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오병근 편집국장] 올 들어 벌써 12명의 택배기사가 숨을 거뒀다. 지난 20일 택배대리점의 갑질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거둔 김 모 씨를 제외하면, 11명 모두 과로사가 의심되는 상황이다.

사실 택배현장에서의 과로사가 올해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물량이 폭증하기 시작한 2, 3년 전부터 7~8명 씩 꾸준히 택배기사가 사망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 정부와 택배업계는 사실상 이에 대한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

본지는 이미 수년 전부터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가능성을 우려해 왔다. 전체 택배시장의 50% 가까이 물량을 처리하고 있는 CJ대한통운의 경우, 하루에 택배기사가 1인당 300~400개에 달하는 물량을 배달하고 있다. 택배 배송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하루 200개 넘는 물량을 배달하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회사 택배기사들은 이보다 1.5~2배에 달하는 물량을 매일 처리해 온 것이다. 전체 택배기사 과로사의 절반 이상이 CJ대한통운 소속 택배기사들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과도한 업무량은 필연적으로 사람의 체력을 지치게 만든다. 고된 노동이 쌓이기 때문에 해가 갈수록 과로사의 가능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며 달려들었던 택배현장이, 어느새 ‘혹시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 하는 공포의 산업현장으로 바뀌고 있다.

택배기사들의 죽음은 해를 더할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따른 대책은 전무하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택배노조측에 따르면, 대다수 택배기사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쉼 없이 일을 하고 있다. 전국에서 처리한 택배물량은 2014년 16억 박스에서 지난해 28억 박스를 넘어섰다. 5년 만에 12억 박스나 증가한 것이다. 택배기사들의 수는 2014년 4만9,000명에서 2019년 5만 명으로 약 1,000명 가량 소폭 늘었다. 물건을 배달할 사람은 늘지 않았는데, 물건은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택배기사들의 1인당 처리량이 급격히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 택배기사들은 산재보험을 거의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특수고용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의무가입이 적용되지만, 실제 현장에서 는 멀게만 느껴진다. 택배업계는 택배기사가 직접 고용하는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리점에 넘기고, 대리점은 택배기사들에게 산재보험을 들어줄 정도로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가 공식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택배기사 5만 명 중 15% 인 7,500명 가량만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다.

택배기사들의 과로사는 이미 수년 전부터 예견돼 왔다. 하지만, 택배업계의 시각은 바뀌지 않았다. 최근 3년간 과로사의 절반이 넘는 택배기사가 소속된 CJ대한통운은 사과는 커녕, 수년째 택배노조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제대로 된 대책 또한 내놓은 바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자사의 로고가 인쇄된 유니폼을 입고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들이 수년에 걸쳐 연이어 사망하고 있는데, 단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는 기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참담한 심정이다.

그나마 한진은 지난 20일 자사 택배기사의 죽음에 곧바로 사과문을 발표하고 후속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어떤 사안이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보다 앞설 수 있겠는가.

기업이 스스로 정화할 수 없다면 정부가 나서야 하지만, 그들 스스로도 민망할 것이다. 정부도 잘 한 것 하나 없기 때문이다. 정부나 해외 고위인사들이 택배현장을 방문한다하면 어김없이 CJ대한통운 사업장을 찾았다. 이는 이 회사 택배기사들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행위와 다름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장 많은 사망사고가 난 회사가 단 한 번의 사과도 없이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티는 것이 아닌가.

작금의 택배시장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택배기사들의 피로도는 쌓이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생명은 더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자, 이제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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