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근해 ‘컨’선사 구조조정, 정책 연속성 우선 돼야

·‘해운산업합리화’ VS ‘해운재건’, 어떻게 달랐나

·차별성 없는 구조조정에 정책 동참만 강요하는 정부

·선사들 불신 팽배…정부 신뢰회복 급선무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컨테이너 선사들의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적은 크게 두 번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1980년대 ‘해운산업 합리화’이고, 두 번째는 한진해운 파산 이후 2018년 발표한 ‘해운산업 재건’이다. 해운산업 합리화 당시에는 항로별로 정기선사들을 묶어 통폐합을 진행했다면, 해운재건에는 원양선사와 근해선사를 구분해 지원방안을 마련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과거 해운산업 합리화에 대한 시사점이 있다면, 정부의 반강제적 구조조정을 거쳐 해운산업 개방화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국가별 장벽이 허물어지는 1990년대에 구조조정이후 경쟁력을 갖춘 선사들이 정글같은 ‘완전경쟁’ 시장에 내놓이면서도 무너지지 않은 기틀을 마련해줬다고 볼 수 있다. 40여년만에 정부가 다시 칼날을 빼든 구조조정은 그 후 근해선사들의 앞날을 예감할 수 있다. 앞으로 완전개방될 한중항로와 근해선사들의 수익창출 요인으로 알려진 한일항로의 풀링제 존폐위기, 외국계 선사들의 동남아항로 선박 투입 등 근해선사들이 더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국내 대표적 해운전문가로 알려진 한종길 성결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한진해운 파산을 겪으면서 컨테이너선사의 파산은 국가의 대외신인도로 연결된다는 점을 뼈아프게 깨달았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국내 선사 중 누군가는 또 파산의 길을 걷게 될텐데, 이때를 대비하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해운산업 합리화정책과 현재의 해운재건 정책을 비교해 보고, 근해선사들의 구조조정 방안을 모색해본다.<편집자 주>

-‘해운산업 합리화’, 항로별 선사 통폐합이 주목적

해운산업 합리화는 1979년 제2차 오일쇼크발 세계경제 침체와 조선기술 발달에 따른 선박 대형화로 선복량 과잉이 초래되면서 국적선사들에 심각한 경영압박으로 가해지자, 1983년 10월부터 1989년 2월까지 약 6년에 걸쳐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국토해양부 해운정책관을 지낸 박종록 한국해대 초빙교수가 쓴 ‘한국해운과 해운정책’에는 정책이 종결된 1989년 말 기준 항로별 통폐합에는 전체 112개 선사가 참여했다. 이중 22개사(계열사 9개사)와 항로별로 원양선사는 46개에서 6개사로, 동남아항로 12개사에서 4개사로, 한일항로는 51개사에서 11개사로 각각 정리됐다.

당시 정부는 구역별로 항로를 운항할 수 있도록 선사에게 항권을 부여한데다, 일부 선사들은 벌크와 컨테이너를 같이 실을 수 있는 세미컨테이너선을 운항하고 있어 화물유형에 따른 구분보다 항로별 기준으로 통폐합을 단행했다.

박종록 교수는 “원양은 통폐합 결과 고려해운의 원양노선을 인수한 현대상선(현 HMM)과 외국선사와 합작법인으로 통폐합에 불참한 한진해운, 조양상선 등 3개 선사만 남았고, 현재는 없어진 동남아해운과 항로별로 항권을 보유하는 방식이라 조양근해상선이라는 별도의 회사가 존재하기도 했다”며, “한일항로 통폐합 선사 대부분은 컨테이너 항로를 운항하던 선사이기 때문에 천경해운이나, 태영상선, 동진상선 등은 현재까지 꾸준히 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4년 열린 해운산업 합리화 보완대책 회의.
1984년 열린 해운산업 합리화 보완대책 회의.

주목할 점은 한일항로 선사들인데, 당초 정부는 정책 초기 한일항로 선사를 모두 통폐합해 재래선(벌크) 1개사, 컨테이너선 1개사로 남길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책결정 이듬해인 1984년 말 산업정책심의회에서 ‘한일간 운임협정제도를 인정해 과당경쟁 배제가 가능하므로 한일항로의 컨테이너선사들은 모두 남긴다’고 결정했다. 이 한일간 운임협정제도는 지금까지도 유지돼 오고 있으며, 당시 7~8개 선사 중 부산상선 1곳만 1990년대 도산했을 뿐 모든 선사들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살아남은 이들 선사는 금융과 세제, 신규선박 확보 등의 정책지원과 세계해운경기 회복세로 1988년 35개 국적선사 중 34개가 흑자를 시현했고, 정부는 1989년 2월 정책 종결을 결정했다.

선주협회는 ‘한국선주협회 50년사’를 통해 해운산업 합리화가 종결된 1989년을 “외항해운업계가 해운시황의 회복추세와 함께 경영안정을 되찾아가는 가운데, 밖으로부터 거센 외풍을 이겨내고 변화를 수용하면서 한국해운의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해야만 했던 전환기였다”고 평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고려해운이 미주항로를 현대상선에 넘긴 것은 신의 한수였다는 평과 팬오션이 당시 삼미를 인수하면서 지금까지 컨테이너사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특징이다”며, “당시에는 칼을 든 정부를 원망했지만, 정책 이후 선사들이 구조조정 정책으로 경영위기 극복 및 해운시장의 완전 자율·개방을 대비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것은 긍정적이다”고 전했다.

-‘해운재건’, 항로 구조조정 및 단계별 통합 유도

2018년 해운재건 5개년 계획 대부분은 원양 컨테이너선사 위주로 지원이 집중됐지만, 지난 8월 해운재건 중간점검을 통해 해운재건을 보완하고 올해부터 2025년까지 5개년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근해선사들의 구조조정 방안도 일부 담겼다.

흥아해운과 장금상선의 통합출범식.
흥아해운과 장금상선의 통합출범식.

문성혁 해수부장관은 해운재건을 중간점검하면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전반기는 한진해운 파산 이전의 해운산업 위상을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면, 후반기에는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전반기 해운재건에는 민간주도의 자발적인 구조조정 협의체인 한국해운연합(KSP) 출범과 흥아해운과 장금상선의 통합작업에 주력했으며, 후반기에는 ‘동남아항로 경쟁력 강화방안’이 신규로 편입됐다.

먼저 KSP는 3차례 항로 구조조정으로 운임덤핑식 출혈경쟁이 아닌 항로다변화를 하면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의 노선에서 일부 선사들이 철수했다. 또 흥아해운의 컨테이너 부문과 장금상선이 통합해 흥아라인을 출범시키는 등의 정책적 성과가 있었다.

후반기에 새로 도입된 ‘동남아항로 경쟁력 강화방안’에는 국적선사간 4가지 협력방안을 제시해 단계별로 선사들이 희망하는 방안을 도출해 구조조정을 이끈다는 방침이다.

해수부에 따르면, 글로벌 선사와 대등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국적선사간 협력방안을 제시해 선사들의 자율적 참여를 유도하고 지원하며, 협력모델은 ▲K얼라이언스 구성 ▲공동운항법인 설립 ▲전문영업법인 설립 ▲자율적 인수·합병 등이다.

세부적으로 1단계인 K얼라이언스는 선박 공동운항과 선복교환까지 협력하며, 공동운항법인은 공동 선대운용, 선사별 독립된 영업까지 가능하다. 전문영업법인은 선사별 선박을 출자받고, 영업을 전담하는 전문운영법인을 설립하는 것이며, 자율적 인수합병은 흥아, 장금과 같은 기업간 M&A를 통해 완전 통합법인을 설립하는 것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선사들의 자율적 의사를 존중할 것이며, 현재 초기단계라 최근 관련 회의를 개최해 의견을 청취했는데, 선사들이 협력 범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며, “강력한 통합형식인 통합법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통합 중 양사 공동 출자로 인천신항의 한진과 선광처럼 영업부문을 통합해 전문 운영법인을 만드는 성공적인 모델도 있다”고 설명했다.

해수부는 해당 구조조정에 참여하는 선사에 단기 소요자금과 경쟁력있는 선대 확충, 컨테이너 박스 등 필수 영업자산을 확보할 수 있게 지원함과 동시에 국적선사간 과잉경쟁을 해소하고 규모화된 선대 확충 및 수익률 개선을 이끌어 낼 방침이다.

-원칙없는 구조조정으로 선사들만 혼란 자초

현재 진행 중인 해운재건은 과거 해운산업 합리화와 유사하면서도 중요한 몇가지 원칙이 빠졌다는 지적이다. 구조조정에 동참한 선사와 불참한 선사에 대한 차별화와 중장기적인 정책방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민간주도 구조조정 협의체인 한국해운연합 (KSP)출범식.
민간주도 구조조정 협의체인 한국해운연합 (KSP)출범식.

한 해운 전문가는 “해운재건 정책 5개년 중 절반이 지나면서 HMM의 흑자달성을 계기로 정책 중간점검을 통해 근해선사들의 구조조정 방안을 새롭게 마련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면서도, “그렇지만 정책 동참 선사에 대한 차별성과 장기적인 정책방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조조정과 같이 칼을 든 정책을 추진하면 시장에서 불만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고, 정부의 시장개입을 장기간 용인하지 않는다”며,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어떻게 할 것이며, 시황회복과 구조조정이 완료됐을 때 정부가 이쯤에서 민간에 넘긴다는 출구전략이 동시에 모색돼야 하는데, 전후반기 해운재건 모두 구조조정 방법만 제시해 놓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KSP 구조조정을 통해 항로를 자진 철수한 선사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했고, 흥아와 장금 통합 이후 새로운 통합선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KSP 항로 구조조정은 철수한 항로들이 지난해 말부터 다른 선사들에 의해 항로가 개설이 된데다, 3년 기한인 KSP MOU 기한 종결 직전인 지난 7월 참여선사들이 “그날 연장을 한 것이었냐”고 반문할 정도로 날치기 연장에 ‘무용지물’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 회의에 참여한 A선사 관계자는 “항로 철수에 대한 정부의 당초 지원 약속이 흐지부지됐고, 항로를 철수한 선사들이 아닌 다른 선사들이 철수한 항로에 신규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한바탕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며, “해운재건에 들어간 정책이 초창기에는 ‘민간 자발적 구조조정’이라며 정부 스스로 자평하더니, 정작 항로 개설문제로 다툼이 일어나자 정부가 나몰라라 했다”고 토로했다.

흥아 장금 통합과 같은 근해선사의 통합모델 2호가 지금까지 출범하지 못한 것도 정부의 약한 뒷심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해수부는 지난 8월 해운재건 중간발표에서 “흥아 장금이 통합해 세계 20위권 연근해 컨테이너선사로 도약했으며, 매출 12.9% 증가와 영업이익의 흑자전환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해운재검 중감점검 결과를 발표하는 해수부장관.
해운재검 중감점검 결과를 발표하는 해수부장관.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자평과 달리 적자기업인 흥아해운을 장금상선이 떠안아 주는 흡수통합 방식이 되면서 장부상 수치에 불과한 흑자전환에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전언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염원하던 컨테이너 선사가 줄었다는 점에선 의미가 큰데, 장기간 적자기업을 건전한 업체에서 떠안고 흑자전환 수치를 만들었으니 할 일을 다했다는 안일한 태도가 문제”라며, “정부가 제시한 방법에 동참해 준 기업에 대해 ‘그 다음’은 없고, 동참하지 않은 선사들에 대한 불이익도 없으니, 어느 선사가 통합에 참여하겠느냐”고 비판했다

-강력한 지원책과 정부 정책 지속성에 대한 신뢰주어야

정부가 해운산업 합리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해운집약정책’은 일본 정부가 구조조정을 주도하면서 구조조정 동참선사와 그렇지 않은 선사에 대한 확실한 구분이 있었다.

당시 일본은 12개 선사를 6개로 합병하면서 그룹사에 화물을 줄 무역회사, 배를 발주할 조선소, 선박 지을 돈을 빌려 줄 금융회사를 연결하는 탄탄한 고리를 만들어줬고, 이는 정부정책에 불참했던 산코기센이 정부의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한 채 파산한 2010년대까지도 이어졌다.

해운전문가들은 ‘해운재건정책’에 있어서도 정부가 장기플랜을 마련하면서 정책 동참선사에 대한 차별성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일본 해운 전문가로도 알려진 한종길 성결대 교수는 “정부가 해운전문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들고 장기적인 해운산업을 위한 플랜을 마련하면서, 정책 동참 선사와 그렇지 않은 선사에 대해 구분된 확실한 지원정책이 있어야 한다”며, “구조조정 정책에 불참한 선사는 산코기센 사례와 같이 정부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일각에서 시장에 도태되도록 그냥 두지 왜 정부가 도움을 주냐는 의견이 있는데, 이는 시장에 정부가 필요없다는 논리와 같다”며, “정부는 선사가 파산했을 때의 문제, 살렸을 때의 편익을 따져 정책을 결정하고 정부 도움이 필요없는 선사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배제한 채 정책을 추진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가 해운업계에 정책의 연속성과 꾸준함에 대한 신뢰를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해운업계 한 전문가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모든 정책이 정책의 연속성과 꾸준함이 동반돼야만 업계가 정부를 신뢰하고 정책에 동참할 수 있다”면서, “KSP가 3년 갓 넘은 시점에 무용지물이라는 비난에 직면하고, 흥아 장금을 이은 2호 통합선사가 나오지 않은 것도 업계가 해수부 정책에 대한 연속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수부에 대한 신뢰성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리 똑똑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해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것”이라며, “정책이 단발적이지 않고, 담당자가 바뀌어도 해당 정책은 꾸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등 정부에 대한 업계의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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