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춘선 객원논설위원(現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4차 산업혁명’이 화두이고, 모든 분야에서 다양하게 거론되고 있다. 해운물류분야도 예외가 아니고, 오히려 적극적인 적용의 필요성이 주창되고 있다. 그런데, 누구나 공감하는 신기술의 도입과 적용이 왜 그리 크게 강조돼 거론되고 있을까.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추진되고 있지 못하고 있는데다, 여전히 미흡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해운 네트워크 설계’ 분야는 대한민국 해운을 재건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현재 세계해운시장 상황을 보도록 하자. 최근 세계 3대 얼라이언스(2017년 4월 발족)의 M&A는 마무리단계로, 재편이 안정화단계에 이르러 다음 순서로 선단과 물류망을 연결하는 범세계적 해운 네트워크(Global Network)의 설계가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동안 글로벌 해운선사들이 재편의 소용돌이에 치어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분야였지만, 이제는 신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해운분야에서도 디지털화 추세와 함께 네트워크의 설계가 해운업계에서 다음 단계의 중요 쟁점과제로 부상하고 다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네트워킹(Networking)이란 화물이 출발지에서 최종 도착지에 이르는 전체 흐름을 계획하고 그 비용과 효율을 최적화(안전, 신속, 저비용)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즉 네트워크(Network)라 함은 선적항(Loading Port)에서 양하항을 연결하는 해상운송과 해상운송이 육상운송으로 바뀌는 접점이라 할 수 있는 항만과 터미널, 그리고 그 이전과 이후에 이루어지는 인수-배송-인도에 이르는 전 과정에 걸쳐, 화물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저비용으로 이동할 수 있는 연결망(Net)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모선과 지선선박에 의한 해상운송구간과 터미널, 도로, 철도에 의한 육상운송 등 이종의 운송모드가 포함된다. 해운 컨테이너의 경우 네트워크의 기본구조는 잘 알려진 허브 앤 스포크(Hub-and-Spoke)형태로 ‘70년대 후반 모선과 지선을 연계해 해상운송을 실시했던 시기에 마련된 것이다.

그동안 컨테이너화가 확산되고 물량이 증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단위원가를 줄이기 위해 선박의 대형화가 이뤄져 규모의 이익을 추구해온 것은 사실이나, 선박단위가 아닌 전체 네트워크 비용을 고려한다면 네트워크 설계에서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진다. 대형화할수록 고비용을 요하는 환적물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반면, 소형선의 경우 직기항 항구의 증가에 따라 환적이나 지선 서비스비용은 절약될 수 있지만 단위원가가 높아지게 된다. 결국, 최적화방안의 도출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선박의 용선료나 유가의 동향도 네트워크 설계에 커다란 변수가 될 수 있다.

해운선사와 화주 간 상거래에서 가장 큰 관심은 가격(운임)과 질(운송서비스)이다. 그동안 화주들이 공급과잉인 선사의 약점을 최대한 활용해 운임 압박을 지속할 수 있었으나, 최근 3대 얼라이언스가 시장의 공급을 90% 이상 점유함에 따라 이제 운임 통제권은 화주에서 선사로 옮겨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선사들 간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운임주도는 경쟁법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선사와 화주 간 힘의 균형이 점진적으로 정상화되면서 조화를 이뤄 운임은 안정화(일정한 주기를 그리며 소폭의 등락현상)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운임시장이 안정화될 경우, 선사측에서 주력할 부문은 당연히 물류비용과 운송연계망의 개선을 통한 비용절감이며, 이는 네트워크 설계가 관건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얼라이언스의 입장에서 설계하는 네트워크는 모선의 회전율 제고, 이종의 운송모드 간 원활하고 신속한 연계 등 여러 가지 필수요소들이 반영돼야 하겠지만 다음의 원칙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첫째, 모선의 접안대기를 최소화하는 선석스케쥴(Berth Window)이 확보돼야 한다.

둘째, 모선이 기항하는 항구(Main Port)의 수를 최소화해야 한다.

셋째, Main Port와 최종목적지를 연결하는 지선망의 연계를 최적화해야 한다.

넷째, T/S물량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선적항과 양하항을 연결해야 한다.

다섯째, T/S가 불가피한 물량에 대해서는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처럼 네트워크 그 자체가 복잡하고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기 때문에 네트워크를 자주 변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변경 그 자체도 매우 어렵다. 특히, 네트워크 내에 대형 환적항만(T/S Hub)이 포함돼 있을 경우, 사소한 변경을 하더라도 결국 해당 항만과 연계되는 복수의 항로와 타 운송모드에도 큰 변화를 초래하기 마련이고, 원양항로의 주요항(Main Port)들을 연결하는 중추적 네트워크(Back-bone-Network)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만약, 사정변경이 있더라도 이미 갖춰진 중추적 네트워크는 그대로 유지한 채, 하부 네트워크의 신축적 운용을 통해 대처해야 한다.

우리 선사들이 다른 중요한 문제들에 얽혀 있겠지만 ‘한국 해운 재건’을 기치로 내걸었다면 이러한 중추적 네트워크 설계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참여 및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참여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네트워크는 과거 네트워크가 지극히 단순했던 시기에 고도로 숙련된 개인에 의해 수행돼 왔던 모델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제는 기술발전으로 분석도구를 개발 및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오는 2025년경에는 네트워크의 복합적 요소들을 반영한 실용적인 과학적 모델기법이 표준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앞으로 복잡 미묘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직관에 의존해 풀어나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이며, 세 가지 요소 즉, ▲투입선박의 운항 및 비용측면 ▲예정된 화물의 전량 운송능력 ▲잉여 공 컨테이너를 자체 네트워크 영역 안에서 재배치할 수 있는 능력 등을 감안해 네트워크를 최적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해운선사들은 이러한 네트워크 설계를 자신들의 운항이나 비즈니스 절차의 기본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결국 네트워크 자체가 기본 골격이며 변경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장의 끊임없는 변화와 네트워크 사이의 간극은 자연스럽게 절차관리상 유연성 혹은 운영의 신축성를 통해 해소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중추 네트워크도 무한정 불변상태일 수는 없으며, 시장의 변동에 따라 일정한 간격을 주고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행하고 그 결과를 통해 중추 네트워크를 변경해야 할 분기점(Trigger Point) 도달 여부를 식별할 필요가 있다. 해운사업에서 선박과 터미널 등 핵심 투자부문은 이미 결정됐거나 실행하고 있어, 2025년에 이르게 되면 핵심 고가자산인 선박과 터미널의 활용도에 더 큰 비중을 두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경우, 틈새시장에 취항하는 소형 해운선사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선사들도 이러한 추세에 유념해 네트워킹 및 그 운영과 관련된 전략적 대처방안을 마련 및 추진해야 할 것이다. 다소간 시급성이 떨어지는 지엽적인 분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해운물류 관련기관과 업계, 그리고 정부가 나서서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당장 급한 불을 끄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기본이 튼튼해져야 ‘한국 해운 재건’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공법(?)을 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