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객원논설위원
                정진영 객원논설위원

[데일리로그 = 정진영 객원논설위원(現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필자가 해운분야 실무를 하면서 화주나 포워더로부터 빈번하게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수입·수출 화물이 장기 체화된 경우 그로 인한 보세창고료, 장기체화료, 장기체화로 인한 멸각비용과 컨테이너 지체료(detention charge) 등을 선사에 지급할 의무가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장기체화로 인한 비용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 유형은 포워더가 국내 수출화주의 요청에 따라 선사에 컨테이너를 부킹하고 화물을 적입시켜 선적항 컨테이너 야드에 야적해 놓았으나, 국내 수출화주의 사정으로 선적이 장기간 진행되지 않은 경우, 선사는 포워더에게 컨테이너 지체료를, 보세창고나 세관에서는 보관료, 장기체화료 또는 멸각비용 등을 포워더에게 청구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편의상 첫번째 유형을 '선적지 체화'라고 한다.

두번째 유형은, 컨테이너 수입화물이 국내에 도착했으나 수입자가 도산이나 폐업 등으로 화물을 수령하지 않아 국내 도착항에서 장기 체화되는 경우, 선사, 보세창고, 세관 등에서 수입화주나 그의 포워더에게 위 비용들을 청구하게 된다. 이 경우는 '도착지 체화'라고 한다. 

위에서 열거한 비용들 중에서 장기체화료와 멸각비용(세관에서 멸각한 경우)는 세관과의 사이에서 문제되는 것으로 수출입 신고인이 부담할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창고료, 멸각비용(선사가 멸각한 경우) 그리고 콘테이너 지체료 등 (이하 '체화비용')에 관해서만 논하기로 한다. 

체화비용의 부담문제에 관해 상관행이 확립돼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법 등 법령에서도 체화비용의 부담 문제에 관해 직접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상법 제807조 1항이 수하인이 운송물을 수령하는 때에는 부수비용을 부담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조항은 수하인의 수령을 전제한 조항이므로, 수하인이 운송물의 수령을 지체하거나 거절하는 경우에는 적용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체화비용의 부담문제는 계약법의 틀에서 해석 및 판단할 수 밖에 없게 되는 바, 구체적으로 비용의 발생 근거가 되는 계약이 무엇인지 나아가 그 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가 선결적인 쟁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위 두가지 유형 별로 체화비용의 부담주체를 살펴 본다.

선적지 체화의 경우 창고료는 보세창고가 창고계약 관계에 근거해 청구하는 비용이며, 멸각비용과 컨테이너지체료 등은 컨테이너 이용계약 내지 운송계약 관계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포워더가 자기 이름으로 보세창고에 보관을 의뢰하고 선사에 부킹을 한 경우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포워더가 계약 당사자가 될 것이며, 따라서 창고료, 멸각비용과 컨테이너 지체료는 포워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포워더가 보세창고나 선사에 서면으로 보관 및 운송을 의뢰함에 있어서 그 의뢰서에 수출화주를 의뢰인으로 직접 기입하거나 또는 'acting as agent' 또는 'for and on behalf of'와 같은 문언을 기입하는 등 자신이 수출화주를 위한 대리인임을 명기했다면, 수출화주가 체화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포워더가 선사에 대한 관계에서 비용을 부담 및 지급하는 경우, 포워더는 수출화주에게 그 금액 상당의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선적지 체화가 발생한 것은 수출화주에게 파산이나 부도 등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사실상 포워더가 동액 상당을 수출화주로부터 회수하는 것은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포워더가 도착지 체화에 따른 비용부담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면, 포워더는 선사에 부킹을 하거나 보세창고에 보관을 의뢰함에 있어서 실질적인 계약 주체는 포워더가 아니라 수출화주라는 점을 그 의뢰서에 분명히 해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도착지 체화의 경우 창고료에 관해서는 위 문단에 설명드린 내용이 그대로 적용될 것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며, 멸각비용과 컨테이너 지체료에 관해 보기로 한다. 화물멸각비용과 컨테이너 지체료는 선사와 ‘화주측’(선적지와 도착지 포워더 모두 포함) 사이의 운송계약과 관련된 문제이므로 그 틀에서 처리하면 된다. 그런데 ‘화주측’에는 송하인측(선적지 포워더 포함)과 수하인측(도착지 포워더 포함)이 포함되는 바, 이 중 어느 쪽을 운송계약 당사자로 보아야 하는지가 문제된다. 우리나라 법원은 이 문제를 Incoterms와 연결지어 해결하고 있다.  대법원 94다27144 판결이 그것이다. 이 판결에 관하여서는 국제매매거래에서 가격조건에 불과한 Incoterms를 잣대로 삼았다는 점에서 너무 형식적·도식적 판단이라는 비판을 받는 면도 있지만, 다른 특별한 기준이나 약정이 없는 한, 국제간 해상운송계약의 당사자를 확정(identify)하는 하나의 기준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leading case로 자리잡고 있다. 이 판결의 요지는, ① 해상운송계약이 매도인(대부분 운송계약상 송하인)이 운송비를 부담하는 CIF 조건의 국제간 매매계약에 관해 체결된 경우에는 매도인(송하인)을 운송계약의 당사자로 보아야 하며, ②반대로 FOB 조건의 국제매매계약에 관해 해상운송계약이 체결된 경우에는 매수인(수하인)을 운송계약의 당사자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례 법리를 멸각비용과 컨테이너 지체료에 적용해 보면, CIF 조건의 매매계약에 관한 해상운송계약 하에서 도착지 체화가 발생하는 경우 선사는 도착지 국가의 포워더나 최종 수하인이 아니라 송하인이나 선적지 포워더에게 멸각비용이나 컨테이너 지체료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FOB 조건의 매매계약에 관한 해상운송계약의 경우에는 선사가 도착지 포워더나 최종 수하인에게 멸각비용이나 컨테이너 지체료를 청구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포워더 등 물류업체에 이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은 조언을 드린다. 포워더가 선적지 체화와 관련한 비용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선적지에서 창고를 섭외하거나 선사로부터 컨테이너를 빌려 오는 과정에서 가급적 자기 이름으로 거래를 하기 보다는, 수출화주의 대리인 자격에서 거래를 한다는 점을 이메일, 보관의뢰서나 shipping request 등 서류에 명시적으로 유보한 상태에서 거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도착지 체화와 관련해서는 국제매매계약의 Incoterms 조건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CIF 조건인 경우에는 선사의 청구에 대해 운송계약의 당사자가 아님을 들어 그 지급을 거절하고, FOB 조건인 경우에는 선사에 대한 지급을 부인하기 어려우므로 수입화주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 등 채권보전조치를 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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