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양측 모두 “단가인상 우선돼야”
노조, “택배 본사가 노조를 인정해야”
업계, “시간을 갖고 조금씩 천천히”

지난 2017년 1월 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선 규모는 작지만 꽤나 의미있는 단체가 설립됐다. ‘전국택배연대 노동조합’. 택배시장이 형성된지 26년 만에 처음으로 택배관련 노조가 설립된 것이다. 이 노동자단체는 4년이 흐른 2021년 현재 국내 택배시장의 중심에 서 있다. ‘택배기사 과로사문제’, ‘택배터미널 분류작업 개선’, ‘공원형 아파트에 택배차량 출입 허용’…등등 택배 관련 여러 문제점들을 공론화시키며, 택배시장에서의 이슈를 집어 삼켰다. 이런저런 ‘갑질’로 고통받고 있는 택배기사들의 고군분투는 여론을 등에 업었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까지 받고 있다. 4년 전 150여 명으로 시작한 이 작은 단체는 현재 택배기사 6,500여 명을 참여시키는 등 각종 이슈를 몰고 다니는 ‘파워 노조’로 거듭났다. 택배업계는 이러한 노조의 성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다수 산업에서의 노사관계가 그렇듯 노조의 성장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달갑지 않다. 택배근로자에는 보다 나은 근로환경을 제공하지만, 택배업체 입장에선 무엇이든 내놓으라고 보채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택배업계는 노조와의 직접 협상을 거부한다. 이들이 ‘개인사업자’ 신분이라는 이유에서다. 업계 입장에선 우리회사 직원도 아닌 개인사업자와 왜 노사관련 협상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회적합의기구에는 참여하곤 있지만, 직접 대화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노조를 외면할 수 있을까. 택배업계는 고민하고 있다. <편집자 주>

“여러 곳에 흩어져 근무하는 택배기사들을 하나로 이어줄 전국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에 많은 기사들이 공감했습니다. 주 6일 근무하고, 하루 평균 13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결성했습니다.”

2017년 1월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 준비위원장(현 전국택배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의 창립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택배노조는 출범과 동시에 ▲무임금 하차 및 분류작업 개선 ▲대리점 표준계약서 체결 ▲무분별한 저가경쟁 방지 가이드라인 마련 ▲오전 하차 분류작업 종료 등을 요구했다.

이들의 요구사항에 택배업계는 콧방귀를 뀌었다. 100여 명의 조합원으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들의 요구사항들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는 올 상반기까지 사회적합의기구에서 나온 내용들을 토대로 표준계약서를 만들 계획이다. 또 터미널 분류작업도 차츰 택배기사가 아닌 업체가 고용한 전담인력이 물품을 분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택배노조가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은 지난 2017년 11월 정부로부터 발급받은 ‘노조설립필증’이다. 이전까지는 개인사업자 신분인 택배기사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노조설립필증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필증 하나로 합법적인 노조 설립은 물론, 관련법으로부터 택배기사가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김태완 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노조설립필증은 택배노조가 성장할 수 있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택배기사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이는 다시말해 현장에서 불이익을 당해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필증 하나로 노조를 설립할 수 있으니 법적인 보장이 가능해 진 것이다. 이 때부터 특고자들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기방어권이 생긴 것이다”고 설명했다.

택배노조는 매년 크게 성장했다. 2017년 150명이었던 조합원이 2021년 4월 현재 6,500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특히, 올해에는 양대 노조인 전국택배연대노조와 전국택배노조가 조직을 통합하며, 조직력도 강화했다. 통합노조는 지난 1일 조합원 투표를 거쳐 조직을 이끌어갈 지도부도 선출했다.

통합노조는 올해 안에 각 택배사별 단체협약을 체결한다는 목표를 갖고, 조합원도 1만명으로 확대해 내년부터는 택배산업 산별협약을 이뤄내겠다는 방침이다.

이렇듯 성장을 거듭하자 업계도 이제는 노조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A사 관계자는 “노조가 이제는 대세가 된 것 같다. 이제는 노조와 공존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업계 차원의 공통된 대응은 협회(통합물류협회) 차원에서 진행하겠지만, 향후에는 개별기업 차원의 대응도 불가피하게 될 것 같다”고 예상했다.

- 택배노조의 급격한 부상

노조가 부각된 것은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문제가 본격화되면서 부터다. 이전부터 택배기사들의 사망사고가 있었지만, 쉬쉬하며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2020년 들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활성화로 택배물량이 급증하자 택배기사들의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공식적으로 이 해에만 15명이 숨졌고 올해에도 벌써 4명이 사망했다. 물론 2019년에도 사망사고에 따른 노조의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업계나 정부 차원의 대응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에만 9명이 사망(과로사 추정)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나 업계가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정국에서 흐름을 주도한 것이 택배노조였다.

택배노조는 유족들과 함께 총 5명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신청을 했으며, 공단은 지난해 사망한 택배기사 중 광주 택배기사 정 모 씨(5월 사망), 김해 CJ대한통운 서 모 씨(7월), 쿠팡 칠곡 물류센터 장 모 씨(10월), 한진택배 김 모 씨(10월) 등 4건을 산재로 공식 인정했다.

노조는 또 택배기사들의 지속적인 사망사고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정부나 업계의 대책마련을 강력히 요구했고, 결국 지난해 12월 7일 노조와 택배업체, 정부와 정당 관계자가 참여하는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합의기구’를 출범시켰다.

사회적 합의기구에선 올 초 ▲분류작업을 사실상 택배사 책임으로 인정해 택배사가 전담 인력을 투입하고 비용을 부담 ▲오후 9시 이후 심야배송을 최대한 제한 ▲최대 작업시간을 주 60시간으로 제한 ▲6월까지 표준계약서 작성 후 9월까지 현장에 적용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안을 발표했다. 해당 합의안은 그동안 노조측에서 요구했던 대다수 요구사항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김태완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현재 택배현장에서의 구조적 문제점은 낮은 수수료를 보존하기 위해 보다 많은 물량을 배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택배노동자들이 무리하게 작업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유이다. 적정한 작업시간과 물량, 합당한 수수료가 책정될 때 노동자들의 사망사고를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다. 배송건당 수수료가 인상된다는 조건 하에서 하루 200~250개를 배송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 비용증가로 직격탄 맞은 택배업계

택배노조의 급격한 성장은 반대로 업계의 수익성에 적지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한진의 경우, 지난 1분기 경영실적 공시에서 연결 기준 매출액은 5,52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3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6%나 감소했다. 이 회사는 ▲택배종사자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택배 분류지원 인력 투입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부문 투자증가 ▲일부 택배기사 파업 등 일시적인 비용 발생 등을 수익성 감소의 원인으로 짚었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유수의 택배기업들은 평균적으로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이 1~3%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노조의 요구로 지난해에는 적지않은 비용이 추가 경비로 지출됐다.

A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택배업체는 박스 1개당 마진이 100원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 이미 지난해에는 추가비용이 박스당 100원을 넘어섰다. 업체 입장에서 보면 데미지가 엄청난 것이다. 현재의 흐름이 이어진다면 택배업체는 '빛좋은 개살구' 신세가 될 것이다. 택배기사 개인은 한 달에 10만 원가량 더 받는데 뭐 그리 큰 타격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업체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 우리 회사만 해도 기사가 9,000명에 가까운데, 한 달에 수수료로 10만 원을 추가 지급한다면 총 9억원의 비용이 추가로 드는 것이다. 1년이면 100억인데, 택배업체 입장에선 굉장히 큰 돈이다”고 전했다.

B사 관계자도 추가비용에 따른 부담을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박스당 마진이 100원도 안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회사는 이번 1분기 영업이익이 2%도 채 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비용이 추가된다면 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다. 수익구조가 바뀌지 않는 현 상황에서 노조가 원하는대로 추가비용을 투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노조도 이러한 업계의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타 산업에 비해 영업이익률이 낮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택배업계가 영업이익을 많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노조가 주장하는 것은 상식적인 요구만 하고 있는 것이다. 분류문제도 그렇고 모든 사안을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해결하려 하고 있다. 노조와 택배업체는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도 업계의 현실을 이해하고, 업체도 노동자의 어려움을 이해해야만 같이 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 노사 공생(共生)의 길은

택배업계는 이제 노조와 공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직접적인 대화는 아직 이르다는 판단이다. 택배업체가 택배기사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기 때문에 현행법상 임협이나 단협 등 각종 협상을 직접 할 순 없다고 한다.

A사 관계자는 “현재는 개별업체가 노조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이)계속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현재로선 법적인 근거가 없으니 양측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현재로선 대리점연합회를 통해 여러 사안들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어떤 문제를 대하든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원청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앞으로는 대다수 회사가 사안에 따라 노조와 직접 대화를 할 것으로 생각된다”며 업계의 전반적 분위기를 전했다.

택배업계와 노조, 양측은 택배단가가 현실화 돼야 공생이 가능하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영업이익율이 현저히 낮은 현 상황에서 비용만 추가된다면 공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양측이 직접 대화를 하진 않고 있지만,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동안 사회적 합의기구는 택배업계에만 비용을 추가 부담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 단가인상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거래구조 개선과 택배비 현실화를 위한 연구용역을 산업연구원에 맡겼으며, 해당 용역에서 박스당 200~300원을 인상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택배사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5월 말까지 이러한 내용이 담긴 택배비 현실화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 방안이 확정되고 현장에서 무리없이 적용된다면 일단 업계와 노조 양측이 공생할 수 있는 길은 열릴 것으로 판단된다.

업계와 노조는 향후 대화를 충분히 한다면 현재의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서로가 공생할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업계는 성급함 보다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노조는 상호 존중과 인정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A사 관계자는 “우선 단가가 인상되면 문제해결에 실마리가 풀릴 것 같다. 수입이 늘어나면 택배기사들의 근무여건도 나아질 것이고, 서로 윈윈(Win-Win)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여러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 노조가 업계에 시간을 좀 준다면 서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김 수석부위원장은 “노조가 데모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업계와 노동자 모두 같이 공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우리도 업체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기구 내에서 합의를 하더라도 현장에서 잘 이행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원청(택배업체 본사)과 직접적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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