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보국(輸送報國)’

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가 1945년 인천에서 트럭 한 대로 한진상사를 설립하면서부터 가슴 속에 새겨온 경영철학이자 한진그룹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조 전 회장은 이후 1969년 대한항공을 인수했으며, 1977년 한진해운을 설립하면서 육(陸)·해(海)·공(空)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종합물류기업으로 한진그룹을 키워 왔습니다.

아마도 최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민국 수송사(史)에 한 획을 그은 선친이 가장 많이 생각날 듯합니다. 선친 작고 후 경영이 분리돼 십 수년째 지속적으로 계열분리를 시도해 온 한진해운을 사실상 틀어쥐었기 때문입니다.

재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한진해운의 지주사인 한진해운홀딩스를 인적 분할한 후 지분 교환을 통해 최 회장이 가진 한진해운의 지분을 조 회장이 인수하는 방안에 대해 조만간 합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해운시황 악화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최 회장이 지난해 말 조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미 이러한 움직임은 예측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0월과 12월 총 2,500억 원을 지원하면서 한진해운홀딩스의 한진해운 주식을 담보로 확보했고, 한진해운의 유상증자에도 참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한진해운은 창업자의 셋째 아들인 故 조수호 회장이 경영권을 가져간 후 꾸준히 계열분리를 시도해 왔지만, 지난 2006년 조수호 회장이 사망, 부인인 최은영 씨가 경영에 직접 참여하면서부터 한진그룹과의 관계는 더 악화돼 왔습니다. 최 회장은 지난 2009년 12월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인 한진해운홀딩스를 설립하고 한진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본격화 해 왔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셈입니다.

어찌됐든 알려진 것과 같이 최 회장이 시숙인 조 회장에게 지분을 넘기게 되면 지난 2002년 조중훈 회장 작고 이후 경영권 분리로 해운부문이 떼내어 졌던 한진그룹은 12년 만에 다시 합쳐지게 됩니다. 조양호 회장의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사실 이번 조 회장의 한진해운 경영권 인수는 세계 물류시장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전세계 물류기업 중 육지·바다·하늘을 오가며 수송사업을 하는 기업은 한진그룹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한진은 글로벌 화물수송 부문에 있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최근 경기불황으로 주춤하고 있지만, 지난 2004년부터 6년 연속 화물운송 세계 1위를 차지했던 만큼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한진해운 역시 국내 선사 1위는 물론 세계 8위를, 한진은 국내 물류전문기업 가운데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체 실적측면에서도 이들 한진그룹 계열사들은 지난해 대한항공 11조 8,500억 원, 한진해운 10조 3,300억 원, 한진 1조 4,000억 원을 각각 기록하는 등 총 23조 5,8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한진그룹이 한진해운의 지분 및 경영권을 인수하게 되면, 항만 하역, 운송, 보관 등 물류사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한진과의 시너지 효과는 매울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실 그동안 한진해운은 말만 계열사였지 실제로는 별개의 회사와 다름없었습니다. 때문에 양 사 간 업무 협조관계는 다분히 형식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한진해운이 계열사로 편입된다면 사정은 매우 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진해운과 한진이 경영전략을 공유하며 동반성장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세계적 경기불황이 지속된다면 한진해운을 인수한 한진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부문입니다.

특히, 한진그룹은 지난 2009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은 이후 부채비율 감축에 실패해 번번히 재무약정을 졸업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지난해말 금융당국은 부채비율이 높은 한진그룹을 집중관리대상으로 분류, 약정을 확실히 지켜나가고 있는지 강력하게 관리키로 방침을 세웠습니다.

이에 한진그룹은 현재 800% 대인 총부채비율을 2015년까지 400%대로 낮추기 위해 S-오일 지분 3,000만 주(2조 2,000억 원)를 매각하고, 연료 소모가 많은 구형 보유 항공기 13대를 조기 매각(2,500억 원)하고, 부동산과 투자자산 매각(1조 400억 원) 등을 통해 총 3조 5,000억 원을 확보하는 자구책을 내놓았습니다.

이러한 자구책에도 불구, 일각에서는 한진해운 인수후 해운시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최근 적자로 돌아선 대한항공과 함께 동반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지난해 한진해운은 2,400억 원, 대한항공은 179억 원의 적자를 각각 기록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경기불황까지 지속된다면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진그룹이)너무 빨리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불필요한 비용을 정리한 다음에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러한 작업을 거치지 않은 것이 조금 걸립니다. 팬오션과 같이 구조조정이 끝난 다음에 들어가면 리스크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한진해운이 정상화 되려면 최소 1조 원은 투입해야 하는데,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자칫 대한항공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의 말입니다.

한진해운은 조양호 회장이 가장 갖고 싶었던 기업일 것입니다. 선친이 창업한 기업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한진그룹이 육·해·공을 갖춘 세계에서 유일한 글로벌물류그룹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만신창이가 된 채 가장 힘든 시점에서 조 회장의 품에 안기게 됐습니다. 물론 한진해운의 경영이 악화되지 않았다면 이러한 기회가 왔을진 모를 일입니다. 경기불황이 한진해운을 조 회장에게 가져다 줬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 불황이 이어진다면 조 회장은 발목을 잡힐 것입니다.

이제 한진그룹은 한진해운 인수를 계기로 기로에 서게 됐습니다. 그룹의 창업이념인 ‘수송보국’의 기치를 앞세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일류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성장할지, 아니면 경기불황의 매서운 칼바람에 퇴보를 거듭하며 그저 그런 기업으로 남을지.

한진그룹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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