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업계, 美 영향력 커 ‘유예’ 될 것으로 예상

[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미국 행정부가 2020년부터 국제해사기구(IMO)가 시행키로 한 황산화물 규제를 연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같은 미국의 압력에 대다수 관련업계는 황산화물 규제 시기가 유예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외신 및 해운업계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의 경기 악화를 빌미로 IMO에 2020년 시행하는 황산화물 규제(IMO 2020)를 연기해달라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 관계자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IMO 2020 규제를 연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황산화물 규제는 2020년 3월부터 황 함유율이 현행 3.5%에서 0.5%로 제한하는 환경규제이다. 이 규제가 시행되면 선사들은 기존 연료유인 벙커C유를 사용할 수 없고, 저유황유를 사용하거나 스크러버(탈황장치) 장착 혹은 규제에 맞는 신조선을 이용해야 한다.

미 행정부가 황산화물 규제 연기를 압박하는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중국과의 무역전쟁 장기화와 시행시기인 2020년이 미국의 대선 시기와 겹치는 등 여러 원인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황산화물 규제로 호재를 겪는 곳은 스크러버의 원천기술이 있는 유럽과 조선소가 몰려있는 극동아시아와 저유황유를 공급할 수 있는 정유업계다”며, “미국 내에서도 정유사는 쉘(Shell) 정도가 대응 준비를 하는 정도로 타 업체는 준비가 덜 된 것으로 알려져 규제가 미국에서 큰 이익을 보기 어렵고 오히려 화주국인 탓에 물류비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대선 시기인 2020년 황산화물 규제가 시행된다는 정치적 이슈가 있는 것도 또 다른 원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기관 관계자도 “중국이 수리조선이나 신조 모두 가능한데 미국이 중국의 자금줄을 틀어막아 미중 무역전쟁을 장기화하려는데, 뜻하지 않게 황산화물 규제로 조선소가 일시적으로 호황을 이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뒤늦게 규제 연기를 압박하지 않았나 한다”며, “현재 미국은 전에 없는 경기 호황으로 황산화물 규제에 따른 물류비 상승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관련업계는 이번 미국의 규제 연기 압박으로 시행시기가 유예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직전 지난해 9월부터 적용키로 했던 발라스터 탱커 처리설비(BWMS) 의무화도 시행 직전 2년 유예시켜준 데다, 미국이 UN에 영향력이 크다는 점과 미 트럼프 정부가 공표한 내용이 대부분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UN에 회비를 가장 많이 내고 있는 등 영향력이 커 유예를 반대할 경우 UN을 탈퇴하거나, 또 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게다가 북미문제나, 반이민정책, 미중 무역전쟁 등 트럼프 정부가 내뱉은 말에 대해 행동에 반드시 나서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A선사 관계자도 “BWMS 시행도 시행직전에 유예를 시킨 전례가 있고 스크러버 장착으로 환경이 개선된다고도 보기 어려운데 시행이 연기될 것으로 본다”며, “이미 그리스 선주들이 IMO 측에 황산화물 규제에 따른 스크러버 장착이 지속적인 고유황유를 사용케함으로써 황산화물 규제 취지와 어긋나고, 선원이나 선박의 안전문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도 황산화물 규제를 제때 시행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고 전했다.

다만, IMO가 UN 산하기구라고 하더라도 UN본부가 아닌 산하기구에까지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없었다는 점과 IMO가 수차례에 걸쳐 연기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던 부분을 들며 연기 가능성이 희박다는 분석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UN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건 분명하지만, 산하기구에까지 직접적으로 간섭한 적이 없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며, “IMO가 BWMS의 시행시기를 늦춘걸 뒤늦게 후회하고 있는 상황이라 황산화물 규제는 예정대로 2020년에 시행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BWMS때는 준비도 덜됐고 주요 국가들이 반대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황산화물 규제는 주요 국가들이 대부분 찬성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번에도 또다시 규제 시행을 연기할 경우 IMO의 신뢰성에 금이 가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금주 중 규제 시행을 논의하는 IMO 자체 위원회(MEPC)가 열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 회의에서 관련 내용이 합의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시행 연기가 어렵기 때문에 규제 시행 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황산화물 규제 시행시기가 유예될 경우 현대상선(HMM)의 초대형선 발주계획과 인도시점도 대폭 수정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대상선은 지난달 3조 1,500억 원 규모의 초대형선 20척을 발주하면서 “친환경 초대형선 확보로 새로운 환경규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황산화물 규제에 맞춰 초대형선을 이에 맞게 발주한 것이라 인도시점이 2020년으로 계획돼 있는데 규제시기가 연기되면 굳이 서둘러 (선박을)받을 필요가 있는지 재검토를 해봐야할 것”이라며, “자사 자금도 아닌 정부 자금이 잘못 쓰이면 안되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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