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오병근 기자] “재판장님, 살고 싶습니다. 살아서 CJ를 반드시 세계적인 글로벌 생활문화기업으로 향상시키겠습니다. 길지 않은 여생을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2014년 8월 14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6차 공판에 참석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최후 진술을 통해 법원의 선처를 바라며 남긴 말이다.

이 회장은 546억 원의 세금 포탈과 회사 돈 963억 원을 횡령하고 569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지난해 2월 1심 재판부는 징역 4년과 벌금 260억 원을 선고한 바 있다. 2심 재판부는 그해 9월 12일 이 회장에 대해 징역 3년과 벌금 252억 원을 선고했다. 이 회장은 곧바로 상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CJ그룹 측은 “회장의 부재로 투자가 여의치 않다”는 말을 반복하며, 이 회장을 선처해 줄 것을 은근히 압박해 왔다.

법정에서 “살아서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겠다”던 이 회장의 행보는 어땠을까. 아쉽게도 이러한 말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다. 적어도 물류사업에서만큼은 그랬다.

이 회장은 2011년 12월 말 대한통운을 인수하자마자 ‘등기임원’으로 등록했다. 이후 3년간 해당 직을 유지했지만, 올해 3월 말(금감원 공시자료 기준) 기준 ‘미등기임원’으로 변경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장은 직위 또한 CJ대한통운의 ‘사내이사’에서 ‘회장’으로 수직 상승했다. 미등기임원으로 변경해 책임은 회피했지만, 권한은 더욱 강화한 것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회장은 CJ대한통운에서의 지위를 변경함과 동시에 자신의 누나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게 CJ대한통운의 부회장 자리를 내줬다. 물론, 당연히 ‘미등기임원’이다.

미등기임원은 회사가 잘못되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지난해 말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재벌총수의 ‘등기임원’ 등재비율은 8.5%에 불과하다. 이는 재벌총수의 ‘無 책임 경영’이 이미 국내 경제계에서 토착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이번에 이 회장이 미등기임원으로 변경한 것은 솔직히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책임 경영’이 사라지고 ‘無 책임 경영’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 이 회장만 탓할 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장의 이번 미등기임원 전환등재는 재벌총수들이 즐겨왔던 수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다.

CJ그룹은 대한통운을 인수한 지 3년이 넘었지만,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다. 지난해 주요 물류업계 빅3 중 각 업체별 설비투자금액은 CJ대한통운 218억 원으로 한진(482억 원), 현대로지스틱스(259억 원)에 비해 현저히 낮다. 반면, 매출액 기준 회사규모는 CJ대한통운(4조 5,600억)이 한진(1조 5,378억 원)과 현대로지스틱스(1조 7,537억 원)보다 월등하다. 투자를 하지 않는 물류회사는 당장 실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4~5년 후에는 반드시 겉으로 나타나게 된다. 때문에 장치산업인 물류산업에서의 투자는 회사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법정에서 ‘선처해 주면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겠다’던 이재현 회장. 재벌총수가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는 것은 책임 경영을 통해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2심 판결이 나자, 이 회장의 생각이 바뀌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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