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치 넘나드는 노동강도…지뢰밭 같은 택배현장

[데일리로그 = 오병근 기자] 최근 몇 년간 택배현장에서 택배기사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4일 오전 6시께, 광주광역시에서 일하던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 정 모 씨가 집에서 잠을 자던 중 갑자기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린 택배노조측에 따르면, 고인은 최근 3개월간 한 달 평균 1만여 개가 넘는 물량을 배송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14시간 이상 일하면서 평균 400개 가량을 집배송 해야 가능합니다. 경이적인 수치라 할 수 있습니다. 하루 200~250개를 배송해도 녹초가 되는 현실 속에서, 최근 100일간 매일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물량을 배송한 것입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새벽배송을 하던 쿠팡 소속 배송기사가 업무 중 숨지는 등 매년 4~5명의 택배기사들이 숨을 거두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산업현장에서 이렇게 매년 숨지거나 다치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나 택배업체에서는 이를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유독 택배현장에서 이 같은 돌연사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필자는 지난 1997년부터 택배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때문에 우리나라 택배현장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택배현장은 IT시스템과 물류터미널, 각종 물류기기, 네트워크 등은 보다 빠르고 정확한 배송을 위해 눈부시게 변화해 왔습니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평균 2~3일씩 소요되던 배송시간은 이제 당일배송이 가능할 정도로 앞당겨졌습니다.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택배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택배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상당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듯합니다. 택배서비스에 대한 컴플레인(complain)이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느끼고 있는 현 시점에서 택배서비스는 그야말로 생활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몇 안 되는 서비스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택배서비스가 빠르게 진화하며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과정 속에서 간과해 온 것이 하나 있습니다. 택배현장 근로자들의 노동 강도입니다. 서비스 개선을 위해선 시스템적인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택배업체가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당연히 투자가 동반돼야 합니다. 각 택배업체는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고, 물류센터를 확대하고, 최신기기를 도입하기 위해 돈을 들이고 있습니다. 기업은 돈을 투자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이익을 가져오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저단가시장에서 이익을 많이 남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국내 대표적 저단가시장인 택배시장에서 택배회사는 지난 수년간 어떻게 해야 수익을 더 많이 창출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현실적으로 단가를 올리는 것은 쉽지 않으니,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하기로 했습니다. 택배업체는 배송기사들을 독려했고, 더 많이 배달하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가져갈 수 있다고 독려했습니다. 어떤 회사는 자사 택배근로자의 한 달 평균 수입이 500만원 가까이 된다면서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며 부추겼습니다. 근로자들을 최대한 많이 활용하는 ‘밀도 배송’은 이렇게 생겨났고, 현 택배시장을 주도하는 하나의 트랜드가 됐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밀도 배송은 필연적으로 과도한 노동력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15년 전 택배물량 1건 당 배송수수료는 평균 1,000원이었습니다. 10년 전에는 900원, 5년 전에는 800원, 현재는 700원입니다. 택배기사들의 수입은 배송물량 1건당 배송 및 집하수수료로 결정됩니다. 건당 수수료가 줄었다는 것은 수익저하로 이어져야 하지만, 택배기사들의 수익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이는 그만큼 더 많은 물량을 배송했다는 반증입니다. 택배업체는 이익을 위해 더 많은 물량 배송을 부추기고, 배송기사들도 조금만 더 배달하면 수익이 늘어나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욕심이 나는 것입니다.

필자는 과거 택배배송 현장체험을 서너 번 정도 했었습니다. 한 번은 서울 창신동 인근 지역에서 배송을 했는데, 거의 죽다 살아났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긴 것은 제가 그날 반나절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배송했던 물량의 개수는 30개도 채 안 됐다는 것입니다. 물론 초보인데다 배송지가 아파트단지가 아니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배송기사들이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버는지 새삼 절감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배송기사들은 평균 200~300개 정도 배송한다고 합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적어도 그 정도는 배송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자식들 학원도 하나쯤 보내고, 조금은 그럴듯한 미래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업계 일각에선 그럽니다. 그 어떤 스펙도 필요 없고 그냥 1t 화물차 한 대만 있으면 한 달에 400~500만 원씩 벌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직장이냐고. 수익에 대해선 택배업체와 노조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으니, 굳이 거론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확실한 한 가지는 이 과정에서 택배기사들의 피로도는 급격히 쌓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도 문제가 되고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것입니다. 피로도는 계속 쌓일 것이고, 택배기사 경력에 반비례해 체력도 조금씩 한계에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송기사 1인당 배송물량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사고가 발생할 확률도 그만큼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근 4~5년간 매년 택배기사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현장의 문제점을 너무나도 잘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배송기사들도 본인이 그렇게 황망하게 세상을 등질지는 상상조차 못 했을 것입니다.

예견된 사고를 막으려면 현 시점에서 책임이 있는 그 누군가가 나서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정부나 택배업계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찾을 수 없습니다. 매년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노동 강도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이 회사가 부추기고, 근로자가 욕심을 내면 사고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구나 하루에 일을 할 수 있는 임계치가 있는데, 작금의 택배시장은 이러한 임계치를 넘나드는 것 같아 우려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사례만 보면 현재까지 택배기사들의 사망사고는 CJ대한통운, 우체국, 쿠팡 등의 업체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해당 업체의 공통점은 근로자들의 노동강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이들 회사에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최고경영자가 적어도 딱 3일만 일선 택배기사와 똑같이 배송업무를 해 보라는 것입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잠깐이나마 그 사람의 입장이 돼 보는 것입니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봤으면 합니다. 책임 있는 누군가가 행동할 때, 택배현장도 조금씩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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