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오병근 기자] 택배연대노조가 정부로부터 노동3권이 보장된 합법적인 단체로 인정받으면서 택배업계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택배노조는 노조로서 합법적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 지난 8월 설립신고를 냈으며, 고용노동부 서울서부노동청은 지난 3일 이를 승인한 후 노조설립 필증을 발급했습니다. 이에 따라 택배노조는 법적으로 노동3권(단결권ㆍ단체교섭권ㆍ단체행동권)이 보장돼 택배업계와 정식으로 교섭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필증 발급에 노조는 환호했지만,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당장 내년부터 노조측이 택배업계를 대상으로 교섭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입니다. 전국 택배기사들 중 택배업체에 소속된 정직원은 5%도 채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95% 이상이 개인사업자 신분인 특수직 근로자들입니다. 때문에 택배업계는 노조와의 갈등에서 빗겨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노조와의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합니다.

특히, 택배노조 전체 구성원 중 80% 이상이 자사 배송원인 CJ대한통운은 관련TF를 구성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진, 롯데, KG 등도 CJ보다는 급하진 않지만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택배노조는 당장 배송수수료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조는 지난 1월 창립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이 같은 내용을 주장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김태완 택배노조위원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일단, 업계에 무리한 요구를 하진 않는다는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태완 노조위원장은 10일 오전 데일리로그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 택배업체와 연말연시 동안 협상을 시작하려면 지금부터 바쁘게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500명인 조합원 수를 최소 1,000명 까지 늘려야 제대로 된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조합원 확대와 협상 준비 등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필증을 발급 받은 후부터 조합에 가입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계약당사자와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협상에 임할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부문은 배송수수료 인상, 근로시간 감축, 하역시 수당 지급, 표준계약서 작성 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진행하려고 합니다.”

김 위원장은 계약서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이를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회사와 근로자 간에는 근로계약서가 있습니다. 하지만, 특수직 노동자인 택배기사들은 계약서가 없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일부 택배기사들은 본사 및 대리점과 위수탁계약서를 체결하지만, 아예 위수탁계약서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위수탁계약서를 쓴다고 해도 강제성이 별로 없어 택배기사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배송수수료 100원 인상 시 택배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합니다.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은 지난해 택배부문에서 매출 1조 7,520억원 영업이익 556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영업이익율은 3%대로 업계 최고 수준입니다. 택배물량은 약 8억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순 계산으로 이 회사가 노조에 박스당 배송수수료를 100원 인상해 준다고 가정하면 800억 원의 추가 비용이 소요됩니다. 이는 지난해 영업이익인 556억 원을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인상시 택배사업은 적자로 돌아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김 위원장도 언급했듯 수수료 인상 외에 노조는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터미널에서의 하역작업 시에도 시간당 수수료를 요구한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택배업계가 이러한 요구를 들어준다면 현실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기 쉽지 않습니다.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화주나 고객으로부터 받는 서비스단가를 반드시 인상해야 합니다. 단가 인상은 업계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이 또한 녹록치 않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입니다.

“우리 회사 배송기사가 택배노조에 가입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걱정이 앞섭니다. 현재 가입돼 있는 노조원의 비중을 보면 당장은 CJ대한통운이 큰 타격을 입겠지만, 노조 합법화로 노조원 가입이 늘어난다면 택배업계 전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노조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들어줄 순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택배사는 현재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경우 단가를 올려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론 매우 어렵습니다. 내년부터 정말 걱정입니다.” A사 임원의 말입니다.

택배업계는 ▲배송수수료 인상 ▲근로시간 단축 ▲터미널 하역작업시 수수료 지급 ▲표준계약서 작성 등 노조가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조건의 절반만 들어준다고 가정해도 화주들에게 서비스 단가를 최소 200원은 올려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장 내년부터 박스당 200원을 인상할 수 있는지에 대해 택배관계자들 모두 부정적입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박스당 200원을 인상한다는 것이 말 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택배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화주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가를 깎아 왔고, 지금 이 시간에도 재계약이 임박하면 택배업체 담당자는 잠도 제대로 못자는 것이 현실입니다. 업계의 평균단가가 2,000원 대 초반인데 200원을 올린다는 것은 10% 인상하는 것입니다. 화주는 어떻게 해서든 깎으려고 하는데, 10%를 어떻게 올릴 수 있겠습니까. 정말 답답한 심정입니다.” B사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지난 십수년간 택배단가는 매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노조는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을까요. 김 위원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택배업체간 경쟁이 심해져 단가가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택배업체와 화주와의 관계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협상을 시작한다고 해도 택배업체와 화주와의 관계를 모두 염두에 두고 할 것입니다. 무조건 수수료를 올려달라고 하진 않을 것이며, 택배업체와 화주 나아가 산업 전반적인 상황을 감안해 상식적인 수준에서 요구를 할 것입니다.”

노동법상 노조는 계약당사자와 협상을 진행해야 합니다. 본사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대리점은 사실상 본사가, 그렇지 않은 대리점은 대리점주가 협상대상자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택배대리점과 협상을 진행해야 하겠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본사가 관여하지 않을 순 없습니다. 직영대리점이 아니더라도 노조원들이 배송을 하지 않으면 해당 업체의 서비스는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고, 이 경우 대리점은 물론 본사 역시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택배노조가 합법화 됐으니 분명 조합원 수는 늘어날 것이고, 이 경우 노조의 힘은 더 커질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순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노조와의 협의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업계 관계자의 이 말이 현재의 택배시장을 가장 잘 설명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조는 합법적인 권한을 얻었고, 택배업계는 이들을 협상파트너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제부터 화합을 할지, 대립을 할지, 그 선택은 노사 양측이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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