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기사 거리로 내몰릴 가능성 농후

[데일리로그 = 오병근 기자] 오늘 오전 한 통신사가 ‘운전자가 운송자격이 있으면, 정부가 자가용 택배차량을 전량 사업용으로 전환해준다’고 보도하자 이를 접한 가까운 지인이 이렇게 물었다.

“정부가 화물자동차 운전자격만 갖추면 자가용 화물차를 전량 사업용으로 전환해준다면서요? 택배업계가 이제 춤을 추겠네요.”

그런데 웬걸. ‘춤을 춰야 할’ 택배업계는 오히려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 중소업체 사장은 “이대로 가면 정말 택배업체가 다 죽는다”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번 법 개정을 막아낼 것”이라고 분노했다.

왜일까. 일부 언론의 보도대로라면 엄청 행복해 콧노래라도 불러야 할 택배업체가 이처럼 분노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신용불량자(이하 신불자) 문제이다. 택배업계 및 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실제로 물건을 배송하는 인력의 30~40%는 신불자이다.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는 “신불자도 시험을 봐서 화물운송자격을 취득할 수 있으니 문제가 없다”며 “운송자격을 취득한 신불자에게 사업용 차량을 주면 압류 등의 문제가 있는데, 이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계획대로라면 문제가 없어보인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신불자에 대한 운송자격증 취득이 아니라, 취득 후 실제로 본인이 사업용 차량을 받아 합법적으로 운전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에 대해 정부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

정부와 업계는 이 문제를 놓고 지난 수개월간 고민을 해왔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아니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 수개월 간 고민해도 나오지 않았던 묘수를 찾겠다고는 하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방법만 강구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통물협 관계자는 “지난주 업·관계 위원장급 간담회에서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논의했는데, 정부에서 업계가 제안한 내용을 최종적으로 반대했다”며 “이대로 진행된다면 택배시장은 대혼란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가 밝힌 신불자에 대한 ‘방안’이 법 시행 전에 마련되지 않는다면, 물품 배달로 마지막 희망을 되살리려는 신불자들의 미래는 암담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들은 더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영업소(대리점)에서 근무하는 배송기사들의 문제이다.

이번 택배차량 신규허가는 용달 및 개별 화물차량으로 지원된다. 따라서 1명에게 1대만 허용된다. 현재 차량을 소유하지 않은 택배기사들은 전국 택배기사 가운데 40% 가량이라고 한다. 예컨데 A영업소의 소장이 자가용 차량을 10대 소유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관련 요건을 갖추더라도 사업용 차량을 1대만 받을 수 있다. 나머지 9대는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9대를 9명의 배송기사에게 판매를 해야 하는데, 차량을 살 수 있는 배송기사가 많지 않다고 한다. 영업소에 고용된 기사들은 신불자이거나 이에 버금갈 만큼 경제력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 기사들이 차량을 살 수 없으니, 영업소장이 서류상이나마 차량을 공동명의로 할 수밖에 없지만, 용달 및 개별 차량 관련법에는 공동명의가 금지돼 있다. 따라서 A영업소는 사업을 접어야 하고, 차량을 살 수 없는 기사들은 길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 경우가 정부가 말하는 ‘결격사유가 있는 자’에 해당한다.

이렇게 ‘신불자’이거나 차량을 살 수 없는 자를 포함한 ‘결격사유가 있는 자’가 전체 택배배송기사 중 40~50% 라고 한다. 현 상황에서 법이 시행되면 이들은 택배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택배시장은 공황상태가 된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겉으로는 마치 택배업계를 위해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러한 문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다.

관련법 시행규칙은 이미 시행됐고, 조만간 허가요령이 공표되면 곧바로 법이 시행된다. 법 시행과 동시에 각 지자체는 ‘카파라치제’를 도입할 것이고, 카파라치가 무서운 50%의 ‘결격사유자들’은 택배시장에서 내몰릴 것이다.

택배업계가 춤을 추지 못하고 분노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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