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 논설위원, 現 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 필자가 최근 수년간 해운, 조선산업을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선박시장도 부동산 시장만큼이나 투기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00년대 중반에 일어났던 대규모 발주는 우리나라의 부동산 투기보다도 더 심했던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기존 선사들은 차치하더라도 선박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사람들까지도 벌크선을 발주하고 해운업에 뛰어들었던 사례를 여러 건 목격했기 때문이다.

사실 선박에 대한 투자가 수요에 의한 건전한 투자인지, 아니면 불건전한 투기인지의 경계는 명확하지 못하다. 누구나 다 앞으로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확신하고 선박을 발주하거나 매입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발주 후 2년 이상이 걸리는 인도시간을 고려하면 2년 앞을 정확히 내다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해운경기가 좋아지는 호황기에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너도나도 선박에 투자하는 거품이 형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거품은 해운업의 호황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가장 커지고 그 정점이 지나고 경기하강이 시작되었을 때 선박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것이 선복량 과잉을 만들고 그 정도에 따라 긴 침체가 시작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잉싸이클을 만드는 데에는 금융기관도 일조한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이다. 호황기에 심사나 투자검토에 대한 엄격성이 다소 느슨해지면서 선주들이 돈을 구하기 가장 쉬운 기간이라고도 이야기 한다. 사실 해운 호황은 세계 경기 호황을 의미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많은 양의 통화가 풀리는 것도 사실이고 금융기관들로서는 이를 활용하기 위해 대출이나 투자에 적극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금융기관들의 적극적인(?) 금융 제공 역시 선박경기 거품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금융기관들 내에서도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역리스크 관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이다.

이러한 거품의 붕괴는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해운사들이 운임 하락으로 적자를 기록하면서 어려움에 빠지고, 조선소들 역시 투자한 설비들이 가동을 멈추며 은행들은 많은 규모의 부실을 떠안게 되는 등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본다. 지금이 그러한 상황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다시 이러한 어려움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 해법으로 우리만의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해운, 조선산업이 세계가 단일 시장인 글로벌 시장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우리만의 연구가 무슨 필요가 있을지 반문 하겠지만, 우리의 특성을 고려한 연구는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의 조선업,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해운업, 유럽에 비해 짧은 산업의 역사, 그로 인한 경험의 부족 등 우리만이 가진 특성이 있다. 그래서 같은 침체기에도 어느 부분은 유독 취약한 특성을 보이고 어느 부분은 나름대로 선전하는 곳도 있다. 우리의 현실을 고려한 우리의 관점에서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다. 침체기에서 투자 가능성을 찾고 자산을 불려나가는 그리스 선주들처럼 우리만의 감각이 필요할 때라는 것이다. 우리의 짧은 산업의 역사와 경험 때문에 경쟁자들을 따라가려면 철저하고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사태부터 상세하게 기록하고 시사점을 찾아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이러한 노력은 조금씩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관련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우리나라의 데이터 시스템 구축을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또 수 년전 부산지역에서 시황 연구를 시작한 기관도 있고 점차 발전적인 노력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금융기관들도 역리스크 관리기법에 관한 노력들이 아직은 논의가 시작되는 수준이나 점차 발전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 글의 주제는 지난 주말의 한 세미나에서 업계에서 특히 시황연구로 유명한 한 회장님이 역설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업계를 이끌어 가는 분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우리 해운 및 조선업계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앞으로 우리의 연구 결과를 전 세계적으로도 파급시켜 투기꾼들을 억제 시키고 건전한 투자로 유인한다면 우리 해운업계도 발전하게 될 것이고 조선업계도 꾸준한 가치 창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정부에서 부르짖는 창조경제는 아니겠으나, 혁신적인 재창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 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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