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지금까지 항만터미널 공급 과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터미널 개장을 늦춘 적이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올바른 판단을 한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최근 해수부가 부산신항 2-5단계 부두 개장 연기를 검토키로 한 것과 관련, 한 부산신항 터미널 운영사 대표가 한 말이다.

지난 12일 해수부는 부산 현지에서 터미널운영사 대표들과 관련회의를 열어 부산신항 서컨테이너 부두 개발의 시발점인 2-5단계 부두 개장 검토여부를 올해 안에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그동안 부산항 항만업계는 대외적인 무역환경과 코로나19발 세계 경기 위축 등의 상황으로 부산신항의 새로운 터미널 개장에 상당한 우려감을 드러내 왔다.

당초 정부가 부산신항 2-5단계 개장이 문제없다고 본 것은 '트리거룰'에 따른 물량 예측치가 개장예정 시기인 2023년에 부산신항이 연간 1,100만TEU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만업계는 부산신항의 터미널 수가 기항하는 글로벌 얼라이언스 수에 비해 많고, 하나의 터미널에서 하나의 얼라이언스를 처리할 수 있는 터미널 운영사는 PNC부두가 유일하다는 이유로 새 터미널 개장에 부정적이었다. 부산신항을 기항하는 글로벌 얼라이언스 수(3개)는 변하지 않는데, 터미널 운영사는 총 7개(2023년)나 되기 때문이다.

부산신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늘어나는 물량을 원활하게 소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라이언스를 나누지 않고 한 터미널에서 원활히 처리해 주는 것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나 부산항만공사(BPA)는 업계의 의견은 무시해 왔다. 기존 터미널의 대형화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책보다 신규 터미널을 개장해 늘어나는 물량을 터미널별로 알아서 처리하라는 입장을 견지해 온 것이다.

항만업계 관계자는 “개별 얼라이언스가 터미널을 나눠 계약을 하든 말든 부산항 전체 물량만 보고 새로운 터미널을 개장하겠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터미널 운영사들이 메인 얼라이언스를 잡으려고 과잉경쟁을 벌이는 것을 보지 않았느냐”고 반문하고는, “개별 터미널 사이즈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터미널 수만 늘리는 식으로 항만을 운영하면 그 때보다 더한 상황이 재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발 전세계 경제 봉쇄로 물동량 증가 예상치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자, 해수부가 터미널 개장 연기를 진지하게 검토한다고 하니 업계가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신항 관계자는 “인천신항은 운영사와 항만공사 문제로 개장을 연기하면서 오히려 기존 부두에서 순차적으로 물량 이전을 한 탓에 안정적이란 평가를 하는데, 정부가 자의적으로 개장 연기 카드를 빼든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며, “광양과 부산에서 신규 터미널을 개장할 때마다 숱한 우려에도 꿈쩍도 하지 않던 정부가 이제라도 업계의 고민을 덜어준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칭찬했다.

최근 십수년간 항만업계는 "터미널을 공급만하고 운영에 대해선 책임지지 않는다"며 정부를 비판해 왔다. 국내 대표 항만업체가 터미널 사업을 접고, 외국계 터미널 운영사들이 국가 시설을 좌지우지하고, 각 사간 끝없는 하역요율 경쟁을 벌일 때도 외면해 왔기 때문에, 이번 해수부의 결정이 업계로부터 환영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세계경기 위축과 무역트랜드 변화를 가늠하기도 전에 트럼프의 ‘경제번영네트워크(EPN)’라는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미국의 해외 진출 기업을 자국기업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리쇼어링(reshoring)에 이어 중국 고립 정책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탈 중국을 목표로 하는 강력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우리나라도 동참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중국 인접국인 우리나라가 동참을 하든 안하든 부산항의 물동량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재의 해운시장을 놓고, 전문가 및 업계 관계자들은 세계경제위기와 중국의 카보티지 해제 전망 외에, 또 다른 추측불가능한 대외 변수들도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이러한 시국에서는 정부도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이번 해수부의 결정은 충분히 환영받을만 하다.

저작권자 © 데일리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