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논설위원 ·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최근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개발의 관심이 점차 해양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이다. 육상자원의 고갈이 점차 현실화되고 중국 등 대형 소비국가의 등장으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충분한 경제성을 갖추기 시작한 때문으로 보인다. 이렇게 해양 에너지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개발에 필요한 설비를 만드는 해양플랜트 산업이 부상하고 있다.

해양플랜트산업은 우리나라 조선 산업에 있어서도 중요한 시장이다. 국내 대형 조선소들이 드릴 십이나 FPSO와 같은 해양설비에 있어서 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있기 때문이다. 상선시장이 극심한 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해양플랜트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활황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형 조선소들은 257억 달러의 해양플랜트 수주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해양플랜트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은 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분석기관들에 의하면 전 세계 해양플랜트 시장 규모는 2010년 1,400억 달러에서 2020년 3,200억 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가 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사실상 드릴십이나 FPSO 같은 심해저용 설비의 건조가 전부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고부가영역으로 꼽히는 설계와 플랜트의 핵심 설비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7억 달러의 드릴십 한척을 수주할 경우 약 2.5억 달러를 설계와 top side 설비 비용으로 해외에 지불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조선소들은 장기적으로 이러한 설비들의 엔지니어링을 비롯해 점차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sub-sea 부문까지 진출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조선소들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우수한 인력을 바탕으로 사업 진출의 성공을 전망하고 있지만 문제는 실적이다. 우리나라 앞바다에는 자원이 없는 탓에 국내 조선소들은 해외 선주들이나 오일메이저들을 상대로 해양플랜트를 건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하니 이들이 수억달러에서 수십억 달러의 비용이 드는 설비들을 기존 실적이 없는 국내 조선소에 발주할 리는 만무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사실 외국에서도 국내에 자원이 전혀 없는 한국의 조선소들이 몇 가지 해양설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것을 의아하게 보는 시각들도 있다. 그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sub-sea 시장에의 진출도 해결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모두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봐야 하지 않을까?

얼마전 해양플랜트 산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OTC(Offshore Technology Conference) 2012가 미국 휴스턴에서 열렸다. 주최측은 4일간 개최된 행사에 8만9,400명이 등록하였고 46개국 2,500여개 기업이 참여했다고 밝히고 있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모든 분야의 이벤트를 망라해 3번째 규모라고 한다. 이처럼 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행사에는 해양자원 개발 분야에서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이 모두 참여해 자신들이 가진 기술을 홍보하기도 했다. 점차 심해저로 옮겨가고 있는 개발영역에 맞추어 ROV(수중로봇)를 이용한 생산기술, 각종 제어기술, 안전기술 등의 개발 현황 소개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러한 첨단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비롯해 참가자들과 강연자들이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는 키워드 중에는 ‘cooperation' 즉, 협력이 있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해저 개발은 수심 2,000m를 넘어 3,000m 이상의 해역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전 세계 기업들은 아직까지 이러한 영역의 개발에 충분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발자들은 국적이나 기업규모에 상관없이 기술력을 보유한 누구와도 협력할 것이라는 의지를 거리낌 없이 나타내고 있다.

최근 뉴스를 통해 정부는 해양플랜트 산업을 제2의 조선산업으로 키우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그리고 기자재산업 육성, 전문인력 양성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조선업으로 축적된 역량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한다는 점, 양질의 고용 창출과 국가경제에 기여한다는 점 등에서 환영할 만하다. 다만, 틀에 박힌 전략으로는 이러한 정책의 실효성을 거두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영해에서의 자원개발 가능성이 거의 없는 자원 빈국으로서의 불리함, 남중국해 개발 등으로 착실히 경험과 실적을 쌓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조차도 불리한 점 등을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해 보였던 성과를 이루어 온 우리 산업계의 저력을 감안하면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세계 해양플랜트 산업은 ‘협력’이 무엇보다 강조되는 만큼 아직까지 완벽한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시장과 산업의 흐름을 읽고 우리가 가진 역량이 무엇인지, 앞으로 진출 가능한 분야는 무엇인지 전략적으로 더욱 세밀히 들여다보고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협력’이라는 키워드가 우리에게 주는 기회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 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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