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오병근 편집국장] 우리 국민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배달서비스를 자랑하는 ‘배달천국’에 산다.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이면 현관문 앞에 물품이 놓여있다. 외국인들은 혀를 내두른다. 어떻게 이런 서비스가 가능한지 기가 막힐 지경이라고 한다. 이렇듯 신박한 서비스는 대한민국이기에 가능하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너무나도 편리한 이 택배서비스의 이면이 어둡게 물들고 있다. 소비자들은 택배를 받고 기쁨을 누리지만, 물건을 배송하는 택배기사들은 과로사에 떨고 있다.

올해에만 10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추정)로 사망하자, 정부는 12일 ‘택배기사 과로 방지대책’을 통해 ▲1일 최대 작업시간 규제 ▲밤 10시 이후 심야배송 금지 ▲주5일 근무제 도입 ▲분류작업 개선 등을 내놓았다.

늦었지만, 정부가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했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그렇지만, 일부 대책에 대해선 택배현장에서 유의미한 정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주5일제 근무가 대표적이다. 택배업계는 전통적으로 주말이후 월요일과 화요일에 물량이 집중된다. 일요일 하루만 쉬는데,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토요일까지 쉬면 월, 화 뿐만 아니라 수, 목요일까지도 밀린 물량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결국, 택배기사가 배달할 물량은 줄어들지 않지만, 물건을 주문한 소비자만 늦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책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갔다는 점에서 상당한 아쉬움이 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해결책인 ‘택배단가’, 즉 택배가격 구조개선 문제에 대해 정부가 이렇다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이날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택배기사의 처우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택배가격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정했지만, “사회적 논의에 착수해 내년에 가격구조 개선방안 등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미뤘다.

정부가 사실상 택배노조의 요구 대다수를 들어 줬지만, 정작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택배단가 인상’에 대해선 거리를 둔 것이다.

정부는 택배단가를 조정하기 위해 내년에 사회적 논의를 거치겠다고 했지만, 가능할지 의문이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더라도 TV홈쇼핑·이커머스기업 등과 같은 대형 화주가 단가를 올려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택배업계의 가장 큰 고객인 유통업계도 적자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택배업계에 줘야 할 택배비를 어떻게 해서든 더 깎아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택배비를 강제로 조정해 높여 놓으면, 도미노식으로 유통업계에서 판매하는 모든 물품의 인상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으면 유통업계의 적자폭은 더욱 커진다. 때문에 이 문제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택배업계는 한 숨만 내쉬고 있다. 실질적으로 현 시점에서 택배업계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택배단가를 인상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화주가 ‘갑’인 현실적 상황에서 단가를 올리기 위해 수년간 몸부림도 쳐 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정부가 나섰지만,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코너에 몰린 택배사들이 그다지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는 사실도 문제해결을 어렵게 한다. 택배사업으로만 한정하면 각 택배사의 영업이익율은 2~3%이다. 매출액이 1조 원이라면 영업이익이 200~300억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택배기사들에게 배송수수료를 박스당 50원만 올려주면 바로 적자로 돌아선다는 결론이 나온다. 시장구조의 변화와 코로나19의 반사이익으로 택배산업이 최고조의 활황세를 타고 있는 현 시점에도 택배업계의 현실은 이렇다. 택배업계가 돈을 엄청나게 벌어 곳간이 넘쳐나는데도 택배기사들의 노동력만을 쥐어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택배업계는 ‘풍요속의 빈곤’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다. 택배기업만 탓해선 안된다. 과로사 걱정없이 택배기업과 택배기사, 모두 살려면 현 시점에서 박스당 평균단가를 최소 100~200원은 인상해야 한다. 현재 2,100원 대인 평균단가가 2,200원대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택배사 대다수는 B2B(기업택배) 매출이 80~90%에 달한다. 때문에 개인택배요금 인상은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택배단가 인상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유통업계는 사실상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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