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 논설위원·現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지난달 말께 언론에 한 중소조선업체와 관련 뜻밖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청산 예정으로 알려졌던 신아SB의 워크아웃이 1년 연장되고, 신규로 자금 제공이 결정됐다는 것이었다. 해당 조선소의 직원들과 거래기업들은 사태의 한 고비를 넘긴 상황에 일단은 안도했을 것이다. 지역경제를 위해서도 잘한 결정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결정을 끌어내기까지는 통영지역의 노동계와 지방정부,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일치된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처럼 노동계와 정계가 힘을 합쳐 이끌어낸 소득이니 만큼 1년을 넘어 더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번 일이 민관이 힘을 합쳐 중소 조선산업의 회생을 돕는 첫 사례가 되기를 바라며 다른 조선소들에게도 좋은 변화가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지금의 해운시황은 100여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해운사들이 도산할 정도로 사상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00년대 중반 사상 유례없는 선박이 발주됐고, 200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또한 사상 유례없는 선복량이 시장에 공급돼 그럴 만도 할 것이다. 게다가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제가 엉망이 됐으니 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선진국의 경기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해운시황이 악화된 것은 중국의 무분별한 조선업 투자에 큰 원인이 있다. 강선건조 조선소를 기준으로 지난 호황 때에 우리나라가 약 40여 개의 조선소가 운영된 반면 중국은 800 개가 넘는 조선소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조선소들은 2000년대 중반 중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기의 호황을 기반으로 투자됐다. 낮은 가격의 선박을 공급함으로서 선박 투기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중국이라는 특이한 국가체제의 보호를 받으며 해운 시장에 막대한 선박을 공급해 해운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가장 큰 요인이 됐다.

지나간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아직도 중국 조선소들의 대부분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지방정부 재원까지 투입하면서 경쟁력 없는 조선소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고 이는 조선해운시장에 있어서 심각한 공급능력 과잉을 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 조선업계는 공통적으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외치고 있고 공급능력 과잉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경쟁력 있는 우리나라 중소조선소들이 희생양이 됐다는 것이다. 시황부진에 KIKO와 같은 재무적 악재까지 겹쳐 지금까지 70% 이상의 중소 조선소들이 도산하거나 업종을 전환하는 등 시장에서 퇴출됐다. 그중에는 오랜 업력과 세계 시장에서 우수한 평판을 유지하던 우리나라 중소조선산업의 간판급 조선소들도 포함돼 있다.

시황이 어렵고 일감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기술력과 품질 등 전반적인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국의 조선소들은 아직 살아있는 곳이 더 많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양국 정부의 체제에 기인하는 것이다. 수출이 경제의 바탕이므로 WTO, OECD 협정 등 국제적 규약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철저한 시장논리가 바탕이 돼야하는 우리나라의 중소 조선소들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죽어가고 있다. 반면, 시장논리 보다는 정부의 입장,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입장이 우선 고려되고 국제 규약보다도 힘의 논리에서 앞서는 중국의 조선소들은 엄청난 규모의 부실을 안고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이라 함은 공급과잉 시장에서 경쟁력 없는 업체들을 정리하며 건전한 시장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세계 중소 조선시장의 구조조정은 무엇인가 거꾸로 되어가고 있다. 중국에서 선박을 건조해본 유럽 선주들 중에는 다시는 중국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유명한 그리스 선주는 한국에 와서 한국 중소조선산업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강변한 적도 있다. 오히려 해외에서 그리고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우리 중소조선산업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정리된 반면 속된말로 ‘질 떨어지는’ 중국의 중소 조선산업은 어려움을 겪고는 있으나 여전히 살아있다.

이처럼 잘못되어가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여전히 우리 정부는 지금의 상황을 구조조정이라 하고 있다. 전문가적인 견해에서 말한다면 한국에서의 구조조정은 이미 끝났다. 끝난 정도가 아니라 산업은 붕괴단계이다. 이제는 정부도 그리고 민간도 모두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제규약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산업계, 정부, 노동계, 금융계까지 모두 이제는 힘을 합쳐 산업을 살려야한다는 의지부터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나면 지원에 필요한 모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린쉽 이슈가 부각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중소 조선산업은 중소라는 이름과는 달리 큰 규모와 높은 고용효과를 가지고 있다.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여느 중소산업과는 다르다. 무너질 경우 그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클 것이다. 청산가치와 계속가치를 따져서 기업의 생사여부를 결정하는 시장논리만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대통령선거 때문에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후보들 모두 민생을 챙기겠노라 공언하고 있다. 지역경제를 떠받치고 민생과도 직접 관련이 있는 중소 조선산업을 살리기 위해 새정부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드립니다.

저작권자 © 데일리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