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물량 밀어주기로 거칠 것 없이 성장

최근 전동수 삼성SDS 사장은 회사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오는 2020년까지 매출 20조 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7조 8,977억 원이다. 전 사장의 공언대로라면 삼성SDS는 6년 만에 몸집이 3배 가까이 불어나게 된다. 이 회사의 성장동력은 ‘물류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물류BPO)’. 간단히 말해 물류 아웃소싱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아웃소싱이 아니다. 그룹계열사인 삼성전자로부터 물량을 전량 위탁받아 자사의 IT솔루션을 활용해 재하청을 주고 있다. 오는 2016년부터는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등 다른 계열사로 대상을 확대한다. 때문에 삼성SDS측의 이러한 실적 목표치는 어렵지않게 달성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2자물류기업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삼성SDS측은 이를 4자물류(4PL)라 주장하지만, 물류업계는 그냥 IT전문 2자 물류업체라 한다. 정부는 지난 수년간 3자물류기업 육성을 외쳐대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찻잔 속 메아리’에 불과하다. 대형 화주기업이 물량을 밀어주면 사실상 이를 저지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편집자>

 
[데일리로그 = 오병근 기자] 흔히 2자물류를 가리켜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표현을 쓴다. 회사만 차려놓으면 모회사나 그룹 계열사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물량을 밀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량 처리에 큰 어려움을 겪지도 않는다. 모회사(또는 계열사)로부터 받은 물량을 쪼개 전문 물류업체에 재하청을 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형화주기업이 만든 2자물류기업은 전문물류기업에 사실상 ‘갑’으로 군림한다.

최근 저녁 술자리에서 만난 한 물류전문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물류업계(전문물류업계) 사람들은 사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2자물류업체가 없어져야 국가 물류산업이 발전한다고 부르짖지만, 정작 그 사람들(2자물류업체) 앞에서는 꼼짝을 못합니다. 그 이유는 이 바닥에 있는 사람은 다 알잖아요. 뭐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겠지만, 아무튼 물류업체는 점점더 먹고 살기 힘들어요.”

물류밥을 먹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국내 물류시장은 언제부터인지 2자물류업체가 대단한 화주기업으로 등장했다. 2자물류업체들은 막대한 물량을 갖고 시장을 휘저었다. 전문물류업계는 겉으로는 욕을 하지만, 이들이 가진 물량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물류시장의 현실인 것이다.

현재 국내 1위 물류기업은 현대글로비스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3조 9,220억 원 영업이익 6,446억 원을 기록했다. 이러한 실적은 국내 물류업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위인 CJ대한통운은 같은 해 매출 4조 5,600억 원 영업이익 1,670억을 기록했다. 현대글로비스에 비해 매출액 규모가 3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지난 2001년 창립한 현대글로비스는 모기업의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물량을 수주하며 승승장구했다. 2001년 1,98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글로비스는 사업시작 5년 후인 2005년(1조 5428억) 1조 원을 넘어섰으며, 2012년(11조 7,400억)에는 꿈의 10조 원대를 돌파했다. 짧은 시간 큰 폭의 성장을 이뤘지만, 성장과정에서 굵직한 M&A가 없었다는 것도 특징이다. 물류전문업체가 이러한 고도성장을 이루려면 M&A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CJ대한통운을 보면 이러한 내용이 잘 드러난다. CJ대한통운은 국내 대표적 3자물류업체로, 물류업계에서는 ‘맏형’으로 불리운다. 이 회사는 지난 1930년부터 사업을 시작해 올해로 85년째 물류전문기업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창립 이후 줄곧 ‘국내 최대 물류업체’라는 타이틀을 유지해 온 대한통운은 사업을 시작한지 68년만인 지난 1997년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섰다. 이후 별다른 M&A 없이 2007년까지 10여년 간 1조 원을 오르내리다 금호그룹으로 편입된 2008년(2조 464억) 2조 원을 넘어서게 된다. 당시 금호그룹은 인수와 동시에 금호타이어 물량을 맡겼으며, 계열사였던 한국복합물류를 대한통운에 통합시켰었다. 그 결과 대한통운의 매출이 처음으로 2조 원을 돌파했던 것이다. 수십년 간 1조 원 안팎을 유지해 오던 매출이 M&A로 인해 금호그룹에 편입되자마자 2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이 회사는 이후 2조 원대 매출을 꾸준히 기록했지만, 지난 2012년 12월 CJ그룹에 인수된 후 사실상 계열사로 편입된 2013년 3조 7,950억 원으로 전년(2조 6,274억 원) 대비 1조 원 가량 매출이 급등했다.

CJ대한통운의 이러한 매출 변화는 M&A 없이 대량의 물량유입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현대기아자동차와 현대모비스의 물량을 15년째 먹고 자란 현대글로비스, 85년 동안 전문물류기업으로 성장해온 CJ대한통운. 매출로 보면 CJ대한통운이 글로비스에 상대가 되지 않지만, 국내 물류시장은 두 기업 중 ‘1위 물류기업’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CJ대한통운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이는 물류업무에 한정된 것이다. 매출이 최고가 되는 업계 서열로 따지면 단연 현대글로비스가 최대 물류업체인 것이다.

- 2자물류기업 매출액 대비 고용율 현저히 낮아

3자물류기업과 2자물류기업의 차이점은 뭘까. 우선 3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2자물류기업은 오너의 주식보유율이 높다는 것이다. 둘째, 모기업(또 계열사)의 물량을 수주하면 물류업무를 직접 처리하지 않고, 전문 물류기업에 재 위탁한다는 것이다. 셋째, 직원 고용률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2자물류기업마다 제각각이지만, 일반적으로 위 3가지 중 2가지는 해당된다.

우선, 2자물류기업 대부분은 그룹의 오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일단 오너는 물류기업을 만들어 주식을 대량 보유한 후, 그룹계열사를 동원해 물량을 대량으로 밀어준다. 기업가치가 상승하면 상장을 하거나 오너의 그룹내 지배구조 확대에 활용하는 형태이다.

지난 2013년 8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3년 대기업집단 내부거래현황’에 따르면, 대표적인 일감 몰아주기 업종으로 분류된 ‘창고 및 운송 관련 서비스업(물류업)’은 내부거래 비중이 35.09%이며, 총수일가 지분이 44.3%에 달했다.

매출액 기준 국내 물류업계 3위인 롯데로지스틱스는 지난해 매출 2조1553억 원 중 94%가 내부거래에 의한 것이다.

또 2자물류기업은 기본적으로 물류업무를 직접 처리하지 않는다. 물론, 예외적으로 범한판토스와 같이 LG그룹과의 특수한 관계에 놓여있는 회사는 직접 물류업무를 처리한다. 범한판토스는 세계적 물류리서치기관인 암스트롱 앤 어소시에이트가 발표한 ‘2013년 글로벌 포워딩업체 TOP 25’에서 15위에 올랐다. 국내 물류기업으로서는 유일하다.

 
하지만, 이는 특수한 경우로, 대다수 2자물류기업은 전문물류업체에 재 위탁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화물연대의 운송거부 사태의 본직에는 2자물류기업이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화물연대측에서 주장하는 다단계 하청의 시발점이 2자물류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물류산업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고용율이 매우 낮다는 점도 2자물류의 단점이다. 3자물류기업과 2자물류기업의 고용율을 비교해 보면 현저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류업계(매출액 기준) 순위 1위인 현대글로비스는 지난해 매출 13조 9,220억을 기록했다. 이 회사의 직원 수는 938 명(정규직 878 명 계약직 60 명)이다. 또 같은 해 매출 2조 1,553억 원으로 업계 3위인 롯데로지스틱스는 532 명(정규직 444 명 계약직 88 명)이 근무한다.

이 같은 고용률은 3자물류기업과 비교해 보면 양사 모두 회사의 매출규모에 비해 현저히 적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매출 4조 5,600억 원을 기록한 CJ대한통운의 직원수는 5,301 명(정규직 4,911 명 계약직 390 명)으로 물류기업 중 가장 많은 인원이 근무한다.

업계 5위(매출 1조 7,537억 원)인 현대로지스틱스는 1,220 명(정규직 1,152 명 계약직 68 명)이, 6위(매출 1조 5,328억 원)인 한진은 2,087 명(정규직 2,025 명 계약직 62 명)이 각각 근무한다.

2자물류기업이 3자물류기업보다 매출액 대비 고용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자사가 물류업무를 직접 처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계 물류업체에 근무하는 한 임원은 “한국의 경우 매출액이 가장 높은 현대글로비스가 14조에 육박하고 있지만, 직원들은 1,000 명도 채 되지 않는다”며, “20조 원에 육박하는 유럽계 대형 물류업체들이 평균 4, 5만 명을 고용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2자물류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할 정도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고, 물류업무는 전문업체에 맡기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며 “한국은 2자물류기업이 업계 TOP 10 기업 중 5~6개가 포진하고 있는데, 이는 후진국형 물류시장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 거칠 것 없는 행보 이어질 듯

국토교통부는 3자물류를 활성화하고, 관련 기업의 육성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다.

국토부는 화주기업의 3자물류 활용을 지원하기 위해 물류업무 위탁을 위한 컨설팅비용을 지원하고 있으며, 공동물류 사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특히, 2자물류를 견제하기 위해 내부거래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화했다. 지난 2013년 7월 계열사 간 부당한 내부거래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를 위한 공정거래법을 개정했으며, 2자물류 등 실태조사를 통해 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업계의 자율개선을 유도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정부가 이렇게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물류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문제점에 대한 해결을 할 수 없으니 ‘수박 겉핥기식 정책’만 남발한다는 것이다.

중소물류업체 대표인 A씨는 “화주기업의 물류업무를 위해 컨설팅비용을 지원해 준다고 하는데, 대형화주가 컨설팅비용이 없어서 자사 물량을 전문물류업체에 맡기겠느냐”고 반문하고는, “사실 정부가 지금까지 펼쳐온 정책은 다분히 생색내기 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책을 펴려면 물류기업 가운데에서도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이에 맞는 맞춤형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말로는 3자물류기업을 육성한다고 해놓고, 정작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물류기업 육성대상기업’에는 2자물류기업들이 즐비하다. 더 이상 무슨 얘기가 필요하겠냐”고 비판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2012년 ‘글로벌 물류기업 육성업체’로 범한판토스, CJ GLS, 장금상선, 한진, 현대글로비스, 현대로지스틱스 등 6개 사를 선정했다. 이들 6개 업체 중 3개 업체가 2자물류기업 이었다.

특히,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국내 대표적 2자물류업체 임에도 불구, 해외매출이 10% 이상이라는 이유로 육성업체로 선정해 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물류업계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B 물류업체 관계자는 “국내 물류시장이 성장하려면 포스코와 같이 물류업무를 전문 물류업체에 위탁해야 한다”며, “정부는 대량물량을 갖고 있는 화주기업의 물류전문기업 활용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는데, 오너가 물류자회사를 보유하게 되면 상당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현 상황에서 이러한 자연적 유도가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금 대한민국 물류시장은 2자물류기업의 천국”이라며, “전문물류업체들이 2자물류기업으로부터 물량을 받기 위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어떻게 3자물류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인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업계는 이 같이 2자물류업체가 국내 물류시장에서 ‘갑’질을 하는 상황이 이러지면, 향후 국내 물류기업의 경쟁력이 외국기업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내 물류전문기업들이 성장과 투자를 통해 실력을 키워 해외로 사업반경을 넓혀야 하는 상황에서 내부 물량 지키기에만 급급한 현실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업계 내부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스스로 투자를 늘려 실력을 더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C사 관계자는 “솔직히 국내 전문 물류기업들은 투자가 미미한데다, 서로 물량 확보를 위해 단가싸움에만 치중해 시장을 어렵게 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주변여건만 탓해서는 안 되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물류시장은 앞으로도 초대형 2자물류기업의 출현이 러시를 이룰 전망이다. 현대글로비스, 롯데로지스틱스에 이어 삼성SDS가 차세대 주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SK증권은 지난 15일 삼성SDS가 그룹계열사인 삼성전자의 물류 확대에 힘입어 올해 물류 사업 실적이 대폭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SK증권은 올해 삼성SDS의 물류 아웃소싱(BPO) 부문에서 3조 5,054억 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년(2조 4,033억 원) 대비 45.9% 증가한 수치다.

대한민국 물류시장에서 2자물류기업의 거칠 것 없는 행보는 앞으로도 여전히 유효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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