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포스트 코로나’, 전문경영인 체제 강화하는 글로벌 선사

HMM의 로테르담 터미널.
HMM의 로테르담 터미널.

글로벌 1, 2위 선사인 머스크와 MSC는 ‘해운=오너십’이라는 전통 경영방식에서 탈피,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화하고 있다. 머스크는 이미 1990년대부터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나아가 각 사업 부문별 CEO를 두는 등 철저한 전문가 체제로 전환했다. 또 오너십을 고집하던 MSC마저도 회사 창립이래 처음으로 머스크 출신 CEO를 선임하는 등 전통을 버리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과거와 달리 해운사업부문이 방대해졌고, 해운업의 새로운 화두로 친환경이나 디지털, 물류 등으로 다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국내 최대 국적선사인 HMM도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발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해운 전문가는 “국내 산업의 특수성에 따라 해운산업은 자본력이 풍부한 메이저 그룹의 울타리에서 해운 특수성을 인정해 독자적인 경영을 하던 시기가 황금기로 평한다”며, “각 부문별 전문가들이 최고경영자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구조가 잡혀있었던 것은 현 2M의 경영구조와 비슷한 맥락이다. HMM도 미래를 대응할 수 있는 구조개편과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본지는 2M의 경영방식과 함께 한진해운의 황금기 시절 및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나아갈 방향에 대해 조명해본다.<편집자 주>

-1990년대부터 전문경영인 체계 구축했던 머스크

머스크는 전문경영인 체계를 일찌감치 구축해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2세인 맥키니 몰러 회장 생전 오너십 경영을 해왔으나, 1990년 중반부터 경영과 소유를 분리하는 작업을 거쳐 사후에는 소유와 경영이 완벽히 분리돼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가 작고한 2012년 전까지 맥키니 몰러 회장은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나 있으면서도,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등 오너십 경영을 표방했다. 하지만, 현 오너일가 3세인 에이네 우글라 맥키니와 4세 로버트 머스크 우글라는 머스크 그룹을 지배하는 각종 재단에 대표나 이사회 멤버로만 직책을 둘 뿐 경영에 일절 개입하지 않고 있다.  

경영은 철저하게 전문경영인인 소렌 스코우 CEO가, 머스크 그룹의 이사회 역시도 오너일가가 아닌 외부인인 짐 스네이브가 의장을 맡고 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면서 이사회 의결권 행사를 통해서만 최고경영진을 견제할 뿐 직접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산신항에 입항해 하역작업은 하는 머스크 선박.
부산신항에 입항해 하역작업 하는 머스크 선박.

경영을 총괄하는 소렌 스코우CEO는 해운과 물류부문, 터미널 사업부문을 각 전담 CEO들이 있으며, 외신 등의 다수 언론응대나 인터뷰도 각 CEO들이 전담하는 등 각자에게 독립성과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박재서 한국머스크 대표는 “소렌 스코우가 그룹 총괄로 부문별로 선대기획과 운영, 항로기획과 용선·물류사업 등을 구분해 두고 있으며 오너일가가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면서, “터미널 사업부문은 소렌 스코우 CEO가 총괄하나, 해운과 별개로 운영되고 있는 시스템이다”고 설명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도 “오너 일가는 이사회의 일원으로서만 역할을 하고, 소렌 스코우를 정점으로 별도의 CFO를 두면서 각 CEO들에게 단순한 실무 임원 수준을 넘어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면서, “CFO와 각 CEO들은 집단경영체제의 동등한 일원으로 각자의 역할을 구분해 회사를 대표하면서 소렌 스코우는 경영 일선에서의 총 책임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밀주의’ MSC도 경쟁사 출신 CEO 영입해 대세 따라가
 
창업주인 지안루이기 아폰테가 현재까지 회장이며 가족경영 기업인 MSC도 지난해 말 머스크 출신 CEO를 영입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해가고 있다. 이 회사는 외부 자본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아들인 디에고 아폰테 CEO에게 컨테이너 해운과 항만을, 부인과 세 딸은 크루즈 사업을 경영해 왔다.

비상장 기업으로 외부에 알려진게 거의 없을 정도로 철저한 비밀주의를 택하고 있는 MSC에서 경쟁사인 머스크 출신 소렌토프 머스크 COO를 새 CEO로 영입하면서 체제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다수의 외신에 따르면, MSC는 지난 2019년 11월 소렌 토프 CEO로 선임키로 결정했으며, 경영진 재취업 유보 규정에 따라 1년 후인 지난해 12월 정식 취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 일가의 회장과 그룹 사장 직은 계속 이어지나, 소렌 토프 CEO는 컨테이너와 물류부문 CEO로서 아폰테 그룹 회장과 사장에게 직보하면서 오너일가를 보좌하는 역할로 알려졌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MSC 창업주이자 회장은 선박 S&P 등 여러 사업영역에서 현재까지도 의사결정의 정점에 위치하고 아들과 딸 역시 경영에 직접 참여 중이다”면서, “머스크 물류사업 확장에 따라 여러 포워더들과 관계가 악화된 점 때문에 영입했다는 의견과 실제 글로벌 포워더인 DB쉥커가 머스크와 계약 만료 후 대부분의 계약을 물류자회사가 없는 MSC로 이전했다”고 설명했다. 

MSC의 컨테이너선. 사진 출처  MSC 홍페이지.
MSC의 컨테이너선. 사진 출처 MSC 홍페이지.

다만, “비밀주의와 철저한 오너십 경영을 해왔던 MSC가 처음으로 오래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 왔던 머스크 출신의 외부 전문가에게 경영을 맡겼다는 것은 시사점이 크다”면서, “이는 컨테이너 해운 사업이 과거와 달리 규모가 방대해졌고, 외형성장보다 질적 성장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기에 회사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외부 전문가 영입의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고 해석했다.

-옛 한진해운 황금기는 고 조수호 회장 ‘독자경영’ 시절

옛 한진해운에 근무했거나 고 조수호 회장 재직 당시 시절을 경험했던 해운인들은 하나같이 고 조수호 회장이 한진해운을 ‘독자경영’하던 시절을 황김기로 꼽는다. 조 회장은 1985년 10월 한진해운 미주지역 본부장을 시작으로 한진해운 회장으로 작고한 2006년 11월까지 한진해운을 한진그룹과 별도로 분리해 독자경영해 온 인물이다. 

특히 한진그룹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오너일가였던 조수호 회장의 사업 영역에 그룹의 간섭이 전혀 없었고, 조 회장 작고 이후에도 회사가 한동안 건실했던 이유도 그가 생전 진행했던 과감한 투자 덕분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조 회장 경영시절을 경험했던 한 관계자는 “한진해운 파산 마지막까지 도움을 줬던 항만터미널들인 도쿄, 오사카, 알헤시라스, 롱비치 등 거액 투자 사업은 모두 조수호 회장 시절에 추진됐던 사업들이었다”면서, “한진그룹의 재력적인 뒷받침과 오너일가로 책임경영과 독자경영이 가능했기에 적기에 투자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이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조 회장 독자경영 시절에는 시애틀(1986년), 롱비치(1991년), 오사카(1992년), 도쿄(1994년), 오클랜드(2001년), 앤트워프(2006년) 등 해외터미널들의 개장과 대한선주 합병(1988년), 거양해운(1995년), DSR 세나토(1997년) 등 굵직한 M&A가 진행됐다. 

고 조수호 회장의 이름을 딴 한진 수호호. 한진해운 파산이후 해당 선박은 머스크의 머스크 유레카호가 됐다.
고 조수호 회장의 이름을 딴 한진 수호호. 한진해운 파산이후 해당 선박은 머스크의 머스크 유레카호가 됐다.

또 정보통신 자회사인 싸이버로지텍(2000년), 물류법인인 한진로지스틱스(2001년), 터미널 운영법인인 TTI(2001년) 설립 등 해운연계 사업들의 분사 법인들도 속속 출범했다. 한진해운이 주축이었던 글로벌 메이저 얼라이언스였던 CKYH(2003년 출범) 역시 조 회장이 주도적으로 만든 동맹으로 평가받는다.

적기에 투자나 굵직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로 조 회장이 오너일가라는 백그라운드도 있었지만, 조 회장을 보좌하는 각 부문별 전문가들의 역할도 컸다는 후문이다.

이 관계자는 “은행출신의 재무 금융 전문가와 해대출신의 항해·터미널 전문가, 경영전문가 등 조 회장을 지근에서 보좌하면서 올바른 판단을 이끌었고, 조 회장도 모든 직원을 차별없이 인격적으로 대했던 성품으로 애사심을 갖고 회사를 다닐 수 있었다”면서, “최고경영자를 보좌하던 인물들의 축이 깨지고 직원들을 챙기던 인물의 부재로 회사가 쇠퇴의 길을 걸었던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주인없는 회사 한계 느끼는 HMM, 호황 끝나면…

현재 HMM의 가장 큰 문제는 ‘주인없는 회사’라는 것이다. 국가 금융기관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1, 2대 주주로서 회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 트렌드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박재서 한국머스크 대표는 “머스크가 홈페이지에 그룹의 지배구조와 이사회 멤버들, 오너일가를 소개하는 페이지를 할애하는 것 역시 ESG 경영의 하나이다”고 설명했다.

한 GTO 관계자는 “해운, 항만할 것 없이 글로벌 기업 트렌드는 ESG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하지만, 사실상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HMM이 ESG 경영에 대해선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국내 산업체에서 주인없는 기업의 모럴헤저드 문제가 가장 크게 거론됐었고 HMM도  불과 몇해 전까지 임직원들이 이러한 문제로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모럴헤저드 문제는 경영진을 교체하고 신규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해결했다고 하지만, 관리감독이 느슨해지면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또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성과에 고취돼 대규모 투자가 한계가 있는 것도 문제라 할 수 있다. 해운업은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시설 투자가 끊임없이 이뤄져야 위기에 대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양대 주주들의 틈바구니에 놓여 국민 혈세를 집행해야 한다는 약점에 사로잡혀 산은이 대주주로 편입된 이후 초대형선 발주 외에는 대규모 투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해운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머스크는 이미 글로벌 1위 선사이자, GTO 1위임에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터미널 투자를 지속하고 다양한 사업체를 M&A하는 등 공격적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며, “그런데 HMM은 시설 투자를 하려면 산은과 해양진흥공사 양쪽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현실에 부딪히고 양대 주주들이 호황이 끝나버리면 HMM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은 해봤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HMM에게 초대형선도 필요하지만, 그에 맞는 항만터미널과 부대사업들도 필요한데 이외의 투자는 사실 전무하다”면서, “지난해 캘리포니아 터미널 매입한다고 했는데, 이는 다른 선사들이 20~50여개씩 터미널을 보유하며 별도 법인을 운영하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HMM, ‘독자경영’과 세분화된 사업별 전담 ‘책임경영’ 필수

HMM이 역사상 황금기를 누렸던 때도 오너일가인 고 현영원 회장이 과거 현대그룹 내에서 독자경영하던 시기라고 말한다. 오너십의 가장 큰 장점은 주인의식에 따른 책임경영이다. 그럼에도 글로벌 선사들이 이 오너십 경영에서 벗어나는 것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방증이다.

이같은 흐름은 과거 배 1~2척으로 사업을 시작했던 창업주들이나 2세들이 ‘컨’해운사업 자체가 방대해져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졌다는 현실적 문제와 함께, 안전, 친환경, 디지털, 물류 등 새로운 이슈들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HMM 알헤시라스 터미널.
HMM 알헤시라스 터미널.

해운 전문가들은 HMM도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에 합류해 기업 구조개선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 HMM 체제는 전문경영인을 두고 있지만, 영업총괄이 항로기획과 선대기획, 터미널까지 모두 총괄하는 구조다. 최소 터미널만큼이라도 별도로 분리해 글로벌 선사들과 같이 분사 법인을 출범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해운 전문가는 “현 HMM의 조직구조는 좀 체계적이지 못한 측면이 있다. CFO, COO 역할에 대한 구분도 불분명하고 디지털과 물류를 엮어서 영업총괄 밑에 두는 등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다”고 지적하고는, “CFO는 CFO만, 영업은 영업만, 터미널은 터미널만 하는 등 조직을 세분화해 각 부문별 담당자가 책임감있게 일을 하면서 경영자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만업계 관계자도 “지금 HMM 실적은 코로나19로 예상치 못한 시황반등의 영향이 적지 않다”면서, “앞으로도 글로벌 선사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무엇하나 경쟁력을 갖춘 파트가 없다. 터미널 수나 선복량, 물류파트, 해운 IT파트 등 대다수 사업부문에서 내세울만한 경쟁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HMM의 터미널 사업만 보더라도 글로벌 선사 중 컨테이너 영업 아래에 터미널 사업부를 놓고 관리하는 곳은 거의 없다”며, “별도로 분사해 운영하고 본사에서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사업부 밑에 놓다보니 본사는 터미널 사업을 단지 비용을 절감하는 도구쯤으로 보고 있으며, 터미널에서는 본사 눈치만 보는 형국인데 발전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HMM의 매각 이슈도 지속되는 만큼 사업부문별로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매각이 되더라도 자본력이 있는 기업으로 해운 특수성을 감안한 독자경영을 보장할 수 있는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해운 전문가는 “해운과 같이 자본집약적인 사업은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혈세 투입이 계속된다면 국민들이 용인해주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책 방침대로 매각을 하게된다면, 적절한 시기에 자본력이 뒷받침되면서 전문경영인에게 독자경영을 맡길 수 있고 그룹이 관여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탄탄한 기업에 HMM을 인수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