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및 국내 화주·선사간 공조체제 절실

- 토니지뱅크와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지원해야
- 국적선사 없어지면, 국내 화주들 외면받을 수 있어

해운시장의 패러다임이 올해를 기점으로 크게 전환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해운공룡 ‘P3’출범과 쏟아져나오는 초대형선박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운항이 시작된 머스크의 1만8,000TEU 급 선박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세계 컨테이너선사 1~3위 합체인 P3출범으로 국내 해운업계가 대응방안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특성상 제조업으로 성장했지만, 중국이나 미국처럼 화주국이 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음에도 해운업계를 외면하는 현 정부방향도 답답한 부분이 없지 않다. 게다가 자국 선사를 보호하기 위해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에 처했던 P3소속선사들은 정부의 선제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 메가 얼라이언스까지 출범시키는 여유(?)를 발휘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우리나라 정부는 뚜렷한 해운지원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P3 출범과 초대형선의 범람 속에서 국적선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알아봤다.<편집자 주>

 

[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P3가 아직 공식적으로 출범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국적선사들의 피해가 예상되고 있지만, 정확히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어느 누구도 확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 해운업체 관계자는 “P3가 초대형화 전략으로 제풀에 나가 떨어지면 우리 입장에서야 고맙지만, 3개 선사가 뭉쳤으니까 시장에 어떤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할 것”이라며, “당장 피해가 예상되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현재 구조조정 작업 때문에 P3에 대한 대응책을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양대 해운사가 어려움에 처해 있어 자체 구조조정을 추진 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P3에 대한 대응에 신경쓰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게다가 선박이나 터미널, 전용선 부문 등 회사 밑바탕을 지지해주는 자산들마저 몽땅 매각하고 있는 상황에 해운공룡 출범은 양대선사를 코너로 몰 수 있다. 특히, 머스크나 CMA-CGM, MSC 등 P3 선사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국선사를 지키기위해 자국에서 선제적 지원을 해 줬었지만, 국내에서는 별 실효성없는 캠코펀드만 대책으로 내놓았을뿐 추가지원은 없었다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제조업으로 성장했지만,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미국처럼 화주국이 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에도 선사들을 지키기 위한 정책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씨랜드를 포기했을때 화주국으로서의 위상과 이에 따른 향후 영향에 대해 저울질을 안했겠냐”며, “미국은 화주로서의 역할이 더 크기 때문에 결국 머스크에 의존하더라도 자국 선사를 포기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중국도 마찬가지로 자국의 어마어마한 물량을 무기로 대형 화주국이지만 선사들을 포기하지는 않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제조업으로 성장했지만, 우리는 중국이나 미국같은 기반이 안되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화주국이 될 수 없고 결국 정부가 선사를 지켜야한다”고 덧붙였다.

해운 전문가도 “우리나라는 아시아 국가에서 제조업을 하기에는 인건비가 너무 비싼 나라가 됐다”고 밝히고는, “해운업을 크게 뒷받침하는 것은 금융인데, 도덕적 해이 등으로 여러 금융사고를 일으키는데다 국내 금융인들은 해외에 비해 도덕성이나 국제금융을 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금융업도 성장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화주국이 될 수 없다는 한계점 때문에 우리나라는 전략적으로 국적선사를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체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자구적 노력만으로는 살아남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적 지원방안이 절실하다는 전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어려운 현 상황에서 국적선사를 지키기 위해서는 최소한 국내 화주들만이라도 선사와 공조를 해야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해외선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국내 대형화주들이 블랙컨슈머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국적선사가 사라지게되면 결국 그들의 짐을 실어날라줄 선사를 찾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서로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형화주로 불리는 삼성, LG 등도 1년 장기계약을 하고 계약서를 작성해도 막상 운임이 약간이라도 떨어지면 1년 계약 운임을 지불하지 않아 선사들을 애먹이는 통에 해외선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블랙컨슈머로 불리고 있다”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그나마 국내 화주들의 물량을 실어나르고 얼라이언스도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짐을 실어날라주는 것이지 한진, 현대가 없어진다면 국내 화주들의 물량을 수송해주겠다는 외국선사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종길 한국해운물류학회 회장(성결대 교수)도 “P3 출범으로 단기적인 운임 하락은 예상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국 화주들의 운송을 지켜주는 것도 국적선사들이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는 가급적이면 화주들이 강제적으로라도 국적선사를 도와주는 등 선화주 상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 토니지뱅크와 지하경제 양성화 통해 초대형선 확보 필요

선박의 초대형화 전략에 따른 국적선사의 대형선박 확보도 필수적이다. 현재 운항 선박 중 최대 사이즈가 머스크의 1만 8,000TEU 급이며 올해 하반기 차이나쉬핑의 2만TEU 급 이상 선박도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초대형선에 대한 성공여부는 항만 시스템이나 한정된 기항지 때문에 불투명하지만, 어찌됐든 싸게 많이라는 전략과 해운업계 특성상 선박발주는 결국 치킨게임이기 때문에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현존하는 최대사이즈의 선박이 확보돼야 한다. 게다가 운임경쟁력 차원에서도 저가에 낮은 금리로 발주해 최대한 머스크나 P3 소속 선사들의 보폭에 맞춰나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높은 부채비율로 발목을 잡고 있는 양대선사가 선박을 발주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높은 부채비율은 가뜩이나 다른 나라보다 고금리를 적용받는데다가 금융권에서 추가금리를 더 얹기 때문이다. 현재 양대선사가 초대형선 확보가 필요는 불가피한 상황임에 따라,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연내 출범하는 해운보증기구의 토니지뱅크를 활용해야 한다는 전언이다.

현용석 산업은행 선박금융팀장이 최근 열린 해운금융포럼에서 밝힌 토니지뱅크 운영방안을 살펴보면, 토니지뱅크는 해운사가 보유한 과잉선박을 인수해 관리하면서 대선, 매각 등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선박관리 구조조정 전문조직이다. 부실자산이나 채권을 사들여 관리하는 배드뱅크와 유사하지만, 선박발주, 관리 및 매매업도 겸하면서 선주회사 역할을 수행하는 강점이 있다. 구조조정기금을 활용해 만든 캠코펀드와 유사하기 때문에 부실선박을 매입하고 과잉·유휴 중고선박, 에코선박 등 신조선 대체수요에 따른 친환경 선박 공동매입, 국내외 선박·항공기 매입 등 본격적인 전문운용 리스 업무를 수행한다.

토니지뱅크를 통해 국적선사가 필요한 선대를 대신 발주해주고 선박에 대한 용선료만 지급해 비용을 최소화해 경쟁력을 갖추는 방법이다. 다만, 과거 캠코펀드처럼 높은 금리를 적용하면 오히려 선사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낮은 금리와 용선료 적용이 필수적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정부의 해운보증기구는 신조선박 발주에 대한 역할을 하는 등 기존 캠코펀드의 기능을 대폭 확대해 운용하는 토니지뱅크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발표했기 때문에 양대선사의 초대형선박 발주는 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며, “다만, 낮은 금리에 대해 확실하게 수반될 필요가 있는데, 일본처럼 제로금리 수준까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어찌됐든 선사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가지 않겠냐”고 전했다.

또 다른 방안으로는 현재 선주와 선사가 분리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 해운시스템을 정리해 선박을 운항하지는 않지만, 선박 구매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선주를 발굴해 국적선대 강화와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이끌어내야 한다.
과거 전기정 해수부 해운물류국장은 “어디까지 선사로 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없는 탓에 소위 배장사를 하는 선사에게까지 정부지원이 이뤄지는 것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는 비판도 있었다”며, “정부 정책방향도 선주와 선사를 분리해 지원책이 따로 마련되야 한다는데는 공감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이뤄진 선박투자의 가장 좋은 활용예는 독일의 KG펀드를 들 수 있는데. 1970년대 만들어진 KG펀드는 개인투자자가 선박건조 및 운영에 투자된 자금에 대해 다양한 세제혜택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많은 투자자들의 참여를 유도한 바 있다.

대형선사 관계자는 “정책적으로 숨어있는 자금을 선박투자로 이끌어낼 필요가 있는데 KG펀드의 경우 이러한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모델이다”며, “국적선박이 전쟁시 제2의 해군을 자처하며 위험지역에 군수물자를 수송하고 국가를 위한 역할을 해주는 등 국적선의 국가발전 기여도가 높기 때문에 선박투자를 하는 일반투자자들에게 세제혜택을 지원해 선박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양대선사가 현재 어려운 이유 중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이 선박투자 실패에 따른 이자부담인데다가 낮은 금리로 저가의 선박을 확보해야함에도 현실적으로 양대선사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음에 따라, 이에 대한 역할을 대신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선박투자에 대한 세제혜택은 양대선사가 초대형선을 확보하는 목적도 있겠지만 나아가 우리나라의 해운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정부로서도 P3와 초대형선에 국적선사가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데다 숨어있는 자금이 표면위로 떠오를 수 있는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안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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