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오병근 편집국장] 오늘(14일)은 ‘택배없는 날’이다. CJ대한통운을 비롯한 4사와 우체국택배 등 5개사에서 근무하는 택배종사자(우체국택배 정규직 제외)만 근무를 하지 않는다. 이들 5개 택배사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70%를 넘어 서니 ‘택배없는 날’이라고 해서 모든 물량이 배송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택배종사자들은 토, 일요일과 묶어 3일간 휴가를 갈 수 있게 돼 오랜만에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하루 14시간씩 고된 노동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오늘 하루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을 것이다.

처음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는 것은 좋지만 택배종사자들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휴가를 보내고 난 이후가 걱정이기 때문이다. 3일간 휴식을 취했던 택배종사자들은 당장 17일(월)부터 산더미 같이 쌓인 택배물품을 배송해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물량이 폭증하는 명절 성수기와 유사한 양의 물품을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배송기사들은 하루를 쉰 대가로 코로나19에 마스크를 쓰고, 찌는 듯 한 폭염이 기승을 부릴 한 여름에 하루 300~400개에 달하는 물량을 배송해야 한다.

대통령이 ‘택배없는 날’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자, 지난 13일 고용노동부와 택배업계가 ‘택배종자들의 휴식 보장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노동부와 택배업계는 ▲매년 8월 14일을 ‘택배 쉬는 날’로 지정 ▲심야시간 배송 자제키로 노력 ▲질병 및 경조사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 쉴 수 있도록 적극 지원 ▲안전하고 효율적인 작업환경 구축을 위해 노력 등을 담은 공동노력사항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반겨야 할 택배종사자들은 오히려 반발하고 있다. 강제조항이 전혀 없는 허울만 있는, 말 그대로 ‘노력사항’이라는 이유에서다. 사실 노조의 이 같은 반발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노동부가 발표한 내용 중 ‘매년 8월14일 택배 쉬는 날 제정’을 제외하면 모든 합의사항은 ‘노력한다’로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이러한 내용이 앞으로 현장에서 적용될지는 의문이다.

노동부가 택배종사자들의 건강이 걱정된다면 알맹이 없는 이러한 내용을 내놓아선 안 된다. 이는 어떤 것이 문제의 원인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졸속 행정이라 할 수 있다. ‘택배없는 날’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니 주무부처로서 그냥 ‘더불어 묻어가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올해에만 택배종사자 12명이 과로사로 숨졌다고 한다. 택배시장이 시도 때도 없이 사람이 죽어나가는 ‘헬(Hell) 산업'이 된 것이다. 시장이 이렇게 변질된 것은 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택배업계의 부추김과 택배근로자들의 욕심, 여기에 정부의 방관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매년 과로에 따른 사망자는 증가하지만, 대책은 엉뚱하다. 상식적으로 과로사를 줄이려면 일감을 줄이고, 충분한 휴식을 제공하면 된다. 이 간단한 방식이 택배시장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일감을 줄이면 택배종사자의 수입이 줄고, 휴식을 보장하면 택배업체의 수익성이 낮아진다. 이렇듯 서로 상충하는 문제가 택배시장에 공존한다.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택배종사자들에게 물량을 적게 배송하게 하고, 배송물품당 수수료를 더 많이 주면 된다. 그런데, 이 경우 택배업체는 수익률이 저하돼 버틸 수가 없다. 문제해결의 기점은 바로 이 부문인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택배종사자와 업체가 다 같이 웃으려면 단가를 인상하는 수밖에 없는데, 화주사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때문에 현재로선 그들끼리(택배사·노동자) 해결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금과 같이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은 13일 공동선언식에 참석해 "택배사들이 공동의 노력사항을 마련해 택배 종사자들의 ‘휴식이 있는 삶’을 위한 첫걸음을 마련해준 것에 매우 감사하다"고 했다.

근원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휴식이 있는 삶’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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