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한종길 객원논설위원, 現 한국해운물류학회 회장] 세월호 사고는 우리 해운계가 지금까지 쌓아온 공든 탑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5대 외화획득 산업이고 수출입물자의 99%를 수송하며 국민경제에 필수불가결한 주요 물자를 수송한다는 자부심은 어디로 사라지고 해운업 관계자라는 것조차 부끄럽게 만들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민들은 여객을 버리고 도망간 선장과 선원들을 최소한의 직업의식도 없는 살인자라 하고, 일부 매스컴에서는 천한 뱃놈들이 마피아 집단을 만들어서 죄 없는 어린 목숨들을 수장시킨 것이라고 쑤군댄다.

외국의 해운관계자들도 한국 헐뜯기(Korea Bashing)에 열심이다. 한국의 해양안전은 유럽에 비헤 50년은 뒤떨어져 있다고 유럽이 중심이 된 국제보험업계는 주장한다. 심지어 방글라데시의 한 전문가는 세월호 사건을 평가하면서 선령, 과적, 날씨, 휴먼에러의 4가지가 완벽하게 일치한, 방글라데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영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과 같은 사고라고 평했다.

이제 더 이상 실추될 명예도 없다. 바닥에서 시작해서 세계 5위의 해운국, 세계 1위의 조선국을 만든 우리들이 아닌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달라야 한다는 점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많은 과제가 있다. 첫째, 연안여객수송이 도서주민의 최소한의 생활권을 보장하는 공공교통수단이라는 점에서 시빌미니멈(Civil Minimum) 차원의 연안여객수송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둘째, 해난사고의 최일선에 있는 연안해운의 해기사양성과 안전교육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안전은 공짜가 아니라는 점에서 제대로 된 기업이 연안해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안해운업계의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한다. 넷째, 보험업계, 선주협회, 조선업계가 공동으로 출자하는 해난구조전문업체를 설립해야 한다. 다섯째, 해운업에 대한 제대로 된 홍보와 함께 조선해운정책기관을 일원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과 함께 무엇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당장 실시해야 할 일이 있다. 사고원인 제공자에 대한 형사적 처벌은 법에 맡기고 해운업계가 힘을 합해 ‘사고백서’라도 제대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우리는 사고가 발생하면 그 때마다 그 일을 쉽게 잊어버리고 제대로 대비책을 세우지 못했다. 세월호 사고 이전의 대형 해난사고는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에서 110t급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한 사고이다. 서해페리사고에서 지적된 사고원인인 기상을 무시한 출항, 화물 및 여객의 과적, 구명시스템 미작동, 승원인원 미파악, 당국과 선사의 관리부실 등은 금번 세월호 사고와 거의 동일한 판박이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고로부터 얻은 교훈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소를 잃고 나서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야만 다음에라도 소를 키울 수 있다. 사고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함께 사고 재발을 위한 제대로 된 백서발간과 활용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세월호라는 괴물의 재출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해양안전을 위해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준비하려면 사고를 철저하게 분석한 기록이 필요하다. 서해페리호 사고백서는 전라북도에서 만들어서 배포했지만, 재난안전백서라기보다는 지자체 홍보백서에 가깝다는 평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정 재난사고에 대해 백서발간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없고, 그 주체도 지자체·검찰·소방서 등 제각각이다. 그때 그때 사건 대응을 맡은 지자체의 장이나 관련 기관이 백서 발간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니 백서가 발간되어도 자신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는 상세히 기술하지만, 사고 예방을 위해 활용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많았다. 즉, 재난사고 백서의 기본 취지인 통렬한 반성과 재발 방지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백서를 만들었다면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다.

때문에 세월호 사고조사백서 발간을 위해 정치적인 성향을 배제하고, 다년간의 선박운항경력자, 인간공학자, 심리학자, 조선공학자, 해사법제 및 보험 전문가, 매스컴관계자, 해운연구자 등이 중심이 된 전문가집단으로 백서발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백서발간위원회는 사고에 대한 통렬한 반성을 전제로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선원, 선박회사, 해운조합, 선급,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지자체, 구난전문업체, 자원봉사자, 매스컴, 국제기구, 연구기관과 학술단체 등 금번 사고와 관련된 모든 주체들에 대해 역할과 문제점을 철저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를 바탕으로 활용가능한 재발방지책을 제시하도록 하자. 이를 국제해사기구에 보고하고 세월호의 교훈을 살린 도메스틱페리(Domestic Ferry)에 관한 국제규칙 제정도 추진하자. 제대로 된 사고백서의 발간은 우리국민들 뿐만 아니라 세계를 향한 우리 해운업계의 책무라는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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