종의 상인들끼리도 동업자 의식이 우선이라고 한다. 경쟁보다는 협력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국내 기업들끼리 동종 업종도 아닌 거래업종 기업들끼리 신뢰와 배려에 기반한 협력이 원활하지 못하다면 이 험난한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눈앞의 이익을 약간 희생하더라도 배려와 신뢰 구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서로가 한배를 탄 동업자들인 것이다.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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