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우리 정부가 내놓은 항만정책이 혼란을 빚자, 싱가포르 기업이 이를 깔끔하게 정리한 형국이다. 외국에 있는 항만운영사와 선사들이 우리나라 정부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참담한 심정이다.“

논란이 지속돼 온 부산신항 부두 통합정책 1단계 사업이 결국 싱가포르기업인 PSA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자, 항만업계 한 관계자의 한숨섞인 말이다.

최근 PSA가 디얼라이언스와의 협상이 결렬됐음을 공식화하면서 해수부와 부산항만공사(BPA)가 추진해 왔던 부산신항 1단계 부두 통합은 자동 종료됐다. 신항을 기항하는 각 얼라이언스들이 기존 터미널운영사들과 갱신계약 협상을 시작하면서, 정부의 정책 추진의지와는 상관없이 사실상 통합작업이 물건너 간 것이다. 

이번 부두통합정책은 '터미널 대형화'라는 명분에 함몰돼 운영사와 선사, 항운노조 등 당사자들의 의견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관련업계 는 통합안이 원안대로 추진됐다면 국내 유일 국적 터미널운영사인 한진이 경영위기에 처하고, 다목적부두에 근무하는 70여 명의 항운노조는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 높았을 것으로 지적한다. 또 어렵게 마련한 근해선사들의 거점도 사라질 우려가 있었다.

좀 이상한 것은 이번 정책을 추진하면서 여러 비난 여론이 제기되자, 이에 귀를 기울인 것은 정책을 추진한 해수부나 BPA도 아니었다. 기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두 기관은 한진측이 요청한 '2년 후 통합'은 묵살됐으며, 다목적 부두 연장을 이유로 1년 후 통합을 사실상 확정했었다. 관련업계 및 대다수 여론이 정책 추진에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지만, 두 기관 관계자들은 귀를 닫았다.

이렇게 논란이 많은 정책이 추진되기 직전, 이를 막아선 것은 외국계 운영사였다. 국내 비판여론에 부담을 느낀 PSA는 지난 주말께 1, 4부두 사이에 위치한 다목적부두의 장치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항만당국에 공식 통보하고, 부두통합을 전제로 터미널 기항 계약을 논의했던 디얼라이언스와의 협상도 종료시켰다. PSA의 이러한 결정으로 부산신항에서의 얼라이언스와 터미널운영사 간 계약은 기존 계약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했으며, 항만당국이 추진해 온 부두통합계획은 자연스럽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PSA로부터 정리된(?) 부산신항 부두통합정책은 이제 또다른 외국계 운영사인 PNC의 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현재 PNC는 디 얼라이언스와 5+5년 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이 계약이 체결되면 최장 10년까지 정부의 부두통합정책은 빛을 보기 어렵다.

국내 최대 관문인 부산항에서 한 편의 블랙코미디가 벌어진 것이다. 현 상황을 정리하자면, 항만당국이 관련정책을 추진하며 어깨에 힘을 주며 으스댔지만, 결국 결정권은 외국계기업들이 쥐고 있었던 것이다. 

항만업계 관계자는 ”만약 5+5 계약이 성사되면 사실상 향후 10년동안은 통합을 할수 없다. 10년 후면 진해신항이 개장하는데, 그때 가서 신항 통합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는, “정부가 부두 통합을 추진하고 싶다면 이제는 PNC로 쫒아가 단기계약을 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판이다”고 비꼬았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PSA측은 1, 4부두 통합으로 경영상태가 악화된 한진이 3부두를 매각할 경우 쏟아질 비난의 화살들을 우려했다고 한다. 때문에 굳이 무리수를 써가면서까지 항만당국의 통합정책에 참여하고픈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항만당국은 외면한 비판여론을 PSA가 염두에 두고 고민했던 것이다. 

신항 통합정책의 핵심은 얼라이언스와 선박 대형화에 따른 터미널 대형화였다. 얼라이언스 규모가 커졌는데, 얼라이언스 하나를 통째로 받을 수 있는 터미널이 부산신항에선 PNC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책의 취지는 관련업계로부터 공감을 샀다. 문제는 추진과정이다. 가장 중요한 당사자들이 철저히 외면당한 것이다. 항운노조, 근해선사, 한진 등 이번 통합정책과 관련된 관계자들은 모두 "사전 조율이 없었던 정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어떠한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당사자들’은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한다. 하지만, 정책 추진 과정에서 항만당국이 이러한 고민을 했는지 의문이다. 심지어 대다수 관계자들이 반발을 하고 있음에도 귀를 닫고 밀어부쳤다.

이번에 논란이 일자 정책을 결정하는 해수부와 이를 실행에 옮기는 BPA는 서로 책임을 미루며 남탓만 했다. 관련업계는 두 기관 간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한다.

전 해수부 관계자는 “정책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면서, “대의와 취지만 생각하고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쳤다. 현장의 의견을 뒷받침 해 주는 것이 BPA의 역할인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파악을 못했는지, 알면서도 상급기관인 해수부에 조언을 하지 않은 것인지 두 기관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관련업계에는 "PSA가 BPA를 위탁경영 해야 한다. PSA가 경영하면 최소한 이러한 말도 안되는 정책이 나오진 않을 것"이란 자조섞인 말이 나오고 있다. 

정말 창피하고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번 논란만 놓고 보면 외국계기업들이 대한민국 항만정책을 좌지우지 한 것이다.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글로벌'하게 망신을 당한 항만당국은 이제 무어라 할 것인가. 누굴 위한 해수부이며, BPA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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