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 논설위원, 現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조선업, 해운업 모두 어렵다. 특히 해운업계의 어려움은 거의 한계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올 정도이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선박금융공사, 해운보증기금 등을 포함해 선박산업에 대한 금융지원책을 강구 중이다. 정책금융 개편안까지 맞물리며 쉽게 결정되지 못하고 많은 논의들이 이뤄지는 중이다.

그런데 논의과정에서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문제 중 하나가 다른 산업과의 지원 형평성이다. 다른 산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며, 조선이나 해운산업 등 선박관련 산업을 특별히 지원한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한정된 재정에서 균형있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고른 지원이 필요하며 한 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은 곤란하다는 논리를 제시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 경제가 많은 분야의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세계적인 불경기로 형편이 좋은 산업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논리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형평성 고려에 앞서 생각해야 할 점들이 있다. 선박은 국가의 매우 특별한 자산이며,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해운업이 무너지고 우리 기업들이 지배하던 선박들이 모두 외국 해운사에 넘어가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사실 단기적으로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항구에 외국 해운사들이 많이 취항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상사태가 생길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확률이 낮다고는 하지만 전쟁의 경우이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해군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쟁에 필요한 물자는 상선이 수송한다. 이때 우리나라의 지배선대가 없을 경우 혹은 부족한 경우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담당할 외국 선대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막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지원할 수송체계가 부족하다면 전략과 전술 구사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전쟁박물관을 둘러보면 그들이 2차 대전 당시 자랑스러워하는 점이 2가지 있다. 하나는 레지스탕스의 활약 그리고 또 하나는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을 지원해 승리에 기여했던 막강한 규모의 상선대의 활약이다.

반드시 우리의 전쟁이 아니더라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의 영향이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다. 한가지 예로 중동의 이란사태와 같은 정정불안이 일어났을 때 높은 운임을 지불해도 우리를 위해 석유를 싣고 오는 해외 상선은 없었다고 한다. 오로지 우리나라 해운사의 우리나라 선장과 선원들이 위험을 뚫고 우리가 필요한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출항해 임무를 수행했다는 일화는 해운업계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인근해역은 중국과 일본 간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분쟁의 위험이 있고 독도 문제도 분쟁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불안이 충돌로 가시화될 경우 외국 상선대는 인근 해역의 접근을 꺼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선박과 우리 선원들이 필요한 이유이다. 자원도 없는 나라가 이를 실어 나를 선박도 없다면 어찌할 것인가?

반드시 비상사태가 아니라 하더라도 위기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최근 Maersk-MSC-CMACGM 등 세계 3대 선사가 동맹을 맺는다는 기사가 전해졌다. 이들 3사는 초대형 고효율 선박을 다량 보유하고 있어 운임을 인하하고 효율화 경쟁을 벌여 경쟁자들을 고사시키겠다는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들의 전략으로 우리나라 대형 컨테이너선사들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까? 부산, 광양항 등 주요 컨테이너항을 외국사들이 장악하게 될 것이며, 독점적 위치에서 항만 사용료 인하, 한국발 운임 인상 등 갖가지 횡포를 부릴 가능성도 크다.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부산항을 버리고 인근 중국이나 일본으로 환적항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부산항은 세계 5위의 허브항구로서의 입지가 무너짐은 물론 경제성마저 잃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일은 한국발 화물운임에 대해 횡포를 부릴 경우 우리나라 전체 수출경쟁력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유럽은 자국 해운사에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자국 지배선대를 잃지 않으려 하고 있다. 사실 해운사는 고용효과도 크지 않고 세금도 편의치적국 이용, 톤세제 등으로 많이 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유럽국가들이 해운업을 보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들은 역사적인 경험을 통행 선박이 얼마나 중요하고 특별한 자산인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2차 대전을 통한 경험 뿐 아니라 과거 대항해시대 이후 해상 장악을 통해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고 이를 기반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지금 유럽 국가들의 부의 기반은 식민지로부터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해양의 기반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유전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해상을 장악했던 유럽 국가들이 지금 위기이다. 백인들의 주도권은 점차 아시아로 넘어오고 있다. 우리도 그 경쟁에 뒤처져서는 안된다. 해양의 주도권은 우리나라를 보다 안전하게 하고 국민의 안정된 삶을 보장할 것이다. 지금은 해상의 주도권 경쟁에 빈틈이 보이는 기회이기도 하고 우리 해운업계가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되는 시점이다. 해양산업을 형평성과 경제 논리로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생각이다. 해양에 대한 지원은 형평성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운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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