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춘선 객원논설위원(現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교수)] 물류를 다루는 모든 이들은 물류허브의 중요성을 알고, 이에 대해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곤 한다. 또한 세계 각국의 유수한 도시들도 물류허브나 금융허브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물류의 중심으로 싱가포르항이나 로테르담항이 수시로 거론되면서, 부산항을 동북아물류허브로 육성하자는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필자도 2003년 기획재정부에서 해양수산부로 부처를 옮긴 이후 이 같은 주장을 여러 차례 들어왔고, 실제로 그러한 계획수립이나 추진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하기도 했다. 동북아 물류허브에 대한 거론은 1990년대 초 중국의 물동량 증가, 일본의 경쟁력 둔화, 우리 물류인프라 경쟁력 신장 등에 따라 시작돼 물류허브로의 발전계획이 논의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동북아 금융·물류 허브구축이 장기 핵심전략과제로 다뤄져 2003년에는 동북아 물류허브전략 추진로드맵이 수립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물류허브가 중요한가. 물류는 단순한 화물의 운송과 보관이란 전통적인 개념을 넘어 재포장, 라벨링, 조립가공, 수요관리, 제조, 매장역할 등으로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다. 물동량이 증가할수록 물류의 중요성도 증대하고 있고, 물류산업의 고도화와 물류체계의 선진화로 물류비가 절감됨으로서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에 따라 물류는 최근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인식되고 있고, 물류기술이 IT와 더불어 발전함에 따라 최근 각광받고 있는 e비즈와 전자상거래 등의 분야에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언택트(Untact)사회에서 물류는 더욱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어, 물류허브가 되기 위한 각국의 노력과 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생존을 걸고 싸우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물류허브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부산항 등이 글로벌 물류허브를 지향해 왔지만 이러한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지, 또 구비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경주하고 있는지, 또 그러한 가능성은 얼마나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국가의 일관성 있는 정책과 지원이 필수적이다. 자발적인 시장경제원리에만 맡겨서는 물류허브가 만들어질 수 없다. 민간의 경쟁력에 앞서 국가의 지대한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만 물류허브가 탄생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국가적 관심을 받아 주요한 정책과제로 부각된 적은 있지만 일관되게 지속적인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본다. 물류의 중심은 아무래도 해운인데, 한진해운의 파산이 단순한 금융과 시장경제의 논리에 의해 다루어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물류허브정책이 있었는지를 자문케 한다. 최근에 해양수산부에서 해운진흥계획을 수립하고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음은 고무적이긴 하지만 지속적인 지원과 추진의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경쟁력 있는 고부가가치 물류거점 항만이나 공항을 보유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수송인프라의 확충과 배후 물류단지의 개발은 필수적이고, 필요한 IT 및 첨단시설과 정보 운영시스템이 있어야함은 물론, 효율적인 운영에 걸맞은 제도와 인력도 있어야 한다.

국내외 화주기업에게 보다 경쟁력 있고 고도화된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포진하고 있어야 한다. 부산항이 나름대로 글로벌물류의 주 해상수송로 상에 위치하고 있어 다행이지만, 아직 우리의 경쟁력 수준은 최고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는 것이 국내외의 전반적인 평가로 과감한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배후지와 지향지가 고루 발달돼 있어야 하고, 항공, 철도 등 다른 수송수단과 연계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남북한 간 연계가 막혀 있는 것은 커다란 제약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남북관계 개선과 경협이 물꼬를 터야 해결될 사안이라 답답하지만 현재로서는 어쩔 수 없고 향후 전망도 당분간은 불투명하다. 그러나 잠재적 가능성은 크다.

물류만이 아니라 금융, 관광, 컨벤션, 문화 등 타 산업들도 발달돼 있어야 허브로서 우뚝설 수 있다. 싱가포르나 홍콩은 물류 외에 다른 산업들이 잘 발달된 대표적인 글로벌 물류허브 도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다 구비돼 있다고 하더라도 물동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만사휴의(萬事休矣)이다. 대형모선의 중국을 직기항하는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데, 이는 부산항이 글로벌 허브로 도약하는데 큰 걸림돌이라 할 수 있다. 우리와 일본의 로컬 물동량은 이미 정체기에 진입했으나. 중국의 물동량이 워낙 크고 증가속도가 빠르므로 중국 항만에 맞서 부산항이 물류허브로서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의 특단의 노력과 지원이 계속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브항만과 관련해 논의가 계속돼 왔던 사안중 하나는 ‘투포트(Two-Port)시스템’이다. 물류중심항만으로 부산항과 광양항을 모두 가져가려 했던 정책으로, 이를 강력히 추진해왔던 적이 있다. 지금도 상당부분은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해수부에 갓 들어간 필자로서는 이러한 정책이 이해되지 않았었고, 일견 우리나라의 물동량 규모로서는 하나도 잘 키우기 어려운데 두 개의 항만을 허브로 육성한다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대외적으로는 하나의 항만 및 허브를 내세우고, 대내적으로는 다수의 터미널 개념으로 소화시키면 일정 부분은 담아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하나의 항만이라도 여러 개의 터미널을 보유한 항만은 많으며, 이러한 터미널들은 수십km 이상~100km에 걸쳐 넓게 분포한 경우도 있으므로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본다. 부산신항과 광양항은 하나의 항만과 같이 일사불란하게 운영돼야 하고, 대외적으로 부산항을 앞세우고 광양항은 부산항과 긴밀한 관계의 거점항만으로 자리매김 해주면 될 것이다.

부산항이 글로벌 물류허브의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국항만과의 관계설정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2000년대에 들어와 중국은 우리 부산항을 본격적으로 견제해왔다. 특히, 북중국의 항만들과(천진, 청도, 대련) 상해항이 대표적인데, 환적물량을 가급적 부산으로 향하지 않도록 내밀히 유도해왔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신 우리 부산항은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여 대처해나가는 것이 정공법이다. 글로벌선사 유치 노력, 배후물류단지의 확충과 운영, 얼라이언스의 가입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중국 물동량이 급속하게 증가해 온데다 직기항의 증가와 더불어 이 같은 경향을 심화시켜 왔다. 다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의 위상이 약화될 것이므로 이러한 경향은 다소나마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중국이 앞으로는 국가정책적 고려보다는 시장경제원리에 접근한 코스트 개념을 도입하는 경향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돼, 부산항의 경쟁력과 서비스의 향상은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온난화에 따른 북극항로의 개설가능성은 부산항에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나진·선봉항이나 극동러시아의 항만들이 부산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됨) 글로벌 허브항으로서 부산항이 크게 부상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는 중장기적 시각에서의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필자는 동남권 신공항의 필요성에 대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긍정적이며, 글로벌 물류허브라는 측면에서 항만과 공항의 시너지효과를 감안하면 언젠가는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적절한 규모와 건설 타이밍이 관건이 될 것이다.

부산항을 글로벌 물류허브로 육성하는 것은 수출입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발상이다. 또 부산항이 지정학적으로도 주된 항로상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가능한 일이다. 부산항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 있는 글로벌 물류허브로 우뚝 서길 원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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