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원양·근해선사별 ‘투트랙 지원 정책’ 필요
정책 동참 선사에 정책 지원 집중돼야

싱가포르 PIL은 한때 선복량 58만TEU(현 28만TEU)로 아시아 역내 선사 중 최강자로 꼽히는 선사였다.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부회장도 여러차례 “우리나라에도 PIL 규모의 선사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국내 근해선사들의 선복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높은 선복량을 자랑했었다. 싱가포르 정부가 인수해주면서 위기를 극복 중인 PIL의 경영악화 원인은 무리한 원양노선 진출과 경영권 분쟁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 정부가 PIL을 살려준데는 원양선사인 APL을 매각한 후 남은 선사를 지키기 위한 것도 있었겠지만, 근해선사로서 PIL의 입지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국가 해운을 뒷받침하는데에는 원양선사를 전면에 내세우긴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피더선사들, 근해선사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면서, “PIL의 사례에서 보듯 원양과 근해를 지원하는 정책이 똑같을 수 없으며 각자의 시장에서 제역할을 하기 위한 투트랙 정책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본지는 PIL의 위기극복 사례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해운 지원 정책과 함께 근해선사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해본다.<편집자 주>

- 아시아 최강 선사 'PIL'의 몰락

PIL의 컨테이너선. 출처-PIL 홈페이지.
PIL의 컨테이너선. 출처-PIL 홈페이지.

1967년 설립된 싱가포르 근해선사인 PIL은 시장예측 실패로 인해 부진을 겪다 구조조정을 통해 조금씩 되살아나는 중이다.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발행한 ‘글로벌 해운 경쟁력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PIL은 2015년부터 유가상승에 따른 운항원가 경쟁력 저하와 시황 예측 오류에 의한 선복량 관리 실패로 해운사업 부문 원가구조가 악화됐다.

항만업계 한 관계자는 “PIL이 위기로 내몰린 가장 큰 실책은 원양 진출에 있었다”면서, “2M 결성을 계기로 원양항로는 단독 선사로서 운항이 어려워지는 추세였는데, 싱가포르에서도 원양선사인 APL을 CMA-CGM에 매각한 후 아쉬운 부분을 PIL이 독자적 영업으로 커버해보겠단 패기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겠냐”고 전했다.

해진공도 보고서에 “비동맹 해운사 중 짐라인이나 완하이라인이 2016~2018년까지 선박발주를 하지 않은 것에 반해 PIL은 꾸준히 발주했다”며, “글로벌 해운동맹의 규모 증대에 따라 비동맹 선사 입지는 약화되는 추세였지만, 얼라이언스 가입 대신 독자적 영업을 전개하면서 결국 일부 노선을 철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글로벌 해운 판도는 세계 1, 2위 선사인 머스크와 MSC가 2M을 결성한 2015년 이후 3대 해운 얼라이언스로 재편되면서, 그동안 원양노선에서 독자적 영업을 해왔던 선사들이 크게 위축됐었다.

보고서에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비 얼라이언스 컨테이너 선사 시장 점유율은 2017년 6%에서 2018년 15%로, 2019년 18%로 일시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17%에서 올해 8%로 대폭 축소됐다.

- 원양 해운 포기한 싱가포르의 눈물…국부펀드로 PIL 인수해 정상화 박차

세계 2위 컨테이너항만을 보유하고 있는 싱가포르는 일찌감치 아시아의 물류허브를 자처했던 국가이다. 금융 중심지와 물류 허브는 싱가포르의 국력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싱가포르가 2015년말 원양선사인 APL을 과도한 적자로 프랑스 선사인 CMA-CGM에 매각했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원래 미국선사였던 APL이 미국에서 해운을 포기한 이후 화주국으로서의 지위 등을 생각할 때 싱가포르 정부에서 원양선사를 매각하는게 쉽지 않은 선택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근시안적으로 판단을 했던 것 같다”면서, “싱가포르 국부펀드가 워낙 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체를 지배하면서 손실에 민감했을 수도 있고 PIL이 민간에 있었던 부분도 감안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싱가포르항에 입항한 APL선박. APL은 2015년 CMA-CGM에 매각됐다.
싱가포르항에 입항한 APL선박. APL은 2015년 CMA-CGM에 매각됐다.

결국 APL의 원래 주인이었던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은 원양선사를 매각하고 뒤늦게 근해선사인 PIL이라도 지키기 위해 거액을 투자하기에 이른 것이다.

테마섹은 계속되는 경영악화와 창업주 작고 이후 후계자 문제 등을 겪고 있는 PIL에 대해 결국 지난해 11월 자회사를 통해 자금 6억 달러를 투입하고 주주 지위를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만업계 관계자는 “회사 내부에서도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오고 창업주의 자녀들이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데다, 무리한 원양진출 등으로 회사 상황이 나빠지면서 결국 테마섹에서 회사를 인수한 것”이라며, “계열사를 팔고 지속적인 자금 투입에 더해 지난해 말부터 시황이 살아나면서 회사는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 선사별 구분없는 지원정책에 해운업계 불만 '팽배'

우리나라의 경우, 해운선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설립해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들었다. 다만 초창기 해양진흥공사 설립 배경에는 ‘한진해운 파산’에 따른 ‘원양선사 정상화’가 가장 큰 목적이었던 만큼 현실적으로 HMM에 자금 지원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해양수산부는 HMM에 해진공 예산의 대다수가 소진된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여론을 진정시키려 별도 설명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해수부는 당시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해수부와 해진공은 국적 원양선사의 경쟁력 회복을 우선으로 상대적으로 집중 지원해 왔고, 2018년 공사 설립 이후 약 3년 동안 국적 외항선사에 총 5조8,061억 원을 지원했으며 이중 60%인 3조5,172억 원을 HMM에 지원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공사 설립 초기에는 해운재건 계획의 하나로 주력 수출항로인 미주, 유럽항로를 모두 운항하는 유일 국적원양선사인 HMM의 구조개선과 경영안정화를 위해 지원을 집중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공사 출범의 주된 이유가 HMM과 국내 원양해운의 정상화를 위한 것이 가장 큰 명분이었기 때문에 예정된 자금이 투입된 것”이라며, “예정된 예산이 모두 투입되기도 전이고 아직 글로벌 선사를 보면 HMM은 아직도 뒤쳐져 있는데, 5,000억 매출 선사와 10조 매출 선사 지원액이 똑같아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싱가포르의 사례를 비춰보면 원양선사와 근해선사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부분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얼라이언스에 소속되지 못하면 원양항로를 운항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근해선사의 경우 자국의 화주를 영업기반으로 삼기 때문에 제3국에서 경쟁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근해선사들의 비컨테이너부문 확장에 따른 경쟁력 강화 지원 대책도 강구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국가 정책에서 원양은 원양에 맞게, 근해는 근해선사들에 맞게 지원 정책이 별도로 이뤄져야 할 수밖에 없다”면서, “선복량 늘리라고 근해선사들에게 2만4,000TEU짜리 배를 지어줄 순 없다. 해당 선사들에게 맞는 맞춤형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일부 근해선사가 벌크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데, 장기적인 안목에서 비컨테이너부문을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것은 긍정적인 부분도 클 것”이라며, “국내에서 팬오션과 대한해운이 법정관리 이후에도 이들을 뛰어넘는 대형벌크선사가 나오지 않고, 한때 팬오션 실적을 견인한 것이 비주력사업인 컨테이너였다는 점을 보면 벌크사업 확대를 위한 지원 정책도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선택적 동참에 따른 차별성 강화된 정책 필수

싱가포르의 PIL이나 HMM이 정부에서 거액의 지원을 받게된 공통된 배경은 ‘오너의 경영권 포기’에 있다. 국내에서 근해선사들 중 경영권을 포기할 정도로 크게 위기를 경험한 선사는 흥아해운 정도지만, 두 번의 M&A 실패를 받아들여주는 등 정부 정책에 적극 동참하는 선사도 있다.

특히, HMM이 지난해 8월부터 물류대란을 해소하기 위해 25번째 임시선박을 띄우는 것이나, 위기의 흥아해운의 구원투수를 해준 장금상선도 정책지원의 보답이다.

두차례 M&A가 무산된 흥아해운은 결국 대승적 차원에서 장금상선이 인수해주기로 했다.  사진은 흥아해운이 운항하는 캐미컬 탱커선.
두차례 M&A가 무산된 흥아해운은 결국 대승적 차원에서 장금상선이 인수해주기로 했다. 사진은 흥아해운이 운항하는 캐미컬 탱커선.

이 때문에 해운 전문가들은 정책 동참없는 선사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정책자금이 지원되서는 안된다고 조언하고 있다. 정책 자금은 결국 해당 자금을 활용해 더 크게 국익에 도움이되는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인데, 정부 정책은 외면하면서 자금은 받으려고 하는 이중적 심보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재 정부 정책에 적극 동참한 선사들이 HMM과 장금상선 말고 있었느냐”며, “이유야 어찌됐든 한진해운 파산 배경에는 ‘오너의 성의’였는데, 선사들도 정책 동참은 안하면서 정부 지원을 바라는 것은 국민의 혈세를 쌈짓돈이라고 보는 몰지각한 행태이다”고 비난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도 “정책에 동참하지 않는 선사들까지 무리하게 정책에 참여시키려고 하다보니 정책 완결이 안되고 있다”면서, “정책 동참 선사에게는 통크게 지원하고 아닌 선사들은 그냥 제 갈 길 가라고 하면 된다. 정책 자금지원을 아무한테나 하려고 해진공을 만든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최근들어 기업인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선사에 대해서는 지원 배제에 대한 규정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해운 전문가는 “산재에 대한 여론악화가 심각해 중대재해법 도입을 피해가지 못할텐데, 최근들어 사고가 나거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기업에 대한 정책자금 지원에 대해 감시하는 곳도 많아졌고, 국민 여론도 이를 두고만 보지 않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면서, “해진공 일부 직원들의 HMM 주식을 사들인 이른바 ‘해진공 사태’도 발생한만큼 업계도 이에 대한 선제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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