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태에서 얻는 교훈

[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논설위원 ·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얼마전 미국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 참석했을때 옆에 앉아있던 미국인에게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한국은 과거에 가난한 나라였음에도 어떻게 세계적인 조선소들을 만들 수 있었고 어떻게 세계 최고의 조선소로 키울 수 있었는가?” 아울러 그는 한국 조선산업의 성과는 매우 놀랍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필자는 70년대 정부의 경제정책이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는 것이었고 고용효과가 큰 조선산업은 한국에 적합해 정부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몇몇 뛰어난 기업가들의 도전정신과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산업의 성공을 이끌었고 지속 기술개발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의 짤막한 대답을 했다. 질문한 사람은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술대국이지만 그러한 거대 제조업에 대해서는 부러움을 나타냈다.

그러한 대답에 그 미국인보다도 더 부러워했을 사람들은 아마도 유럽인, 특히 남유럽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최근 연일 급박하게 돌아가는 유럽 재정위기 사태의 전개에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큰 우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유럽사태의 근본 원인은 무리한 화폐통합에 있다. 경제가 어려우면 자국통화의 가치가 하락해 수출경쟁력이 높아지고 외화를 벌어들여 다시 경제를 회복시키는 조절장치를 무리하게 없애버린 것이다. 그러니 산업경쟁력이 약한 남유럽국가들은 지속적으로 적자를 감수하고 부채에 의한 정부재원으로 이를 메울 수밖에 없었고 그 한계에 이른 것이 지금의 사태인 것이다. 그런데 위기국가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다양한 산업, 특히 제조업의 기반과 경쟁력이 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환조절 장치가 작동한다 해도 고용을 촉진하고 위기를 단기에 해소시킬만한 강력한 산업들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럽의 제조업 강국인 독일이 유로존의 맏형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15년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당시 IMF 체제로 사태가 안정화된 직후부터 수출경쟁력을 기반으로 급속한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준 사례와도 좋은 비교가 될 수 있다. 한국의 경쟁력은 비단 조선업뿐 아니라 자동차, IT, 석유화학, 철강 등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큰 다양한 제조업 기반의 산업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산업들은 경제 싸이클에 따라 침체와 호황을 반복하지만 다양한 업종이 공존하는 덕분에 IMF 사태 이후 경제가 최악의 침체에 빠진 일은 없었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임금과 높은 사회적 비용으로 제조업 경쟁력이 점차 낮아지고 언젠가는 신흥국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일면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에너지와 식량 등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수입하는 비용이 연간 1,500억 달러를 넘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합당한 경제구조인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서비스업에 의존해 살아가던 그리스의 예를 본다면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조선산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포기해야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중국의 저임금 기반의 경쟁력으로 인해 상선은 그들에게 넘겨주고 고부가선박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역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LNG선, 해양설비 등 고부가 선박 시장에서 한국이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 자체가 상선시장에 비해 작다. 15만 명이 넘는 직접 고용인원만을 고려해도 이 시장만으로는 우리 조선산업의 규모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경쟁국인 중국도 고부가 선박시장에 대한 도전 의지를 공공연하게 표명하고 실질적인 정부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사실상의 전면전인 것이다. 상선시장을 넘겨주는 것은 조선산업을 포기하는 1단계가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상선시장을 포기해야할 이유조차 없다는 것이다. 원가경쟁력에서 중국에 뒤지는 것은 사실이나 우수한 기술력으로 이를 만회하고도 남음이 있다. 더욱이 연료유의 가격이 크게 올랐고 향후에도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이 없다. 3~5년간의 연료비가 선박의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 되는 상선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면 10% 내외에 지나지 않는 중국과의 신조선 가격 격차는 경쟁력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도 해외의 우량선주들은 비싼 가격에도 품질이 우수한 한국 조선소들을 찾는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선시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우수한 연비기술, 환경기술을 개발하며 IT 등 관련 산업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고 선박의 가치를 제고하는 일이다.

유럽 국가들이 아직도 강대국들이기는 하지만 쇠퇴하고 있는 느낌은 확연하다. 우리 산업들이 아직 발전하고는 있지만 고임금 구조 등이 더 심화되면 제조업의 경쟁력은 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제조업을 포기한 유럽의 현재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유럽뿐 아니라 우리보다 더 강력한 제조업 강국이면서도 경제의 활기를 잃은 일본의 모습도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유럽의 제조업 포기, 일본의 저금리 정책 등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등등을 연구하면서 우리의 경제와 산업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할 지를 깊이 고민해야 될 때이다. 우리에게도 산업의 위기가 언젠가 닥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수출 1위 산업인 조선업을 비롯한 우리의 제조업을 굳건히 지키고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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