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논설위원 ·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조선업계에서는 그린쉽(green ship)이 핫이슈가 되고 있다. IMO의 탄소가스 배출규제에서 촉발된 그린쉽의 개발 경쟁은 향후 시장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큰 변수가 될 것이 확실하다. 당장 내년부터 시행되는 EEDI는 과거 10년치 실적선의 평균치를 근거로 하고 있어 평균 이상의 선박을 건조해온 한국 조선산업은 별다른 장애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당장 2015년부터 매 5년마다 10%씩의 추가 감축 규제가 예고되어 있어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IMO의 EEDI 규제와 향후 시행될 가능성이 높은 탄소세 등 시장기반규제는 결과적으로 고연비 선박 개발을 촉진하고 있다. 향후 에너지효율이 높은 선박을 설계할 수 없는 조선소는 경쟁력이 뒤처지는 정도가 아니라 시장에서 퇴출되는 절대절명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국내 조선소들은 다소는 긴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상황을 즐기는 듯하다. 경쟁국 중국과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는 기회도 되기 때문이다. 선형개발 등 에너지 효율에 관련된 기술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는 국내 조선소들은 규제가 강화될수록 중국보다 크게 유리한 면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향후 예상되는 고유가 기조 덕분에 연비효율에서 앞서 나간다는 것은 신조선 가격경쟁력의 열위를 만회하고도 남음이 있다. 3년 정도의 연료비가 거의 선박가격과 비슷한 수준인 대형선박들의 경우 약 2%의 연비만 앞서나간다 하더라도 10%의 신조선가격 차이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그런데 국내 조선소들 모두가 이러한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소 조선소들의 이야기다. 자체적으로 우수한 R&D와 설계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 조선소들과는 달리 중소 조선소들의 경우 설계조차도 외부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대부분 재무적 위기에 빠져있는 중소 조선소들은 R&D는 고사하고 지금 당장 목숨을 연명하기에도 빠듯할 지경이다. 일부 조선소들이 그린쉽 규제를 준비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한참 부족한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경쟁국인 중국의 경우 우리나라 중소 조선소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조선소들의 상당수가 CSSC, CSIC 등 국영 조선그룹에 소속되어 있다. 조선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그린쉽 규제에 대한 대응 역시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하니 중소 조선소들조차 국가적 혹은 그룹 내의 R&D의 결과물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당장에는 우리나라 조선소들의 품질이 앞선다 하더라도 국내 중소 조선소의 기술경쟁력은 정체돼 있는 반면 중국은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경쟁력이 역전되고 이 위기에서 살아남는 국내 조선소들도 그린쉽 경쟁에 무너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의 이 위기를 시장질서 내지는 시장 논리에만 맡겨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나 공공부문이 지원해 주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국내 중소 조선산업의 경쟁력 있는 선형 개발 등 R&D를 담당할 연구기관을 신설하거나 혹은 기존기관을 확장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이 R&D인만큼 자체적으로 기능이 약한 중소 조선소를 지원하는 연구개발은 당장 서둘러야 한다.

현재까지 7개 내외의 중소 조선소만이 살아남아 조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심각한 재무적 위기에 닥쳐있기 때문에 앞으로 몇 개나 살아남을지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현존하는 조선소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많이 살아남아 산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중소 조선산업의 비중은 호황기에 비해 크게 줄어들어 최근에는 국내 전체 조선산업의 10% 미만으로 축소됐다. 비중이 작은 중소 조선산업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국내 대형 조선소들을 위협하는 중국의 대형 조선소들 중 상당수는 중소 선박들을 같이 건조하고 있다. 국내 중소 조선산업이 무너지면 중국이 이 산업을 독점하게 될 것이다. 그 독점적 지위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중국 대형조선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며 결과는 국내 대형 조선소들에게도 위협으로 돌아올 것이다. 국내 중소 조선산업을 반드시 살려야 하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중소 조선소의 숫자가 크게 줄어든 것을 오히려 기회로 이용해 공동 영업조직을 만들고 조선소마다 경쟁력있는 선종과 선형을 특화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그래서 중소 조선소들이 공동으로 영업하고 서로 도와가면서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어떠한 방법이 되었든 국내 중소 조선산업을 장기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 안에 그린쉽 대응을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조선산업의 비중이 높은 지자체들도 참여하는 등 공공부문의 총력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대형 조선소들도 일부 지원을 담당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모든 대책은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시장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효과가 나타날 시간도 코앞에 와있기 때문이다.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 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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