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 논설위원, 現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지난달까지 국내 조선소들의 수주실적을 살펴보면 다소 희망적인 듯하다. 클락슨(Clarkson)이 발표한 지난달까지 국내 조선소들의 수주실적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3% 증가했다. 4월 한달 간의 수주실적만을 보면 국내 월 건조량에 근사하는 수준으로 이러한 정도만 수주된다 해도 수주잔량이 감소하는 추세에서는 벗어날 듯하다. 아직까지는 선가가 바닥에서 올라오지 못하고 있고 선복량과잉 문제도 심각해 상선시장이 회복국면이라 단정하기에는 이르지만 상선시장이 점차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전망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바로 고효율 선박이다. 일부 선주와 해운사들은 선복량 과잉시대의 새로운 경쟁무기로 고효율 즉, 고연비 선박을 앞세워 운송원가를 절감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고 이러한 양상은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Rickmers 그룹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1만TEU 대형 컨테이너선을 기준으로 고효율 신형설계와 구형설계간의 연료비 차이는 17노트의 저속운항에 있어서도 1일당 2만 달러로, 280일 운항을 가정하면 연간 약 60억 원 가량의 비용이 절감된다. 시장이 호전돼 21노트의 속도로 운항하게 된다면 연료비 절감률은 거의 2배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료비의 차이를 감안한다면 고효율 선박은 경쟁우위를 위한 선택적 대안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다. 선복량과잉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상선 발주가 늘어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효율 선박투자에 대한 수요는 얼마나 될 것인가?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있겠지만 아마도 선박금융 시장의 공급 능력이 가장 관건이 될 것이다. 지금 발주되고 있는 고효율 선박의 수요는 해운시황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기술혁신에 의한 수요인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벌써 6년째 해운침체기를 맞고 있다. 선주들과 해운사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투자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고효율 선박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요를 살려 조선산업의 시장 정상화가 이루어지려면 전적으로 금융이 뒷받침돼야 한다. 선주들의 자금동원능력이 없으므로 선박펀드부터 은행 대출까지 모든 부문의 금융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의 선박금융 제공 능력은 전 세계 조선 시장에 미칠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금융경색이 해소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선주들이 마음에 드는 고효율선박을 가장 잘 건조하는 한국에 와서 금융을 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럽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한 선주들이 우리나라에서도 금융조달에 실패한다면 결국 발주를 포기하거나 기술력이 떨어지는 중국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회복 여부가 사실상 금융에 달려있는 것이다.

지금 정부에서는 부산의 선박금융공사 설립에 대한 공약을 포함해 선박금융 지원정책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선주협회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해양수산부의 해운보증기금 설립안이 있는가 하면 국회에 별도로 발의되어 있는 2개의 공사설립 법안도 있다. 그 외에 토니지 뱅크(tonnage bank) 설립안도 많은 해양산업 종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가하면 기존 4개 정책금융기관의 선박금융 부문을 분리한 뒤 통폐합해 새로운 공사를 설립한다는 안도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모든 대안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 어느 하나가 옳다고 일방적인 주장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떠한 대안이 정책으로 결정되든지 다음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선은 어떤 대안이 조선, 해운 등 우리 해양산업에 이로울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 보조금시비에 걸려 금융지원 정책이 후퇴한다면 우리 산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가장 유리한 조건의 금융을 우리 산업을 위해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이 돼야 한다. 기존에 쌓아놓은 금융경쟁력까지 훼손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될 것이며, 나아가 선박금융 시장에서의 우리 금융의 입지가 더 확대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적인 경쟁력을 저해하면서까지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부산 시민들조차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부산이 금융중심지가 되려면 여전히 우리 해양산업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양산업이 더 많은 지역민들을 고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오히려 금융 중심지가 되는 것보다 더 부산시민들을 위하는 일일 것이다.

유럽은 조선산업을 아시아로 넘겨준 이후에도 해운산업만은 굳게 지켜왔으며 해양의 지배를 기반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3세계를 지배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해양지배의 원동력에는 강력한 금융이 뒷받침되고 있었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지금 유럽의 바로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가 지금 선박금융의 기반을 확고히 정비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면 그 해양의 주인은 우리의 아이들이 될 것이다.

민간금융의 발전이 미비했고 정책금융이 그 주된 역할을 수행해온 우리의 선박금융 구도를 고려하면 이번 정부의 정책은 그 중요성이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잘된 정책은 우리 해양산업과 금융을 일보 전진시킬 수 있으며 정책의 실패는 산업까지 파괴할 수 도 있다. 미래를 내다본 과감한 재원 투입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당국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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