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오늘 우리 클럽 팀장 4명이 머리를 짧게 깎았습니다. <중략> 심기일전하자는 의미와 내년 어려움을 잘 극복하자는 차원에서 한 일인데 주변에서 너무 심했다는 말씀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후략>”

최근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P&I)에서 일어난 일련의 헤프닝 후, 해당 조합 담당자가 보낸 문자메세지의 일부이다.

KP&I는 최근 비상경영의 하나로 상근직 전무의 연봉 반납과 함께 팀장급 직원 4명이 삭발을 단행(?)했다. KP&I는 일본 JP&I의 공격적 영업에 심기일전 하는 차원에서 이 같은 행동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일본 보험조합의 공격적 영업으로 일부 선사의 보험이탈 우려 때문에 비상경영을 선포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다는 것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일본 클럽으로 이탈하는 선사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KP&I 당사자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들만의 '심기일전'이 업계 일각에서 조롱거리로 비춰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KP&I는 국내를 대표하는 선주보험조합으로, 우리나라 상선이 외국 P&I를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같은 취지와는 다르게 설립 20년이 다되도록 대형선은 단 1척도 유치하지 못했다.

정부의 해운재건 프로젝트에 따라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국내 3대 조선소에 발주를 했음에도 KP&I는 아무런 수혜를 입을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KP&I가 대형선을 커버할 수 있는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KP&I는 원래 국적선사의 선대를 국내로 흡수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국내 선사들이 KP&I의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보험가입을 외면하고 있다”며, “현 상황에서 초대형선 사고가 나면 KP&I가 보유한 보험지급액보다 훨씬 많은 보험금이 정산돼야 하기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합’이라는 구조를 갖췄지만 정작 조합원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데다, 외국 P&I에서는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 선체보험과 재보험사업은 금융당국의 반대에 막혀 엄두도 못내고 있다.

이 때문에 KP&I는 한국해운조합과 외국적 P&I들과의 경쟁이 쉽지만은 않다. 소형선사들은 해운조합이 KP&I 설립 이전부터 해 왔기 때문에 경쟁에서 뒤쳐지고, 대형선사들은 외국적 P&I에 경쟁 자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원회의 규제를 풀기 어려웠다면 적어도 해운조합과의 중복된 사업부문에 대해서는 해수부가 교통정리를 해 줬어야 했는데, 왜 아직까지 이를 해결하지 못했는지 안타깝다”며, “결국 KP&I를 설립한 이후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어느 누구도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KP&I 설립 추진 당시,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 등 국내 대형선사들은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이미 유수의 해외 대형 P&I클럽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보험사를 옮기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외 P&I클럽의 운영방식은 한해 손실분을 조합원들이 분담해 요율을 결정하고 이익이 나면 이익분을 돌려주는 구조이다. 대형선사들이 이미 해외 P&I에 별도로 돈을 지급하고 있기 때문에 애국심에만 기대(?) KP&I로 옮겨달라는 것은 애초에 무리가 있었다.

해수부는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 선사들에게 추가 부담을 지우지 않고,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지 않겠다는 두 가지를 약속하고 KP&I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출범만 시켰지 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해 주지 않았다. 아이를 낳아만 놓았지, 성장할 수 없는 환경 속에 방치해 놓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보험금의 해외 유출을 막자'던 KP&I 출범 목적은 사라진지 오래다. 

외국 P&I의 국내 영업 소식에 KP&I는 지레 겁부터 먹고 연봉 반납과 삭발로 맞섰다. 아마도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 그 것밖에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는 조롱거리였지만, 그들에게는 간절했을 것이다. 이번 헤프닝을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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