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논설위원 ·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조선업이 극심한 침체에 시달리고 있다. Clarkson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6개월간 한국의 수주량은 330만CGT에 불과하며 이는 한국 전체 조선산업이 약 2개월이면 건조하는 양을 조금 넘을 뿐이다. 건조하는 양에 비해 수주량이 턱없이 모자라니 수주잔량은 당연히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1년 반쯤 후면 대형 조선소들마저 상선용 도크가 빌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의 이러한 수주불황의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상선분야의 침체에 있다. 그나마 최근 해양자원 개발붐을 타고 해양설비의 수주가 원활한 것이 대형조선소들의 숨통을 틔워 주고는 있으나 상선의 침체는 중견, 중소조선소뿐 아니라 대형 조선소들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상선수주 침체의 원인은 무엇보다 선박이 과다하게 공급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조선과 해운산업은 호황기에 과다발주로 인해 침체기가 오래가고 불황의 깊이도 깊은 것이 특징이며 이러한 사이클을 벌써 수십 년째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침체는 호황기가 6년이나 계속돼 전례없이 길었다는 점과 중국의 경제개발과 대규모의 조선소 투자, 중국 효과에 기대하는 투기적 수요의 무분별한 발주 등 공급과잉 요인이 과거보다 매우 크다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호황의 정점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 등으로 수요조차 회복 기대가 어렵다는 점에서 조선, 해운산업의 침체가 언제 끝날지 가늠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선종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시장에서 선복량 과잉 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호황기 발주 선박은 아직도 한국과 중국 조선소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주요 조선소들이 상선의 설계인력을 해양부문에 배치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감이 없어진 상선 설계인력을 일감이 넘치는 해양부문으로 이동하는 것은 경영상 필요한 조치라고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본 조선산업 몰락의 결정적 요인이 기술인력을 다른 분야에 배치한 것이라는 점에서 혹시 우리 조선산업도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지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가격 경쟁에 내몰린 상선의 비중을 줄이고 해양산업에 초점을 맞추는 단계라는 시각도 있는 듯하다. 중국 조선산업이 부상하면서 한국은 점차 상선을 포기하고 LNG선, 여객선, 해양 등 고부가제품에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의 시각으로 보인다.

최근의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조선소 경영진들의 의중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바는 절대로 상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상선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고부가 선박이나 해양설비만으로는 우리 조선산업의 규모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LNG선을 예로 들면 연간 전 세계 발주량은 평균적으로 20~30척 사이에 불과하다. 해양설비의 경우도 연간 수주량이 호황기의 경우에도 100만CGT를 상회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연간 1,600만CGT를 건조하는 한국 조선산업으로서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다.
두 번째로는 아직까지 경쟁국에 비해 상선에서도 압도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은 수십년간 꾸준히 노력해온 기술개발의 결과이다. 싼 인건비에 의존해서 가격경쟁에 매달리고 있는 중국과는 그 수준이 틀리다. 다양한 선형을 갖추고 선주의 요구를 완벽하게 맞출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 없다는 것이 조선시장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물론 중국도 급속도로 쫒아오겠지만 한국의 기술개발은 그 차이를 지속적으로 벌릴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향후 신조선 시장은 선박의 가격보다 기술력이 더 중요시 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전 세계적인 환경규제는 연비기술을 촉발하고 연비는 선박가격의 차이를 메우고도 남을 요인이 될 것이다. 우수한 선형을 가진 조선소들은 주문량이 넘쳐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조선소들은 자연히 도태되는 상황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가격경쟁력은 전혀 중요한 요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선을 포기하고 고부가 선박에 집중하는 전략은 너무나 오류이다. 조선소의 경영진들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며 그래서 필자는 앞의 상황들이 결코 상선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믿는다. 우리 조선소들은 지금까지 1, 2차 오일쇼크를 겪고 일본과 같은 막강한 경쟁자들과 경쟁하면서도 독자적으로 성장해 왔다. 누구보다 험난한 길을 걸어온 이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시장의 지배력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최근에는 세계 최상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국내 초대형 조선소들마저 상선의 저가 수주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저가 수주는 기업의 건전성을 훼손하고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임에 틀림없다. 또 우리 조선소들끼리의 출혈 경쟁이라면 어느 정도는 협력하며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지만 고정비의 적자보다 이러한 선택이 더 낫다면 조선소의 선택을 존중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방법으로 침체상황을 이겨 나갈지는 조선소 경영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40여년간 오랜 불황을 이겨내고 성장해온 우리 조선소들을 일단 믿어보아야 할 것이다.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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