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성격 불명확해 감사기능 ‘全無’

-한국선급, “'비영리 민간기업'으로 자료공개 안한다”
-해수부, “'사단법인'이어서 감사권한 없어”
-해운업계, “과거에 감사 나갔는데 무슨 소리냐”

[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1 “한국선급은 비영리 민간기업으로 공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재무제표 등의 자료를 공개할 수 없습니다”(한국선급 관계자)

#2 “업무 자체가 선박안전을 점검하고 국제적으로 나라별 하나씩 밖에 없는 기관이기 때문에 한국선급은 공기업이라고 봐야합니다”(한국선급 자회사 관계자)

#3 “정부가 출자한 것도 아니고 업무만 위탁해 해양수산부에 일일이 한국선급이 보고하지 않는데다, 사단법인이기 때문에 우리도 알 방법이 없습니다”(해양수산부 관계자)

국내 선박의 등급을 매기거나 품질검사를 독점해오고 있는 한국선급의 정체성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업성격상 공익적인 측면이 강한데다 정부의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하지만, 정부나 외부기관으로부터 그 어떤 감사도 받지 않고 있다. 이 때문인지 과거부터 금전적인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해 왔으며, 최근에는 방만한 경영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누구하나 이를 제지하지 않고 있다. 지난 53년 간 ‘한국선급’이란 조직의 성격과 정체성이 무엇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선급 정관에는 조직성격을 '사단법인'이라고 규정해 놓고 있지만, 홈페이지나 선급 측에서는 '비영리 민간기업'이라고 표현하고, 선급 자회사에서는 공공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공기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누구 말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다. 

한국선급은 1960년 민법 제32조에 의거해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설립당시 정부의 출자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공기업은 아니지만, 설립허가를 내 준 해양수산부(당시 해무청)는 1970년대부터 선급측에 정부대행 업무를 위탁하고 있다.

정부대행검사를 위탁받는데다가 각 국에 하나씩 밖에 없는 기관이다보니, 한국선급의 정체성에 대해 한국선급 종사자들은 물론, 주무관청, 업계 관계자들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한국선급이 2~3년까지만 하더라도 위험물 검사에 대한 업무를 정부에서 위탁받아 독점해 왔고, 현재는 정부가 유일하게 국적선에 대한 선급검사도 할 수 있는 권한을 내줬기 때문에 공공성이 강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조에 대한 금융검토가 있을때 마다 한국선급에서 자기네들에게 선급검사를 맡을 수 있게 해달라고 영업을 하기 때문에 자주 본다”며 “본인들도 일부 그렇게 이야기 했고, 국적선에 대해 무조건 한국선급에서 검사를 하고 있어 당연히 공기업인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를 방증하듯 한국선급의 자회사인 한국선급엔지니어링(KRE)에서는 홈페이지에 버젓이 당사의 비전에 ‘공익성’을 내세우며 ‘공기업인 한국선급 자회사로서 공익성을 추구’한다고 명시돼 있다. 

반면, 한국선급 전임회장이자 현 명예회장인 오공균 씨는 조직의 성격은 ‘비영리 민간기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 명예회장은 “한국선급은 비영리 민간기업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과도하게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까지 한국선급 홈페이지에는 ‘비영리 민간기업’이라고 기재돼 있었지만, 기자가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자 이달초부터 ‘비영리 사단법인’이라고 수정하는 등 웃지못할 촌극도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비영리 사단법인’인 이 기관에 대해 주무관청이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정관을 위배했거나,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시정명령을 내려야할 주무관청인 해수부측은 “민간단체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자칫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민간단체가 개별적으로 하는 일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간섭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지난 2월 iKR 설립 당시 설립 승인을 두고 해수부와 선급 양측이 마찰을 빚은데다, 본부장이 영리법인의 임원이 될 수 없다는 정관까지 위배한 한국선급에 해수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등 관리감독 기능이 전혀 가동되지 않고 있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위원실 관계자는 “선급은 오랜기간 정부대행검사를 수행해 왔기 때문에 공익성이 상당히 강한 기관이다”며 “그럼에도 해수부에서는 이 기관이 사단법인이라는 이유로 불리한 것에 대해서는 ‘과도한 개입’이라며 쏙쏙 피해간다”고 비판했다. 이어 “자회사 설립이나 방만경영 등에 대해 문제가 심각함에도 해수부는 감사 권한이 없으며, 정부위탁사업에 대해서 관리감독할 수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본인들이 편한 쪽으로만 해석하기 때문에 서로 마찰을 빚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선급의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아 답답한 것은 해운업계도 마찬가지이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수부 인사가 지속적으로 (선급의)회장직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한국선급이 지속적으로 정부대행검사를 위탁받을 수 있었던 것 아니냐”며 “이 때문에 과거에는 해수부가 감사를 나가서 전체적인 것들을 다 살펴봤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과거 한국선급 성장배경 자체가 정부의 위탁사업 때문이었고 지금도 그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제와서 정부가 예산을 준 것이 없어 과도한 개입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그럼 과거에 감사 나가서 이것 저것 따졌던 공무원들은 뭐가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해운업계와 정치권에서는 최근 이 같은 논란을 매듭짓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거나, 공익법인으로 전환하는 등 한국선급에 대한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국선급은 해운업계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만든 한국선주협회와는 기능자체가 명확히 다르다”며 “몇 십 년간 선급 검사 및 위험물 검사 등 여러가지 사업을 사실상 독점해 왔으며,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명확하게 법적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관계자도 “여러 언론에서도 이미 공공성이 강한 공기업 성격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등 오해의 소지가 많음에도 아직까지 뚜렷한 근거가 없다”며, “정부와 한국선급이 서로 필요에 따라 유리한 쪽으로 해석을 하면서 빚어지는 마찰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익법인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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