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오병근 기자] “이건 택배업계 망신이죠. 고소고발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한 택배업체 관계자가 최근 기자에게 툴툴대며 한 말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택배업계가 쿠팡의 택배서비스인 ‘로켓배송’이 불법이라고 고소고발한 상황에서 한국통합물류협회 택배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CJ대한통운이 쿠팡의 택배전담업체 선정 관련 입찰에 참가했습니다. 화주의 입찰에 택배업체들이 참여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택배업계와 쿠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사실상 고소고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CJ대한통운이 입찰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취할 올바른 행동은 아니라는 지적입니다. 물론, 타 택배업체들도 이번 입찰에 참여했습니다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관계자의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현재 택배업계는 한국통합물류협회를 통해 지난 5월 21개 주요 관할관청에 쿠팡의 자가용 유상운송행위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는 등 쿠팡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택배위원회 위원장이 소속돼 있는 CJ대한통운이 쿠팡의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데 업계 일각에서는 강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듯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쿠팡의 ‘로켓배송’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이면에서는 이 업체의 물량 수주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좀 당황스러운 장면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특히, 쿠팡의 택배물량 입찰과정에서 CJ대한통운의 택배사업본부장인 C 부사장이 직접 두 차례에 걸쳐 브리핑을 했다고 합니다. C 부사장은 현재 물류협회 택배위원회 위원장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택배업계 전체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협회 택배위원회 위원장은 택배업계를 대표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업계 전체의 위신이 걸려 있습니다. 택배업계와 쿠팡 간 고소고발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CJ대한통운의 택배본부장 자격으로 프리젠테이션에 발표자로 나섰다고 하겠지만, 쿠팡 관계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택배업계를 얼마나 무시했겠습니까.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얼굴이 다 화끈거립니다.” 업계 관계자의 말입니다.

택배업계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창피할 수도 있는 상황이란 생각도 듭니다.

또, 한편으로는 CJ대한통운 측의 이러한 행동이 발주업체인 쿠팡에는 은근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쿠팡 입장에서는 이왕 줄 물량이고 같은 값이라면 이번 갈등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기업에 주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할 것이라는 심리적인 면도 작용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CJ대한통운 측은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하겠지만, 제3자적인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이와 관련, CJ대한통운 측은 이번 사안에 대해 일체의 답변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한국통합물류협회 택배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자리는 업계의 택배 관련 이슈를 총괄적으로 판단하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제시하는 등 구심점 역할을 하는 책임 있는 자리입니다. 이번 쿠팡과의 갈등도 진두지휘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고소고발이 한창 진행 중인 예민한 상황에서 해당 업체의 입찰에 참석해 쿠팡 관계자들 앞에서 직접 브리핑까지 했다고 합니다. 물론, CJ대한통운의 택배부문 책임자로써 직접 브리핑까지 했다는 것에 특별히 토를 달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C씨의 현재 위치가 대외적으로는 업계를 대표하는 자리의 가장 꼭짓점에 있다는 점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CJ대한통운은 전체 택배시장의 5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리딩기업입니다. 모범까지는 아니더라도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느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업계와 쿠팡이 갈등을 겪고 있는 현 시점에서 쿠팡 측이 입찰을 붙여야 했느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유가 어떠했든 업체 간 경쟁을 부추겼고 결과적으로 택배업체가 보기 좋게 걸려 들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택배업계는 지난 20여년간 가격덤핑을 무기로 서로 열심히 싸워왔습니다. 작금의 저단가시장이 형성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지요. 때문에 이번 쿠팡 입찰 해프닝은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택배업계의 치부를 그대로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남을 것 같아 씁쓸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택배업계는 자가용 화물차(흰색 번호판)를 이용해 유상운송행위를 한다며 쿠팡 측을 고소했습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택배업계가 운용하는 차량의 약 40%가 자가용 차량이었습니다. 정부에서도 행정적인 부문이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지난 2년간 이 자가용 차량들에 대해 총 2만 4,000여 개의 영업용 ‘배’자 번호판을 지급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아직도 일부 남아 있는 소량의 자가용 차량에 대한 운행은 업계 스스로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도로 곳곳에서는 기존 택배업체의 자가용 화물차가 버젓이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이러고도 쿠팡 측에 자가용 차량 운행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겨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은 지난 7일 촬영한 것으로, 차량 내부에서 찍어 화질이 썩 좋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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