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논설위원 ·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본격적인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시작은 500원짜리 지폐에 새겨진 거북선에서 비롯됐다는 일화가 있다. 현대중공업을 설립한 고 정주영 회장의 전설적인 이야기다. 주머니 속에 있던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서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며 영국의 은행가들을 설득해 조선소 설립자금을 받아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리스의 선주에게서 설립도 되지 않은 조선소를 가지고 2척의 선박을 수주했다는 믿기지 않는 일화이다. 이보다 더 믿기지 않는 사실은 조선소를 건설하는 동시에 수주받은 선박을 건조해 제 날자에 인도했다는 기록이다. 그것도 경험도 없고 완공되지도 않은 조선소에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한 정 회장의 대단한 면모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이야기에서 돋보이는 것은 회장의 무모한 도전을 현실로 가능하도록 만든 조선소의 직원들이다. 경영자의 리더십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직원들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모든 일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뒷받침 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믿고 경영자도 이러한 도전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해외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하였을 때의 일이다. 옆자리에 앉았던 프랑스계 유명 엔지니어링사의 직원들이 필자에게 질문했다. 한국은 자본력도 없는 가난한 나라였고 석유같은 자원도 없는 나라인데 어떻게 세계 최고의 조선산업을 만들 수 있었는가하는 내용이었다. 필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도전적인 기업가들이 있었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이 풍부했다.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던 것 같다.”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해양설비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기업의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조선소들이 sub-sea와 같은 해양설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한다는 사실에 크게 우려하는 듯했다. 사실 그 분야에는 한국 조선소들이 경험이나 실적도 없고 시장의 진입장벽도 매우 높다. 그리고 한국 조선소들도 그 시장에 도전할 뿐 성공에 대한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 그들은 지금까지 한국 조선산업이 보여 온 도전과 성취, 그 저력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그러한 저력의 뒤에 우수한 인력들이 있다는 것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 자본과 자원없는 나라에 사람의 머릿수만 많았던 것은 국가적으로 상당히 부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국가에서 만든 코미디 같은 표어가 있었던 것을 보면 그런 듯하다. 돈도 없고 팔아먹을 자원도 없이 먹고 살아야할 입만 많았던 시절의 막막함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인구가 경제개발 과정에서 제자리를 잡고 제 역할을 하기시작하면서 먹여살려야할 인구는 오히려 엄청난 힘을 보여 주었다. 빠른 속도로 선진국 수준을 따라 잡았고 많은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춰 왔다.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을 보유한 국가들은 강대국의 탐욕적인 싸움에 휘말리고 자기 땅의 자원을 온전히 지키기 어려운 예가 많았다. 오히려 잦은 전쟁과 강대국의 횡포에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은 것을 보면 빼앗는 것이 불가능한 우수한 인적자원을 가진 것이 천연자원보다 훨씬 나은 듯하다. 오히려 풍부한 천연자원이 우리나라 땅과 바다에 매장돼 있다면 1953년 휴전 이후 지금까지도 강대국들의 전쟁을 수차례 치르느라 폐허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조선산업을 비롯한 모든 우리 산업들은 우수한 인재들에 기대어 경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 일이 만만하지는 않은 듯하다. IMF 이후 우리 사회에는 이공계 기피현상이 일어나고 이른바 3D 직종이라 해 현장 기술인력을 지원하던 사람들도 크게 줄어들었다. 해외에서 학위를 받은 유학파 출신들이 귀국을 꺼려한다는 기사는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 들어 대기업 취업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러한 경향이 다소 완화되기는 했으나 아직 문제는 지속되고 있다. 기업과 학교, 정부가 모두 적극적인 문제해결책을 제시할 때이다.

최근 전남 목포의 한 국립대학이 조선공학과를 비롯한 관련학과 일부를 산업단지 내에 조성한 캠퍼스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산업단지내 기업들과 지방정부의 지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산업단지 내에서 기업들과의 실질적인 연구협력과 이를 통해 보다 실용적인 교육을 제공함으로서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아직까지 캠퍼스 이전이 완료되지 않아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으나 참신한 시도이고 학교, 기업, 지방정부 모두에 큰 발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모든 대학들이 기업 옆으로 위치를 옮길 수는 없을 것이나, 산업이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이를 통한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많은 아이디어가 있을 것이다. 기업도 당장 먹고사는데 급급해 하지 말고 미래를 보고 인재를 양성하는 데 보다 적극 투자해야 하고 정부도 이를 제도화해 지원하는 일에 더 노력해야 한다. 학교도 산업체 출신 교수를 늘리는 등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우수한 인재! 이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원임을 항상 잊지 마시기를 바란다.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 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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