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 논설위원,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위원] 해운업, 조선업 모두 불황이 지속되고 있다. 새해가 밝았지만 상황이 나아질만한 소식은 많이 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유럽을 위시한 선진국의 경기는 크게 좋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고 물동량의 대폭적인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 많은 선박이 떠 있지만 지금도 한국과 중국에서는 많은 양의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이러한 불황의 가운데에서도 해운업계와 조선업계는 그린쉽(green-ship)이라는 다소는 아이러니한 이슈가 논의되고 있다.

그린쉽은 일반적으로 고연비, 저탄소 기술이 적용된 선박을 의미한다. 그린쉽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환경규제의 하나로, IMO에서 추진 중인 EEDI 규제에 의해 이슈가 촉발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규제의 영향은 조선시장과 해운시장에서 고연비 선박 경쟁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조선업계는 고효율 선형과 각종 에너지 효율화 기술을 개발하고 접목시켜 고연비 선박을 개발하고 있다. 전 세계 해운업계 역시 최상위 업체들을 중심으로 고효율 선박에 투자함으로서 운송효율화를 통한 경쟁력 제고에 노력하고 있다.

세계 1위의 컨테이너선사인 머스크(Maersk)의 경우, 지난 수 년간 지속된 최신 선박투자에 의해 이러한 불황기에도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경쟁업체들이 고연비 선박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경쟁의 양상이 아직까지 해운업계 전체의 본격적인 구도로까지는 형성되지 못하고 있으나, 점차 확산되어 갈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고연비에 의한 효율화 싸움이 본격화 된다면 낡은 선박을 보유하고 있는 해운업체들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연비가 10% 개선된 7,500TEU 급 컨테이너선의 경우 기존 선박에 비해 에너지 절감 효과만으로도 약 60%의 용선료를 더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해운업 뿐 아니라 조선업계의 경우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고효율 선형을 확보하지 못한 조선소에 선박을 건조하러 올 수 있는 선주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린쉽기술 경쟁을 갖추느냐 아니냐는 조선소의 생존을 결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조선업계의 경우 그린쉽기술은 우리나라가 유럽과 일본에 비해 다소 뒤처진 것으로 평가된다. 환경이슈를 주도하며 오랫동안 준비해온 유럽, 일본을 처음부터 따라간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다행인 것은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와 직접 경쟁하는 선종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의 벌크선이 최근 부상하고 있지만, 이 시장에서 타격을 받는 것은 중국이지 한국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최상위 조선소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대부분의 선종에서 선형을 개발해 왔고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린쉽 기술개발 역시 선진국에 비해 다소 늦었지만 기술개발의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빠른 속도로 기술발전을 이뤄 나가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보너스는 상대적으로 기술력과 개발능력이 뒤떨어지는 중국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그린쉽 패러다임은 국내 조선업계로서는 시황회복과 경쟁국과의 차별화 등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해운업계이다. 국내 해운업계의 경우 세계 5위라는 강국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선령이 경쟁국에 비해 높고 아직까지 그린쉽 투자가 활발하지 않은 분위기이다. 2008년 이후 지속된 불황으로 재무상태도 좋지 않은데 시장의 움직임이 이러하니 어쩌면 최대의 위기를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2015년 경에는 그린쉽에 의한 조선업 회복시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다. 그 무렵에는 조선소들의 그린쉽 기술상용화가 본격화되고 IMO의 규제가 강화되며, 본격 연비경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회복시황은 해운업의 회복 없이 조선업만의 회복이 일어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해운업계가 투자할 자본력이 없는 상황에서 최신 선박투자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우 국내 해운업계의 지속을 위해 금융이 전적으로 뒷 받침해 주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국내 선박금융 기반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 선박금융이 국내 선주들을 지원한 사례도 많다고 할 수는 없고 여력도 크지 않다.

국내 해운업계를 위해서는 선박금융기반의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선주들의 자본력이 너무나 취약해진 상황이어서 은행권 외에도 펀드, PEF 등 다양한 금융을 동시에 발전시켜야 할 상황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국내 해운업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은 최대한 에쿼티(equity, 공평성)의 비중을 높이고 LTV(Loan To Value ratio, 담보인정비율)를 낮춰 많은 선박을 지원하고 BBCHP(조건부나용선)를 활성화시키는 것 뿐이다. 많은 지원이 이루어질수록 국내 해운업계의 경쟁력은 강화될 것이다.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경쟁국들보다 지원을 강화한다면 우리 해운산업에는 오히려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새해들어 새정부의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새정부의 주요 어젠다에는 다행히 선박이 들어있다. 해양수산부를 부활시키고 선박금융의 확대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 논의에는 우리 해운업계가 처한 현실을 인지하고 무엇이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는지 등의 고민이 반드시 반영되기를 바란다.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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