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학소 객원논설위원 ·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오늘날 국적취득부 나용선제도와 편의치적제도는 세계 해운기업 경영의 보편화된 기법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인식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근자에 들어 대법원 등에서 해운기업이 선박 확보 과정에서 SPC(Special Purpose Company;특수목적법인)를 이용하는 관행을 불법시할 뿐만 아니라, 일부 언론에서 SPC를 설립하고 이용하는 것을 비도덕적인 행위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법당국이나 언론이 문제시 하는 SPC가 위법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으나, 해운기업이 SPC를 설립하고 이용하는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은 국제해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시도상선, 대한해운, 대우로지스틱스 등의 해운기업들이 탈세 혹은 불법외환거래로 인해 관세청, 검찰에 적발됐거나 대법원에 의해 불법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구나 관세청에서는 이러한 불법행위가 해운업계전반에 걸친 문제로 판단하고 해운업계 전반으로 조사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이제까지의 중소선사 중심에서 대형선사까지도 수사범위를 확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해운업계는 업계전체가 부도덕한 집단으로 낙인찍힐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가뜩이나 국제적으로 사상 최악의 해운불황속에서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국내에서는 조세당국과 사법당국의 된서리를 맞게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SPC를 해외에 설립하고 선박을 용선하거나 편의치적국에 등록해 운항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인 요소가 있었는지 상세히 알 수는 없으나, 국제적으로 수많은 진화를 거쳐 형성돼 온 해운관행과 제도가 경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저간의 상황에 대해 해운업계에서 너무나 무기력하고도 안일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있다. 행여 조세당국과 법원이 전세계 선진해운국들이 이용하고 있는 국적취득부나용선과 편의치적제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또 과연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의 해운기업들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왔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수출입 화물 수송에 필요한 외항상선을 확보하기 위해 소유권취득조건부 나용선(BBCHP)제도라는 것을 이용해왔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해운업, 특히 외화벌이와 직결되는 외항해운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했으나, 자금동원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발전이 부진했다. 그래서 외국선을 빌려서라도 해운업에 진출하기 위해 외국선박을 빌리되(bareboat charter, 나용선), 선박 빌린 기간이 완료된 후에 본선을 사전에 합의된 조건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한(hire purchase option)을 유보하는 소유권취득조건부 나용선(BBCHP) 방식에 의한 용선제도를 활용했다. 지난 2010년 한 해동안 우리나라 해운기업이 확보한 933척의 선박 중 무려 333척이 이 제도를 이용했다.

또, 우리나라 선주들은 이렇게 확보된 선박들을 외국선주들과 마찬가지로 비용 및 세제가 선박금융에 가장 적합하고 국적의 발급이 쉬운 국가에 등록하는 편의치적제도(flag of convenience)를 이용해 왔다. 선박에 대한 과세 여부(재산세, 양도세 등), 해당 법인(SPC)에 대한 법인세 부과 여부 및 세율, 설립 및 제반 등록절차의 편의성 및 소요 비용, 관련 당사자 간의 제반 금전의 수수에 대한 원천징수 여부, 선박우선특권과 저당권간의 권리의 순위 등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 결정한다.

대표적인 편의치적국으로는 파나마, 온두라스, 벨리제, 마샬아일랜드 등이 있다. 현재 전세계 선박 중 약 70%는 자국이 아닌 이들 편의치적국에 등록돼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경우 자국선사가 관리하는 선박 중 92%가 편의치적국에 등록했다.

앞으로 우리 해운업계가 해운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국제적인 해운관행을 사법당국과 세무당국에 적극적으로 상세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 명백한 불법에 대해서는 반성을 해야 하지만 해운산업의 중요성과 국제적 해운관행은 충분히 설득하고 대국민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국제해양법상의 기국주의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먼저 해소해야 될 것으로 판단된다. 영토에 관한 관할권과 마찬가지로 선박에 관한 관할권은 선박이 등록된 국가에 소속돼 있기 때문에 선박에 관한 과세권이나 사법권은 선박이 등록돼 있는 편의치적국에 속하는 것이다.

또 국적취득부 나용선의 경우에도 용선기간이 끝나 국적취득이라는 옵션을 행사해 우리나라 국적으로 등록돼야 비로소 당해선박에 대한 관할권 즉 과세권과 재판권이 생긴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소유권취득이 이뤄지기전의 선박에 대해 과세를 한다는 것은 국제해양법상의 기국주의에 위배되는 일이다.

이제 국제경쟁에 노출된 해운시장에서 가장 저렴한 노동력을 공급받고 세금부담이 적은 선박등록지를 선택하고 가장 저렴한 선박금융을 선택하기 위해 SPC를 이용하는 것은 해운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세계 각국에서는 해운기업의 이와 같은 선택을 존중하고 법적으로도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운기업이 국제해운시장에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각계에서 해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학소 원장 프로필]

- 연세대 법과대학 행정학과 졸업
-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제학과 졸업(교통경제학 석사)
- 동국대 대학원 무역학과 졸업(경영학박사)
- 現) 중국 상해해사대학교 객좌교수
- 現) 인천대학교 동북아물류대학원 겸임교수
- 現)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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