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경제혈맥 ‘해운’, 결국 우리가 물건 실어줘야 산다

- 강대국은 국적선 적취율 적극 활용…국내선 98년 이후 사라져
- 한국은 무역국가, 강력한 해운산업 성장이 필수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을 먹자는 ‘신토불이’는 1990년대 초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이후 우리 농업을 살리기 위한 애국마케팅이자 자발적 물산장려운동이다. 당시 이 운동은 외국 농산물의 관세 인하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 국내 농가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국내 농가를 유지시켜 주는데 큰 힘이 됐다. 코로나19발 경제위기와 각종 무역전쟁 등 대내외적 불확실한 상황이 현실화 되면서 이러한 운동을 ‘해운산업’에도 적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가와 국가를 연결하고 우리나라 수출입물량의 97.7%를 책임지는 해운산업이 탄탄하지 못하면, 외국적 선사들에게 우리 경제를 의존해야만 하는 참담한 상황이 발생한다.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으로 주요 선진국들은 앞다퉈 문을 닫아 걸고 자국 해운산업이 쇠퇴하지 않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쓰러진 대한민국 해운을 재건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으로 ‘우리 화물은 우리 배로 실어 나르자’는 제안을 해 본다. <편집자 주>

- 中 개방했다 다시 빗장…日자국선우선제 시행

중국은 신중국 수립 시점인 1949년부터 WTO 가입 이전까지 자국선사의 자국화물 운송을 위한 국화국운(国货国运, 중국기업 물동량의 50%를 반드시 자국선으로 수송) 정책을 시행해 왔다. 하지만, 중국이 WTO 회원국으로 가입한 2001년 이후부터는 관련 정책은 시행되지 않았지만, 해당 정책은 중국의 해운산업 발전에 커다란 도움이 됐다.

이후, 2005년 중국은 수입 원유에 한해 중국선사가 수송하도록 하는 국유국운(國油國運) 정책을 실시했으며, 이에 따른 수입원유의 자국선사 수송 목표치를 2010년과 2015년까지 각각 50%, 80%로 설정하기도 했다.

이 시기 국유국운정책을 통해 중국선사의 수입원유 수송비중은 10%(2010년)에서 50~60% (2015년)로 상승했다. 이후 화물운송 지원제도의 일종인 화물유보제도를 현재의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복원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4년 발표된 ‘해운업의 건강한 발전 촉진을 위한 국무원의 의견’의 제3조 보장조치 제11항은 해운기업과 화주가 긴밀한 협력과 상호보완성을 강화하고 장기운송계약의 체결을 추진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또 중국 해운업계가 원유, 철광석, LNG, 석탄, 양곡 등 주요물자의 수송을 보장하는 능력을 강화하도록 권고하는 등 폐기됐던 정책들이 2000년대 들어 속속 재추진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년 동안 일본 해상화물 수출입량의 약 55%~65%를 국적선이 수송했고 수입화물 중 3대 화물인 전략화물과 철광석, 석탄은 국적선 수송비중이 90%, 원유는 80%에 각각 육박했다. 아울러 같은 시기 수출품의 자국선 적취률은 26~39%였으며, 반대로 수입품의 자국선 적취률은 65%~71%였다. 2012년 기준 일본 국적선의 적취율은 벌크선이 63%, 유조선이 78%였지만, 컨테이너선은 20% 수준에 그쳤다.

일본은 정부 및 관계기관과 연계된 화물이나 농산물, 원유 등 국민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전략물자가 외국적 선박보다 국적선박을 통한 운송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되면 국선사가 운송하도록 규제하는 암묵적 ‘자국선우선제(自国船優先制)’를 시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 2017년 7월 컨테이너 사업 부문을 통합한 일본 메이저 3대 선사(NYK, MOL, K-Line)를 대상으로도 국토교통성은 ‘산업 활력 재생 및 산업 활동 혁신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개정, 향후 국가전략화물(석탄, 원유, LNG, 대정부 자원 수출입 화물, 컨테이너 화물 등)의 운송권을 이들 3개사에 맡겼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빗장을 풀던 1990년대 이후 잠시 해운을 오픈시켰지만 2000년대에 들어 하나 둘 씩 다시 빗장을 채우기 시작하고 있다”며, “또 일본은 이미 암묵적인 정책 하에 자국 물량을 수송하는 보호를 받고 있는데, 양국 모두 타국 선사에 호락호락 화물을 내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운 포기한 美도 있는 '적취제', 우리나라는?

컨테이너 선사를 사실상 포기한 미국도 자국의 운송산업 육성을 위해 화주들이 특정화물(government-impelled cargoes)의 해상운송에 있어 미국적 선박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연방정부의 직접 참여나 간접적으로 연방프로그램의 재정후원을 받거나 연방정부의 보증과 관계된 화물들인데, 종류별로 50~100%에 달하는 수준이다.

특히 군수화물은 미국적선에 의해서만 100% 수송해야 하며, 국방성 컨테이너 화물의 경우 국방교통시스템(DTS)에서 군용지상배치 및 분배명령에 의해 미국선으로 운송된다. 한진해운의 경우 미국적선으로 등록한 선대를 통해 미국 전략화물을 수송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적취제도에 대해선 찬반 논란이 많으나, 트럼프 정부는 신해운정책 등을 통해 관련 법령을 정비하는 등 국적선을 통한 연료운송을 강화하기도 했다. 또 미 국적선의 LNG 운송 의무화를 하는 법안도 마련해 미국이 수출하는 LNG 연료는 최대 30%까지 미국적선으로 수송한다는 방침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몇 년 전 국내 가스공사가 발주한 미국 셰일가스 수송에도 ‘미국선박으로 등록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원래 미국을 기항하는 선박은 미국선급에 입급해야 하며, 여기에 더해 자국 화물을 가져가는 것도 선박의 국적은 미국으로 등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트럼프 정부는 침체돼 있는 미국 해운산업의 점진적 발전을 위해 미국 국적선박의 사용 의무화를 활용하고 있다. 이는 미국적 선원의 해기전승을 도모하고, 전쟁 등 비상사태 발생 시 국적선을 통해 원활한 물자수송을 도모하기 위해 적취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국가 외에도, 러시아는 야말 등 북극해항로의 탄화수소화물을 싣는 선박을 러시아국적으로 제한할 계획이고, 인도네시아는 원유와 팜유, 석탄운송에 대해 자국 선박을 사용토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62년부터 국적선 적취율 제고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 왔고, 특히 1967년 해운진흥법을 통해 한국 수출화물의 100%를 국적 컨테이너선이 실어나르도록 했다. 그렇지만, 1990년 이후 세계화 추세에 따라 해운산업의 개방정책을 시행하면서 1995년 1월 컨테이너 화물에 대한 국적선 적취는 전면 폐기되고 지정화물제도나 다른 화물들도 1998년을 마지막으로 모두 폐지됐다,

선주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 전략화물 총 수출입물량 중 국적선사 적취율은 원유 51.4%. LNG 52.5%, 철광석 66.2% 수준이었다. 주요 화주가 한전인 석탄만 93.5%에 달했다.

또 컨테이너 화물은 연근해의 경우 66.3%에 달하지만, 원양화물은 20.1% 수준에 그쳤다. 주요 국가들이 전략화물이나 기타 화물들에 대해 자국선사에 최우선적으로 짐을 실을 때, 우리나라는 오히려 외국적선사들이 더 많은 짐을 실어 날랐던 것이다.

- '우선 적취제' 도입 무산 후 '우수 선화주인증제'로 선회…효과는 글쎄

주요 국가들이 자국선의 우선 적취제도에 대해 재도입을 하거나 추진 중에 있다. 이에 국내에서도 2016년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국내 화물에 대한 국적선 적취 비율이 높지 않다는 사실이 공론화되면서 한국형 우선적취제도 도입을 추진했었다.

이 제도의 요지는 한국화물을 한국선사에게 싣자는 것이었는데, 정부는 선주협회와 함께 KMI 연구용역을 추진했지만 도입이 무산됐다.

해수부 관계자는 “타 국가들의 적취제도는 대량화물이나 전략화물이고, 국내에서 문제가 되는 컨테이너 화물에 대해서는 적취제도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며, “통상문제 때문에 여러 방안을 검토했지만 추진이 어려웠고, 대신 올해 하반기부터 '우수 선화주인증제'를 도입해 국내에 등록된 외항운송사업자를 지원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해수부에 따르면, 컨테이너화물 적취를 높이기 위한 우수 선화주인증제도는 해운법 제2조 10호에 따라 국제물류주선기업(포워더)에 대해 각종 혜택을 주자는 것이 골자이다. 외항 정기화물운송사업자에게 지출한 해상운송비용이 전체 해상운송비용의 40% 이상이고, 매년 지출비용 비율이 증가하면 우수 선화주사업자로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이 기업들에 대해서는 외항 정기화물운송사업자에게 지출한 운송비용의 1%를 법인세에서 공제하고, 전년도보다 증가한 운송비용의 3%를 추가로 공제해 준다.

해수부 관계자는 “주로 세제혜택을 담고 있으나, 하반기 시행 전까지 별도 혜택에 대해 현재 협의하고 있는 부분도 있으며, 해당 내용은 법안 시행 전에 공개할 방침이다”고 전했다.

정부의 이같은 우회 방침에 해운업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컨테이너 화물에 대한 적취율 제고가 핵심인 상황인데, 포워더들에 세제혜택을 주는 것만으로는 적취율을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A 컨테이너 선사 관계자는 “포워더들에 국한해 세제혜택을 주겠다고 하는 것은 국내 대표 2자물류기업들에 대한 지원책일텐데, 이들 기업은 이미 여러 방식으로 법인세 인하 혜택을 보고 있다”며, “우수 선화주인증을 받은 포워더들이 법인세 1%를 절감하는 것보다 외국선사에 싸게 짐을 싣는 것이 낫다면 결국 인증을 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해운업계)가 바라던 것은 이게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컨테이너 선사 관계자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컨’선사들은 강제성이 있는 좀 더 강력한 정책을 원했다. 시작은 거창하게 해놓고 시원찮은 제도 하나 만들고는 생색내는 모양새가 썩 좋지는 않다”며, “국내에서 짓는 선박에 공동 투자를 하게 하던지, 화주들이 이용하는 해외 항만터미널이나 물류시설에 공동투자를 하는 방안도 있다. 또 선사들이 낮은 운임을 제시하는 대신, 당초 제시한 물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페널티를 내게 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정부가 너무 노력을 안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 국적선 적취 강화해야…화주 지키는 것은 결국 해운

선사들이 국적선 적취를 강조하는 이유는 자사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함도 있지만, 단순히 '해운'이라는 하나의 산업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해운을 통해 조선산업 등 연관 산업의 매출 증대와 고용시장도 활발해 지는 등 국내 경제에 여러모로 활기를 불어 넣어주는 부대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단순히 개별 선사에 이익을 넘어서 유사시 제4군의 역할을 하는 등 공익적인 부분도 커 국가 기간산업으로서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선주협회가 지난해 10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원양 컨테이너 국적선 적취율 70%, 전략화물 국적선 적취율 100%를 달성할 경우 총 181척의 추가 신조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컨테이너선과 전략화물 수송선의 경우, 추가 필요 선박은 각각 38척과 141척에 이르며, 해당 선박의 신조 소요 비용도 각각 60억 달러, 151억 달러로 추정됐다. 고용창출 효과도 국내 조선소에 발주할 경우, 해운은 총 5,036명이지만 조선산업의 경우 19만9,248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를 통한 연관산업의 매출증대효과 역시 총 46조2,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운 전문가는 “국내 화주들이 국적선사에게 짐을 실어만 줘도 수십조 원에 달하는 매출증대 효과와 수십만 명의 고용창출을 노릴 수 있다”며, “국적선사의 적취율 제고 문제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운업계는 정부가 추진했던 한국형화물의 적취율제고에 대한 제도 도입이 무산됐다고 하더라도 선사들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새로운 방안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또 선사들 스스로도 말로만 애국을 외치지 말고 다양한 사회공헌활동과 대국민 인식 전환을 위한 여러 노력을 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원양 컨테이너선사 관계자는 “벌크화물에 대해서는 화주가 공기업이거나 이미 기존 선사와 교감이 큰 상황이어서 '선박 공동투자' 효과가 미미하겠지만, 컨테이너 선사에게는 얘기가 다르다”며, “'컨'선사가 국내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면 창출하는 고용효과나 부대 이익이 결국 국가의 이익으로 다시 되돌아 오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이어 “해운업계도 본인들은 가만히 있고 정부 정책에만 의존하는데, 선사들이 공동으로 한국선사에 대한 인식이 전환될 수 있도록 사회공헌활동이나 대국민 이벤트도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정책으로 커버될 수 없는 부분은 결국 애국마케팅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인데, 선사들 스스로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는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인현 고려대 교수는 “전세계 물동량이 줄어들고 과거와 달리 전 산업분야가 자국 우선주의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우리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데, 화물 운송도 마찬가지로 국적선사를 많이 이용해 줘야 한다”며, “결국 국내 화주를 지켜주는 것도, 국내 무역을 지지해주는 것도 해운이 동반할 때이다. 선사들이 튼튼해야 운임이 적정한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