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금융 견인한 DSF 표방했지만 현실은…
해운전문가, “안정적 수익구조 창출하면서 공익성 추구해야”

전통적인 해운 강국인 유럽에서 선박금융이 활성화 돼 있는 것은 자본집약적인 해운업이 금융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숱한 해운회사들이 파산에 이른 주요 요인은 고비용의 선박금융이었던만큼 전문기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짧지 않은 해운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 제대로 된 선박금융 전담기관은 지난 2018년에야 만들 수 있었다. 수십년의 역사를 가지고 이미 안정기에 접어든 유럽에 비해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신생아 수준이지만, 최근 한국형 선주사업을 시작하는 등 차근차근 걸음마를 떼가는 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공사의 선주사업은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마련하고 동시에 민간이 스스로 커버하기 힘든 용대선 시장을 커버하면서 나아가 해운과 조선산업까지 지지하는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본지는 머스크를 견인했던 정부기관인 덴마크선박금융(Danish Ship Finance)의 현황과 함께 한국 해운업 발전을 위해 해양진흥공사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봤다.<편집자 주>

해양진흥공사는 최근 한국형 선주사업을 시작했다.
해양진흥공사는 최근 한국형 선주사업을 시작했다.

- 세계 1위 머스크 선박금융 견인했던 DSF

오랜기간 머스크의 선박금융을 전담했던 덴마크선박금융은 유럽 유일의 해운산업 특화 금융기관으로 알려졌다. 1961년 설립된 덴마크 공기업으로, 지난해 기준 금융 규모 약 6조 원을 운용하는 선박금융기관이다.

해양진흥공사가 지난해 발표한 ‘60년 전통의 선박금융 특화기관 DSF’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화와 다각화라는 투트랙 선박금융기관으로 컨테이너선, 벌크선, 유조선 외에도 오프쇼어, 여객선 등 다양한 선종을 대상으로 금융을 실행하며 사내 자체 시장분석, 해상법, 해상보험 등 비금융 전문부서를 통해 통합 리스크를 관리한다.

DSF는 홈페이지 첫화면에 자산규모와 실적, 신용등급을 표기해놨다. DSF 홈페이지 캡쳐.
DSF는 홈페이지 첫화면에 자산규모와 실적, 신용등급을 표기해놨다. DSF 홈페이지 캡쳐.

보고서는 “머스크 전담 금융기관으로 기금형태로 출범했지만 오랜시간을 거쳐 시장형으로 거듭났다”며, “LTV(Loan to Value) 비율, 선종·국가별 익스포저 상한선 유지 등 철저한 리스크 관리를 통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운업 침체 및 부실증가에도 양호한 자산건전성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양 ‘컨’선사 관계자는 “리스크 분산을 위해 다양한 선종별·투자자별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고 머스크의 신조 발주잔량이 매우 적은 점 등을 고려해 현재 머스크 대출규모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주요 주주로는 덴마크 연기금 2개사와 사모펀드인 액셀(Axcel)로 구성된 지주회사가 86.6%를 보유하는 최대주주며, 덴마크해사재단이 10%를 가지고 있다. 2015년까지 AP 몰러 머스크가 주요 주주였지만, 이듬해인 2016년 지분구조가 현재와 같이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머스크가 소렌스코우 CEO가 취임하던 2016년부터 비해운업 확대로 사업 기조를 재편하면서 DSF의 주주에서도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DSF도 머스크의 지탱없이 기관을 이끌기 위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운영 기조를 바꿨을 것”이라고 전했다.

- 출범 3년 맞는 해양진흥공사, 시장형 공기업 지정 ‘기로’

지난 2018년 7월 출범한 해양진흥공사는 국내 해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금형태로 출범해 성장시킨 덴마크의 DSF를 일부 벤치마킹했지만, 직접적인 선박금융을 하기보다는 보증이나 세일앤리스백 형태 수준의 금융만 제공하고 있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머스크가 덴마크 GDP의 약 11%를 책임지는 국민기업이라는 측면에서 머스크와, 나아가 유럽 선사들과 함께 성장해왔던 DSF에 비해 국내 산업에서 매출 포지션이 적다는 점도 해양진흥공사의 성장 한계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장기간의 노하우가 집적된 DSF의 경우 부침을 심하게 겪는 해운업의 특성에도 꾸준한 실적을 내고, 머스크가 선박발주를 중단한데에도 큰 타격을 받지 않을 만큼 수익구조를 만들어놨다. 하지만, 이제 세 돌이 되는 해양진흥공사에는 장기간의 데이터가 집적돼 있지 않은데다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달장 구현해 내기가 쉽지 않다.

정부도 이같은 고민 때문에 자본을 지속적으로 늘려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세일앤리스백으로 사들인 선박들로 인해 부채도 같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또 공사에 정부의 자본을 계속 투입할 수도 없기 때문에 탄탄한 수익구조를 우선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해양진흥공사는 HMM의 초대형선 발주를 지원했다. 사진은 'HMM 누리호'
해양진흥공사는 HMM의 초대형선 발주를 지원했다. 사진은 'HMM 누리호'

공시에 따르면, 자산 2조7,100억 원으로 시작한 공사는 지난해 말 기준 8조8,200억 원으로 늘었다. HMM의 선박발주 및 세일앤리스백 등의 사업으로 자산 규모도 늘었지만, 부채 역시 출범 초 3,400억 원에서 3조 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현재 공사는 기획재정부 기준으로 시장형공기업의 자격 요건을 갖췄지만, 출범된지 얼마 안된데다, 자생능력 부족 등을 이유로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공공기관 신규지정은 출범 3년이 지나는 올해 말 재평가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한 중견선사 관계자는 “해양진흥공사가 출범한 이유 중 하나가 국내 일반 시중은행들이 유럽은행들에 비해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해운업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컸다”면서, 시중은행들이 불황에 대비하는 방안에 무지했기 때문인데, 공사도 이같은 불황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마련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사업 확대 첫발 ‘한국형 선주사업’ 추진

'한진 수호호'는 현재 '머스크 유레카호'가 되는 등 한진해운의 초대형선들은 파산 후 해외선사에게 팔렸다.
'한진 수호호'는 현재 '머스크 유레카호'가 되는 등 한진해운의 초대형선들은 파산 후 해외선사에게 팔렸다.

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하면서 주요 추진 사업으로 포함시켰던 것 중 하나가 자회사를 통해 ‘선주사’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이는 한진해운 파산 당시 시장에서 요긴하게 사용되던 1만3,000TEU급 선박들이 국내에 전혀 흡수되지 못한채 외국 선사들에게 팔려간 것이 상당한 아쉬움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해양진흥공사 설립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해당 선박들은 HMM이 흡수할 수도 있었는데 여러 현실의 벽 때문에 머스크나 해외선사들 좋은 일만 시켜줬었다”면서, “이런 비극을 막자는 취지에서 공사 주요사업에 선주사업을 포함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해진공은 각 선사들에게 ‘한국형 선주사업’ 시범사업을 시행하는 공문을 발송해 공식적으로 선주사업에 뛰어들었다. 공사는 공고문을 통해 ‘해운사 유동성 지원 및 안정적인 선박 확보에 대한 해운업 지원 역할 강화를 위해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고 명시했다.

지원 방식은 선사들이 보유한 선박을 선박펀드 구조로 간접투자하고 BBC방식으로 해운사에 재임대한다. 또 선박 잔존 내용연수를 고려해 해운사와 협의 후 계약기간을 결정하며, 만료 후에는 연장 옵션을 부여한다. 아울러 선가평가 금액의 100%로 선박을 매입한다.

해운 전문가는 “올 연말에 해양진흥공사가 시장형 공기업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안정적 수익기반이 되는 사업을 시작해야 하기때문에 시범적으로나마 선주사업을 개시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고 평했다.

한 중소선사 관계자는 “시범사업 공고문을 보면 기존 세일앤리스백 사업이 BBCHP 구조의 선박 매입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BBC 구조 선박 매입을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밝히고는, “다만, 공사가 공익적인 측면을 감안해 선사들에게 마냥 선심성으로 선박을 매입해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한국형 선주사업, 공익성 우선해야

해양진흥공사가 한국형 선주사의 시범사업을 추진했지만, 해운업계 일각에선 반대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선박 1~2척을 가지고 선주사업을 하는 소형선사들이 있는데, 공기업이 민간영역을 침범하고, 공사가 리스크가 큰 사업을 직접 한다는 이유에서다.

해운사들의 규모가 커지면서 해양진흥공사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사진은 최근 흥아해운을 인수한 장금상선의 벌크선 '시노글로리호'.
해운사들의 규모가 커지면서 해양진흥공사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사진은 최근 흥아해운을 인수한 장금상선의 벌크선 '시노글로리호'.

하지만 업계는 해양진흥공사가 선주사업을 추진해야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공사 출범부터 선주사업을 주요 사업부문에 포함시킨데다, 보증업무를 하면 부실 선박을 인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양진흥공사의 선주업은 공사법에 포함이 돼 있는 주요 사업인데, 이를 이제와서 반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면서, “자산변동성이 큰 선박에 대해 운항을 하지 않은채 선주역할만 가지고 운용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이 따르지만, 이를 민간이 하기 어려우니 정부기관에서 커버하겠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바람이 많이 불면 소형 항공기보다는 대형 항공기가 저항을 덜 받아 안정적으로 운항하는 것처럼 해양진흥공사의 선주사업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면서, “풍파가 오가는 해운업이 발전하려면 국내에도 대형선주사가 필요한데, 민간에서는 변동성이 큰 선박 투자를 꺼려 대규모 육성이 어렵다. 따라서 공기업이 이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사 설립에 참여했던 관계자도 “공사가 보증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보증 채무를 이행하고 나면 구상채권의 확보를 위해서라도 부도 선박을 인수할 수 밖에 없다”면서, “시간이 지나면 부실선박도 나올텐데, 이를 위해서 지금부터 공사가 선주사의 면모를 갖출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공사 스스로 단순히 수익구조 창출만을 위한 선박매입은 자제하고, 철저한 리스크 관리 및 분석을 통해 선주사업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해운 전문가는 “부침이 심한 업종인 만큼 공사 자체적으로 정확한 예측 프로그램을 통해 신중하게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며, “공사의 수익기반을 우선하기보다 국가에 필수적인 안보물류나 물류주권을 지키는 수준에서 점차 사업을 확대하고 무엇보다도 공익성을 우선으로 해 정책실행기관으로서, 또 한편으로는 국가 해운을 지탱하는 공기업으로 도약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